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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교육의 목적은 가르치는 것에 있지 않다

교육은 틀에 갇히지 않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르네 마그리트 1) 를 기리며. 2016 photobyhyeruu



 매주 수요일마다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소소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사진 강의 프로그램인데, 수강생들의 반응이 꽤나 좋은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문화재단에서 기획한 내용은 간단하게 사진의 기술적인 부분만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는데, 왠지 그렇게 끝내기 싫었다. 그건 사진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쳐 달라는 말과 같았으니까. 그래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같이 교육했다. 이제 벌써 6개월이 넘었으니 꽤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 상황이다. 6개월간 교육생들의 실력도 생각보다 많이 늘었고 꽤나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카메라의 기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수강생들을 앉혀 놓고 있으니 초반에는 당연히 카메라의 사용법에 대해서 가르쳐야 했다. 셔터 속도와 조리개는 이렇게 맞추는 거고, 세팅값을 이렇게 하면 노출값이 변화됩니다. 아웃 포커싱을 하려면 요런 방법을 쓰시면 되고, 어두운 상황에서도 밝게 촬영을 하시려면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뭐 사실 요즘은 카메라 기능이 워낙 상향 평준화되어서 딱히 가르칠 것이 없다. 정말 카메라의 기능과 대략적인 개괄은 2~3달 정도면 거의 익힐 수 있다. 게다가 가장 실수 없이 촬영해주는 건 카메라의 오토 모드라고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수강생이 건의사항을 내어 놓았다.     


 선생님. 수업시간마다 기존의 사진작가들을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좋은 건의 사항이었다. 나 역시 평소 사진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먹고사는 것들이 바쁘다 보니 매번 그렇게 찾아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종종 작가들의 홈페이지나 사진을 들쳐보면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들의 시선, 시대적 상황과의 연계성, 어떻게 그것을 사진과 연계시켰는지. 그때부터 매주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PPT에 옮겨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맨 처음 스냅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에요. 그 전에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초상화를 기준으로 하고 있었거든요. 스냅이 어떤 개념이냐 하면 말이죠...     


 실제 나 역시도 강의를 하면서 자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수강생과 강사 모두에게 득이 되는 내용들이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진의 시대상과 사조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현대 예술의 발전 등. 우리는 모두 같이 그렇게 공부를 해 나갔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6개월.     




 6개월을 돌이켜보니 사진의 기술적 부분보다는 그 이외의 내용들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강의들로 인해 수강생들이 바뀐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사진에 대한 본인의 틀이 조금씩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냥 핸드폰으로만 사진을 찍더라도 평소 자주 찍는 틀이 있다. 놀러 가면 꼭 같은 자세로 앉아서 같은 포즈로 계속 돌려가며 사진을 찍는다던지, 풍경을 찍으면 멀리서 전체적인 풍경만 계속 담는다던지 또 사진이라는 건 이래야만 한다던지. 이러한 틀들은 시간이 지나도 잘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해주거나 심각하게 본인의 스타일을 고려해서 자각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지날수록 수강생들의 사진은 조금씩 자유로워져 갔다. 먼저 기본 구도에 대해 알려주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했다. 사실 구도의 일반적인 형태는 인터넷을 한 시간만 뒤지면 모두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외에 또 무엇을 담아야 할까에 대해 서로 의논하고 이야기해보는 시간들을 가졌다. 처음에 쭈뼛쭈뼛하던 수강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의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첫 시간에 다들 서먹서먹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이렇게 외쳤다.


사진 마음 가는 대로 찍으세요.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겁니다.     


구도 강의를 할 때는 또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구도는 경험적이고 통계적인 산물이에요. 꼭 저렇게 찍어야 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그때 느낌에 따라 마음대로 찍어보세요. 대신 많이 찍고 많이 보세요.     





나의 지속적 모토는 마음 가는 대로 찍으라는 거였다. 물론 촬영한 사진들을 가지고 오면 기본적인 공식이라던지 틀에 따라 이야기해주기는 하였지만 사진을 잘 찍었네 못 찍었네 등의 이야기들은 절대 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지곤 했다.     


왜 이렇게 찍으신 거예요? 어떤 의미를 담고 싶으셨나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찍었어요. 그냥 풍경을 찍은 거예요 라고 이야기하던 수강생들이 3개월이 지나자 그들의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그날도 촬영을 해 오라고 시켰었고, 한 수강생이 길섶에 있는 풍경을 촬영해 왔다. 그래서 나는 또 물어보았다.     


“어떤 걸 생각하고 찍었어요?”     


“이 풀꽃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요. 그게 제 마음과 너무 통하는 것 같아서 찍어봤어요.”     


장족의 발전이었다. 사진에 대해 느낌을 담을 수 있었고, 사진에 담은 감정과 나의 감정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아마 예측컨대 그 수강생은 당시 외로움이나 쓸쓸한 감정을 느낄만한 어떠한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다른 수강생들 앞에서 그녀를 칭찬해 주었다. 그 뒤로 꽤나 놀라운 변화들이 생겨났다. 수강생들은 사진에 무언가를 담으려 노력했다. 기분과 느낌을 담아왔으며 스토리를 담아왔다. 수강생들은 이런 내용들을 같이 듣고 공감하며 울고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진을 찍고 감상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단지 그 매개체로 사진을 택했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이 이 강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은 시와 사진을 결합하기도 했고, 영상과 사진을 결합하기도 했고, 사진을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수강생 중에는 사진을 촬영하고 이 사진에 시를 작성하여 낭송을 하는 수강생까지 생겼다. 이러한 활동들은 그들의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을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사진이라는 ‘틀’을 깨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사진을 더 이상 사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색다른 방식으로 할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많은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이 끊임없는 지식의 주입으로 끝나게 되면, 그 교육은 단지 물고기를 잡아준 꼴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의 목적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일단 머릿속에 있는 틀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틀에서 자유로워져야 조금 더 유연한 사고로 선입견 없이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틀을 깨기 위해서는 원칙과 함께 변칙적 내용들을 많이 수용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원칙이라는 놈이 절대적이지 않다 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모든 공부는 시작된다.      



 우리의 공부는 지금 어느 시점에 와 있을까.








1) 르네 마그리트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친숙하고 일상적인 사물을 예기치 않은 공간에 나란히 두거나 크기를 왜곡시키고 논리를 뒤집어 이미지의 반란을 일으켰다. 장난기 가득하고 기발한 상상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관습적인 사고의 일탈을 유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르네 마그리트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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