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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왜 파스타의 원가는 470원이어야 하는가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우리는 왜 스타벅스에서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실까. 원두, 종이컵 등 커피 한잔의 원가는 알다시피 1,000원 언저리를 밑돌 것이다. 인건비, 전기세, 월세 등의 고정비용을 포함하더라도 커피 한잔에 들어가는 비용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즐겨 마실까.

 

자, 눈을 감고 스타벅스에서 체험한 경험을 상상해보세요.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친숙하게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에스프레소 기계의 커피 가는 소리, 매장을 가득 채우는 커피 향, 숙련된 솜씨로 커피를 만들어주는 바리스타들의 미소 띤 얼굴과 내 손에 쥐어주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그리고 입안 가득 머무는 깊은 커피 맛과 내 집과 직장을 떠나 가장 편안한 나만의 장소에서 만끽하는 삶의 여유와 대화, 편안함... 이런 감성적 자극들이 스타벅스 브랜드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생활의 일부분을 느끼게 합니다

- 스타벅스 100호점의 숨겨진 비밀 중(中) -



 스타벅스는 문화를 판매한다.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것은 문화로 치환된다. 문화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는 않지만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가치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받을만한 권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왜 이러한 무형의 가치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가.





 며칠 전 한 먹거리 고발 프로그램에서 파스타 전문점에서 만들어지는 파스타의 재료 원가가 470원에 불과하다는 내용으로 방송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10,000원에서 15,000원 사이로 형성이 되는 파스타 가격이 적절한가에 대한 비판이 담긴 내용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가치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가치란 무엇인가. 가치란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상품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인간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울러 우리는 가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의 영역에 대해 우리는 비용을 지불하고 그 만족감을 향유한다. 산업사회 초기에는 무형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다. 그것은 가치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기보다는 인지 자체가 불가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적인 예로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음원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남의 멜로디를 따서 쓰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음원이라는 가치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던 시대에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사회로의 발전을 의미한다. 



설국열차의  단백질 바를 먹고 있는 한장면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음식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만약 인간에게 음식이 끼니 때우기용에 불과하였다면 우리는 영화 <설국열차>에서처럼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바 만을 먹고살았을 것이다.

 ‘의식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옷(衣)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다음이 먹거리(食), 마지막으로 집(住)에 중요성을 두었을 거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는 18세기 중엽 산업혁명과 무관하지 않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것은 방직산업이었다. 방직산업의 대량생산 시스템은 모든 산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생산기계의 발전을 위해 철공업, 기계공업 등이 발전했고 이를 가동하기 위해 석탄업과 철의 생산이 가속화되었다. 그러다 보니 옷은 세계 역사에 있어서 꽤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트렌드가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항간에선 종종 ‘식의주’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만큼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모두들 살만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7~80년대 먹고살기 힘들 때 우리의 목표는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 당시 끼니를 거르는 이들도 종종 있었으니 삼시 세 끼를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식품 회사들도 저렴한 가격에 맛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한 음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들은 두 번째 문제였다. 


 그러다 90년대를 넘어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삶의 질이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모두가 살만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을 먹더라도 양질의 그리고 만족감이 느껴지는 요리를 먹기 위해 사람들은 돈을 지불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파스타를 얼마에 먹어야 할까. 파스타 전문점에서 먹는 파스타에는 꽤나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다. 음식에 대한 기획, 재료 선정, 요리사의 전문성을 쌓아오기까지의 노력, 플레이팅, 음식에 맞는 인테리어와 소품들. 음식은 이 모든 것들이 곁들여진 종합예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적 요소들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집에서 파스타를 조리해먹지 않고 파스타 전문점을 간다. 그리고 분위기를 즐기고, 같이 간 사람과의 대화를 즐긴다. 혹은 거기에 와인이 한잔 곁들여질 수도 있겠다. 이러한 오감만족을 위해 우리는 그 정도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이는 비단 파스타의 문제가 아니다. 음식을 비롯한 모든 상품에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와 자산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서비스의 한 측면이며, 이러한 서비스에서 가치를 느끼는 이들은 충분히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무형의 가치들을 날로 먹으려고 하는 몰상식한 사고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돈이 없고 있고의 차이가 아니라 인식과 가치관의 차이이다. 그들은 음식 전문점에서 모든 서비스를 다 받으면서도 저렴한 가격을 원하며, 좋은 공연을 보면서도 무료로 공연을 관람하기를 원한다. 그리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문화 예술 기반이 약하다고 외친다. 왜 그들은 물을 붓지 않고 컵이 비었다고 불평만 하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이제는 무형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방송에서 이러한 내용의 방송을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아닌가 한다. 모든 이들이 제공받는 서비스에 대한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자율적 시대가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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