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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대체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 건데?

선택이 자유롭지 못한 건 책임 때문이다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데 그게 맘대로 잘 안되네요. 이런 말들을 주변에서 듣곤 한다. 그러면 나는 진지하게 그들에게 말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세요. 하면 되지요. 뭐가 문제인가요?      


 우리는 왜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할까. 

 이유를 물어보면 꽤나 정당하고도 많은 이유들이 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서 지금 시작하면 남들을 따라가지 못할 거 같아서요. ”


 “아... 가족들이 걸려서요. 가족들 때문에 뭘 할 수가 있어야지요.”


 “하다가 실패하면 어떡해요. 그러면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데...”


 “내가 이런 거 하면 좀 그렇지. 사회적 명예와 지위가 있는데.”     


 뭐 이런 이유를 제외하고서라도 대략 수백수천 가지의 이유들이 존재한다. 결국은 너무 많은 합당한 이유로 지금의 형태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하지 뭐. 나이 들어서 언제. 아저씨 당신은 이미 나이가 들고 있다구요.     


 나는 기존의 일을 그만두고 사진을 찍고 글도 쓰고 있다. 돈도 안 되는 이런 행위에 치중하다니. 전공도 아닌 것이. 그것도 30대 중반이 넘어서 이 따위 일을 새로 시작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언제 해야 되나요?


 대체 언제 해야 되냐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팔다리가 고장 나고 난 다음에 해야 된단 말인가. 그럼 그때까지의 인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호호 할머니가 돼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나의 평생을 희생해야 하는가.           




 한 어부가 100억대 자산가를 건너편 뭍으로 실어주기 위해 노를 젓고 있었다.

 자산가가 물었다.

 

“하루에 물고기를 잡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얼마 안 걸리죠. 금방 잡아요.”


 “그런데 왜 더 많은 물고기를 안 잡죠?”


 “이 정도 고기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먹고살만한 양은 되거든요.”


 “그럼 나머지 시간은 무얼 하고 지내세요?”


 “늦잠 자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마누라랑 요리해먹고, 술 한잔 하고 친구들이랑 기타를 치면서 놀지요.”


“제가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시간을 더 투자해서 고기를 더 많이 잡으세요. 그걸 팔면 큰 배를 몇 척 더 살 수 있을 겁니다. 그 배로 더 많은 고기를 잡아서 잡은 고기를 식당이나 가공업체에 유통을 하세요. 사업이 커지면 LA로 가서 사업을 확장하고 기업의 회장님이 되는 거예요.”


 어부가 물었다. “그게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한 15년에서 20년즘?”


 “그리곤 무얼 하나요?”


 부자가 웃으며 말했다.


 “백만장자가 된 다음 은퇴하는 거죠. 그래서 조그만 어촌에 내려가서 늦잠 자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마누라랑 요리해먹고, 마음껏 술을 먹고 친구들과 기타 치며 놀면 돼요.”


 어부가 말했다.


 “난 이미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 삶을 단편적으로 잘 보여주는 우화가 아닐 수 없다. 대체 무얼 위해 우리는 달려가고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왜 20년 뒤에 해야 하는가. 물론 지금의 일이 벌이가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기존의 일을 조금씩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안 하며 사는 삶보다는 낫지 아니한가.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내 삶을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데에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흔히들 말하는 ‘인과율’ 때문이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라는 삶의 대 진리 때문에 완전한 내 삶임에도 내 맘대로 살지 못한다. 나의 행동에 따라올 결과들이 두려운 것이다. 


 타인의 시선들, 실패할 확률, 실패에 따른 주변인들의 말 한마디, 먹고 살 걱정 등 선택에 따른 수많은 결과들이 마음을 옥죄어 온다. 이러한 결과들을 머릿속으로 고민하다 보면, 선뜻하려 했던 마음은 어느새 바람 앞의 등불처럼 사그라든다. 그래 조금만 더 벌고 하지 뭐. 조금만 더 있다가 생각 좀 더 해보고 하지 뭐. 그러기를 40년, 당신의 머리는 벌써 희끗해지고 앉았다 일어났을 때 소리 나는 뻐근한 관절만 남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용감해야 한다. 어느 정도 무모할 필요도 있다. 어떠한 일을 하던 결과는 발생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 결과 역시도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럼 어떠한 쪽을 택하더라도 예측 불가능한 삶이라면 내가 원하는 쪽으로 도박을 해 볼 가치는 있지 않는가. 여기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점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을 선택하는 것보다 괜찮은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선택을 하면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거야. 더 확률이 높은 이쪽을 택해야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흡사 로또의 지난 회차들을 분석해 번호를 조합하는 것과 비슷하다. 로또의 번호를 분석하면 꽤나 과학적 결과가 나올 듯 하지만, 사실 로또는 랜덤 하게 돌아가는 공일뿐이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의 이야기를 빌어 보자면, 매우 바람직하고 사회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친구가 있었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대학 때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에는 공부하는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표본이었다. 그 친구는 하루에 4시간씩 자며 이를 악물고 삶을 버텨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당당히 대형 언론사에 취직을 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음을 터트린 친구. 그런데 그 친구는 입사 첫날 교통사고로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과연 우리에게 우세한 확률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나는 모든 확률은 5:5라고 생각한다. 생각하지 못하는 변수들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거라고는 단지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설사 그 많은 변수들을 고려해본다고 하더라도 위의 이야기처럼 단번에 삶이 역전되어버리는 요소들이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한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내가 책임을 진다라고 생각하면 모든 결정은 지금보다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혹 새로운 결정이 삶을 절망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꼭 그러하지도 않다. 먹고살 것은 하늘에서 준다고, 어떠한 선택을 하던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의 길이 생긴다. 그 길은 에둘러 갈 수도 있고 직진으로 갈 수도 있지만 최소 막혀 있지는 않다.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입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은 아니다. 처음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어떻게 해서든 여러 가지 일이 주어졌고, 또 그에 따른 새로운 인연들이 생겨났다.      


대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하루에 일을 하는 시간이 꽤나 많다. 어찌 보면 삶과 일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듯하다. 중요한 점은 그렇게 일을 하더라도 전혀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 이것은 삶의 자그만 축복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선택을 하는 데 있어 그다지 망설이지 않는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마음 단단히 먹고 책임을 질 생각을 한다. 만약 너무나 거대하여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안이 있을 때는 미련 없이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삶에 관한 사항이라면 어떻게든 뚫고 나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삶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요즘은 온전한 내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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