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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잃어버린 강 조강을 기록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The memory.2016


내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세상이었지.
-인터뷰 中-



 김포에는 ‘조강’이라는 강이 있다. 얼마 전부터 이곳 조강과 조강리를 담는 사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포시와 함께하는 이번 작업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이 가지고 있는 기억을 조명하는 데 있다.      


 조강은 서울과 개성을 이어주는 강이며 김포를 이어 한강까지 이어진 우리나라의 혈맥 같은 강이다. 그래서 조상의 강이며 할아버지의 강이란 의미로 조강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하지만 현재는 사라진 강이기도 하다. 지도 어디에도 조강이라는 말은 찾을 수가 없다. 단지 소수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름일 뿐인 조강. 하지만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분명히 그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조강을 따라 조강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대략 70세대 정도 기거했던 마을은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서울에 대학을 보낸 아이들을 보기 위해 이 강을 타고 마포나루로 종일 배를 타고 다녀오기도 했다. 그들의 삶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전쟁이 발발한다. 서울은 3일 만에 함락되었다. 갑작스러운 전쟁은 북한군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다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지금의 휴전선 부근까지 전세를 회복하고, 남한과 북한은 휴전선 일대 약 2km까지 비무장 지대를 선언한다. 비무장 지대 내에 있던 마을은 강제 이주당했다. 몇일의 유예 후 다시 마을로 복귀한다는 약조를 받은 사람들은 이불과 옷가지 몇 장, 당장 먹을 쌀만을 가지고 마을 밖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정부의 복귀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온 터전을 잃은 실향민이 되었다.     




The place.2016



 이번 사진 작업은 고향을 잃은 채 살고 있는 그들의 기억을 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는 거의 세상에 남지 않은 그때의 사람들을 추억하며, 남아있는 이들에게 소멸된 이들의 기억을 들어보았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 생존해 계시는 이들을 찾는 것이었다. 수소문 끝에 그들이 살고 있는 조강리를 찾았다. 들어선 마을은 평화로웠고, 한적했다. 평균 연령 70대에 27세대 정도가 살고 있는 마을은 낮에도 고요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모양새였다. 그때 정자에 앉아 계신 한 분이 있었다. 다가가 인사를 하고 보니 마을 이장님이시다. 이장님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마을에 당시의 기억을 하고 계신 분이 한 분 살고 계시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아마 조금 더 늦었으면 조강의 기억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약간의 기다림 끝에 우리는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어르신은 80대의 연세에도 매우 정정한 모습이었다. 마을 회관에 앉아 당시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복기 하기 시작했다. 15세의 꽃다운 청춘이었던 그는 전쟁의 추악함을 온몸으로 겪고 살아남았다. 같은 마을의 친구들은 당시 전쟁에서 거의 전사했다고 한다. 전쟁의 끝은 참혹했다. 전쟁 당시 모든 마을은 군인들에게 부식을 바치기 위해 조직화되었고, 결국 전쟁의 막바지 휴전선이 생기며 고향은 사라졌다. 2km 밖으로 밀려 나온 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모여 지푸라기로 움집을 짓고 살았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임시로 지은 집들은 앵앵대며 비명을 질러댔다. 움막으로 지은 집은 비가 오거나 눅눅해지면 수시로 갈아주어야 했다. 그것은 집이라 불렸지만 집이 아니었다.      


 조강을 통해 어업을 하던 이들은 모두 마을을 떠났다. 그들은 집터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일터까지 빼앗겨 버린 것이다. 모두 뿔뿔이 흩어진 그들은 인천 등지의 물이 있는 곳으로 흘러들어갔다. 마을은 순식간에 농사를 짓는 이들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그렇게 살기를 3여 년,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며 정부에서는 목재들을 마을에 지급한다. 주어진 목재들로 사람들은 보를 세우고 판자를 대어 바람을 막아줄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갔다. 과연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꿈꾸며 살았을까. 어르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당시의 기억을 꽤나 세세하고 하고 있었다. 당시 지급되었던 목재의 가로 세로 길이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기억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기록되고 있었다.      



Two line.2016
line은 두 개지만,
우리는 복수의 개념이 아닌 단수의 개념이어야 한다



 결국 이 이야기는 터전에 대한 이야기이며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지금의 불안한 평화를 지키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터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간과하고 있는가.      


 전쟁은 모두에게 죄악이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이 참담함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이 참담함을 느끼기 위해 같은 일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너무 불안하다. 이렇게 전쟁이 할퀴고 간 생채기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이 시대 우리는 왜 다시 전쟁의 위협에 시달려야 한단 말인가.      


 이번 작업은 외피적 요소인 전쟁과 터, 내적 요소인 평화와 삶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작업할 예정이다. 사진은 총 100여 장으로 구성되며 이 사진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오브제가 가미될 것이며, 이러한 오브제를 통해 이번 주제를 그려볼 예정이다. 작업 후 일정 기간의 전시기간을 거치고, 사진들은 마을에 기증할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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