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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수필] 인사동, 시대의 그늘 아래서

파면 그리고 지금 우리는 역사의 가장자리에서 꿋꿋이 서 있는가




 헌법 재판소에서 풍랑이 몰아치던 그날, 인사동을 갔다. 역사적 순간을 담기 위한 사진가의 몸부림이라고 거짓말을 해대지는 않겠다. 단지 인사동은 그날 일정의 중간 여행지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인사동시대의 가장자리에서 한 소시민이 목격할수 있는 그날의 역사적 풍경을 고스란히 담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은 불구경이라도 하듯 잠시 멈추어 서서 그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니 불이라고 해도 그다지 심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은 갑자기 뒤집어졌고 그 근간에는 시민들의 불(火)이 있기 때문이다.




길게 늘어선 경찰들은 오와 열을 맞추어 앉아 있었다. 혹시 모를 폭력사태에 대비해 그들의 청춘을 소비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이제 갓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제복으로 가려진 정체성을 뒤로하고 역사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햇살과 기분 좋은 바람의 산들 거림은 그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들은 인사동을 어떻게 기억할까. 지긋지긋한 군생활의 한 장소, 아니면 그들의 청춘을 불태웠던 곳, 그것도 아니라면  죽기 전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의 한 조각을 차지할까.






 인사동은 문화, 예술의 거리이다. 수많은 역사 속 전쟁과 폭력사태 속에서도 문화, 예술은 재생되었다. 문화예술은 어찌 보면 인간의 시원적 본능일지도 모른다. 어떠한 억압 속에서도 그것들은 다시 개화(開花)했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종족을 보존해나갔다. 그것은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에 대항한 또 하나의 구심점이었을 것이다. 그런 인사동에 경찰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생경했다. 경찰들의 빠른 걸음 뒤로는 문화 가게라고 버젓이 인사동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간판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렇게 인사동은 사라져 가는 역사 속에서도 스스로 발색하고 있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도 문화는 생존하듯 인사동은 그 고유의 색감을 가지고, 시대를 역행하며 존재하고 있었다.






인사동 거리는 봄이 있었으며, 문화예술이 부유했으며, 한국이 있었다. 그것이 비록 시대의 바람에 흩날리더라도 그 향기는 다시 모여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것은 농밀했다. 붓끝에서 여인의 치맛자락 끝에서, 사람들의 손가락 끝에서 문화 예술의 내음이 진동하고 있었다.




한편에는 미술과 디자인 원서를 판매하고 있었다. 책은 시대를 잊고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책은 책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이 있었고, 책을 읽는 이들의 모습에도 아름다움의 홀씨를 뿌려주었다. 그래도 삶은 아직까지 낭만적이었다.




 숙제는 끝났다. 이제는 모두 같이 나가야 할 때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모두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의 삶은 또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고, 태극기나 촛불을 든 손들을 이제 서로에게 내밀어야 할 때이다. 역사는 항상 그렇게 흘러왔고, 그 안에서 꿋꿋이 존재하던 이들은 꾸준히 존재해왔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가장자리에서 꿋꿋이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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