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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방법

적당한 온기의 커피에선 그리움의 맛이 난다




 인스턴트커피가 마시고 싶을 땐 무슨 커피를 먹을지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한다. 달달한 믹스 커피를 마실까 쓰지만 담백한 블랙커피를 마실까. 일단 지금 집에서의 선택은 2가지 밖에 없다. 물론 유자차나 녹차가 있지만 커피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커피가 먹고 싶을 때에는 꼭 커피를 마셔야 한다.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유자차나 녹차를 마신다고 한들, 커피의 만족감을 채울 수는 없다. 이것은 금연을 하기 위해 전자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흡연의 만족감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담배와 전자담배는 담배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완전히 다른 기호식품이다. 마찬 가지로 커피와 유자차는 대체 불가한 항목인 것이다.


 먼저 달콤한 것이 땡기는지 쓴 것이 땡기는지 결정해야 한다. 달콤한 것이 더 땡길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건강에 대한 우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탕이 많이 들어간 달콤한 음식 그러니까 예를 들어 소스가 듬뿍 뿌려진 돈가스 등을 먹고 나면 이를 상쇄해 줄 블랙커피가 땡다.


 하지만 지금처럼 약간의 공복에 비가 오는 날은 달달한 믹스커피가 땡긴다. 믹스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물을 끓이는 일이다. 정수기 물을 사용해서 커피를 타도 되지만 그래서는 온전한 믹스 커피의 향을 느낄 수 없다. 커피의 향이 날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커피포트를 활용해 100도씨 이상 물을 끓일 필요가 있다. 커피 포트에 생수를 붓는다. 커피 보트의 뚜껑을 닫고 버튼을 눌러 붉은 점등을 시킨다. 보통은 이때 컵에다가 믹스 커피 가루를 넣는다. 하지만 커피 가루를 먼저 넣으면 안된다. 너무 이르다. 먼저 컵을 데워야 커피의 온전한 향이 컵 안에서 휘몰아친다. 그래서 지금은 참아야 할 때이다. 오히려 물이 끓을 동안 어떤 컵에다가 커피를 마실지 고민해야 한다. 인스턴트 믹스 커피는 계량화된 중량과 용량으로 항상 맛이 똑같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러하지 않다. 무슨 컵에 마시는지, 어디서 누구와 마시는지에 따라서 완전 맛이 달라지곤 한다. 일단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종이컵은 피하는 것이 좋다. 환경 호르몬이 방출되기 때문에 좋지 않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빨리 온도가 올라갔다 내려가기 때문에 인스턴트커피를 오래도록 즐기기에 좋은 선택은 아니다.



 집에서 마실 생각이라면 마음에 드는 컵을 하나 고른다. 일단 컵의 색상은 초콜릿이나 베이지 색이 좋다. 이 톤은 고급스럽고 식욕을 자극하는 색이다. 찻장에서 베이지 색 커피잔을 꺼낸다. 하지만 그로써 모든 컵의 선택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색상만으로는 컵의 완성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 커피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컵의 두께도 중요한 요소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로 들어오는 따뜻하고 두툼한 촉감. 그 위로 살포시 흘러 들어오는 커피의 따뜻하고 달콤한 맛은 아름답다. 그리고 둥근 커피 잔 입구 속에 가득 차 코로 향긋하게 들어오는 커피의 고즈넉한 향. 이것이야 말로 완벽한 커피의 조화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조금은 두툼한 두께를 가진 컵을 고르는 것이 좋다. 두툼한 컵은 커피의 온기를 유지해주고 입술의 촉감을 좋게 해준다.


 생각을 하는 사이 커피포트에 물이 팔팔 끓었다. 이제 신중하게 선택한 컵에 물을 따를 차례다.

 커피포트를 기울이자 츠스스스 소리를 내며 팔팔 끓는 물이 컵으로 옮겨져 온다. 뜨거운 물이 컵을 데울 동안 잠시 오늘 어디서 커피를 마실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커피는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자리에서 마시는지도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은 비가 오니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마신다면 커피의 맛을 더없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하는 사이 컵이 뭉근하게 데워졌다. 두 손으로 잡았을 때 컵에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면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적당한 양만큼의 물을 남기고 물을 따라야 한다. 적당한 양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규정 지을 수는 없다. 싱겁게 먹는 이도 있고 진하게 먹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진한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물을 꽤나 많이 따라 버린다. 그러면 컵의 온도는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물은 컵의 1/3 정도만 남아 있게 된다. 이 상태에서 믹스 커피의 봉지를 뜯고 조심스레 가루를 타면 된다. 조금씩 조금씩 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커피와 프림, 설탕을 넣고 티스푼으로 저어준다. 이로써 믹스커피는 완성이 되었다.



 이제 따뜻한 커피를 호로록 마셔보면 그리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의 커피가 완성되어있다. 커피의 끝 맛에서는 단내가 난다. 그리고 중간 맛에서는 그리움의 맛이 난다. 그리움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커피를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셔야 한다. 그러다 보면 유년 시절 부모님이 손님과 담소를 나누며 마시다 남긴 커피를 살짝 마시는 기분이 든다. 그 맛은 어떤 에스프레소보다 강렬하고, 어떤 사탕보다 달콤했다. 그렇게 한 모금씩 마시며 비 오는 창문을 바라본다. 창문을 빼꼼히 열어보니 바닥을 찰싹찰싹 때리는 비의 기분 좋은 속삭임과 함께 습한 바람이 밀려온다. 습한 봄바람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봄바람 사이로 주택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오토바이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린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도란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봄이 지나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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