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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인생에서 필요 없는 시간은 없다

하루에 18시간씩 일했던 그 시간은 내게 보물이었다



 이제 반팔을 입고 다니면 팔이 많이 시릴 정도로 날이 많이 추워졌다. 가을비가 한번 스치고 지나간 가을은 겨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맘때쯤 되면 손 끝이 다 갈라져 고생했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원래 내 전공은 법학이고, 20대에는 총무나 기획 일등 서류를 만지는 일을 하며 보냈다. 그러다 30대가 넘어가면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삶에서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면서 흔히들 그 나이 때 생각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내게도 찾아온 듯했다. 


통장 잔고에 달랑 찍혀있는 만원,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래서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그러던 찰나 여러 사건들로 인해 수중에 땡전 한 푼 없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1억 가까이 찍혀있던 통장잔고에는 달랑 만원이 남았다. 절망스러웠다. 당장 취직하기도 그리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사실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단지 자리들이 꽤나 있었고, 지금보다 더 나은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일을 하는 김에 장사를 배워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왕 배울 거라면 밑바닥부터 배워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당시 지인 한 명이 장사를 배우려면 1차 생산물 그러니까 농산물이나 축산, 수산 쪽의 장사를 배워 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그리 틀린 것도 아닌 것이 1차 생산물들의 경우는 유통기한이 짧고, 크기가 일정치 않고 무게가 무거운 관계로 물류나 관리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재고관리와 상품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몸에 베여야 한다. 아마 그치는 그런 의미로 그런 이야기를 한 듯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고 수소문 한 끝에 한 채소가게를 찾았다. 강남 지역에서 꽤나 큰 규모로 몇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그런 업체였다. 처음 찾아가서 했던 사장과의 면담은 쉽지 않았다. 일이 어렵다고 쓰지 않으려 했다. 오랜 이야기 끝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일부터 출근을 하기로 했다.     




출근과 동시에 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다음 날, 아침 7시. 출근과 동시에 일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모르는 것 투성이에다가 업종의 특성상 아침은 도매시장에서 장을 봐서 오는 물건들을 진열하는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모든 과일과 채소들을 진열하고 나면 숨 돌릴 틈 없이 매장 오픈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서비스업을 처음 해보는 당시, 고객들을 보고 인사하는 것부터 참으로 어려웠다. 하기사 무표정으로 살아왔던 시절이 어언 30여 년인데 그리 쉽사리 바뀔까. 거짓 웃음을 지어보아도 입꼬리가 당체 올라가지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략 3개월여간을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해야 했다.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하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짓 웃음이라니 그리고 웃음을 연습해야 한다니.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내 감정과 다른 웃음을 지어야 한다니. 그때부터 감정 노동은 시작되었다.     


 힘든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새벽시장을 따라가게 되었다. 흔히들 ‘사입’이라고 부르는 이 작업은 새벽에 가락시장에서 경매에 낙찰된 물건들을 구매해 오는 일이었다. 보통 새벽 2시에 나가서 경매를 보고 물건을 구매하는 형식이었다. 사실 이 사입 과정은 의무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경력이 어느 정도 된 이들만 할 수 있는 사입 과정을 내심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사입을 하러 새벽길을 나서곤 했다. 사실 많이 피곤했다. 매장이 종료되는 시간이 대략 10시 정도 됐으니까 하루에 3~4시간밖에 잘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이동 시간도 아껴야 했기에 근처 고시원에 방을 잡고 생활을 했다.     


손바닥만한 침대에 몸을 뉘이면 천장이 관 뚜껑 같았다


 10시에 녹초가 돼서 들어와 손바닥만 한 침대에 몸을 뉘이면 천장이 관 뚜껑 같았다. 머리를 움직이면 벽에 머리가 닿았고, 발을 움직이면 발이 벽에 닿았다. 내가 만약 죽어서 관에 묻힌다면 아마 이런 기분 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을 덮을 힘마저 없어 쓰러지듯 누우면, 낡고 오래된 TV 속 사람들이 뭐가 좋은지 자기들끼리 마냥 웃으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속의 사람들은 흡사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러다 슬며시 잠이 들었다.     





 알람 소리는 잔혹했다. 머리를 잠깐 뉘었다 떼면 금세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낡은 고시원의 문을 나서면 술에 취한 행인들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사치였다. 그때는 그 비틀거리는 행인마저 부러워 보였다. 그렇게 새벽에 시장으로 출발해 경매를 보고 물건을 구매하곤 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낙찰가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매일 가격이 변하는 경매 상품을 제값 주고 구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전쟁터에 출전한 기분이었고,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가게와 오래도록 거래하던 중 도매상들이 있었기에 흔히 말하는 바가지를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웃긴 건 매번 같이 시장에 나갔던 사장이 아파서 못 나와 직원끼리 시장을 나온 날 우리는 여지없이 바가지를 썼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일찍 일어나 경매의 모든 절차를 보는 쪽을 택했고, 그렇게 시장은 생각보다 냉혹했다.      


 전쟁 같은 새벽이 끝나고 매장으로 돌아오면 오픈하기 전 박스로 구매해온 제품을 소포장해야 했다. 과일과 채소를 더불어 꽤나 많은 물건들을 사 오는 까닭에 아침에 포장해야 되는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겨울이면 컴컴한 밤바람을 맞으며 포장을 하다 보면 손톱 끝이 모두 갈라져 피가 흘렀다. 그 통증은 손가락의 아픔보다 현실에 대한 자괴감으로 더 아파왔다. 어둠이 밀려나고 푸르른 겨울 새벽이 찾아오면 상쾌하다기보다는 아름답게 처절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절하게 아름답기보다는 아름답게 처절했다.      


 소포장한 제품들을 하나하나 진열하다 보면 서서히 오픈 시간이 다가왔다. 매일의 시세에 맞춰 가격을 책정하고, POP를 썼다. 계절에 따라 매장 디스플레이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고, 비가 오는 날은 오는 손님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에 박스를 깔았고, 눈이 오게 되면 매번 눈을 쓰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렇게 비몽사몽 1여 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자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수면부족으로 만성피로가 찾아왔고, 하루에 16시간의 시간을 서 있게 되면서 왼쪽 무릎 뒤 관절 인대가 늘어났다. 의사는 이건 완치가 될 수 없고, 쉬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몸을 혹사하는 세월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괴로웠다. 


 하지만 인생 전체를 봤을 때 그 짧은 시간의 혹사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이러한 스트레스가 축척될수록 남들보다 빠르게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실제 일한 시간으로 따져봐도 하루 8시간의 일반적 기준으로 했을 때, 거의 두 배 정도의 일을 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꽤나 단축한 것임은 분명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축척이 되어, 이후 나는 요즘 이슈인 로컬푸드(localfood) 사업을 초창기부터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에는 농업 쪽 컨설팅과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렇게 힘들었던 일들과 기존의 내 일을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혹독한 경험은 이렇게 글쟁이로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되고 있기도 하다.      




 세상에서 필요 없는 시간은 없다. 아무 의미 없이 보낸 것 같은 시간마저 돌이켜 보면 지금을 완성시키는 조미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 대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지금’에 대한 오만이며 자학일 것이다. 지금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구조적 로드맵을 복기해본다면, 필요 없었던 경험들은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 그것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일 수도 있고, 지금에 다다르기 위한 자유로운 행로였는지도 모른다. 단지 개개인마다의 방법과 순서가 다를 뿐이다.     


 안이 보이지 않는 주머니에 하얀색 바둑돌과 검은색 바둑돌이 10개씩 있다. 하얀색 돌은 행운의 돌이고 검은색 돌은 불운의 돌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손을 넣어 그것을 하나씩 꺼내야 한다. 검은 돌만을 먼저 꺼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하얀 돌만을 먼저 꺼내는 이가 있을 것이다. 혹은 고루고루 조화롭게 잘 꺼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돌을 먼저 꺼내 든 간에 총 20개의 바둑돌이 있다 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단기적으로 보면 검은 돌만을 꺼내는 이들은 하얀 돌만을 꺼내는 이를 부러워하겠지만, 그들보다 하얀 돌이 더 많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은 한 개인의 힘으로는 전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행운의 기회와 불운의 기회가 동등하게 있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돌을 더 먼저 꺼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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