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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슬로우라이프는 버리는 시간이 아니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간다.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는 천국에 간 김밥만큼 메뉴가 다양하다. 들어간 재료에 따라 기기묘묘한 이름들이 전자 메뉴판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빨리빨리 넘어가는 화면 덕에 가격은 미처 보지도 못한다. 주문대에 보니 코팅해 놓은 메뉴판이 있다.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가장 무난한 메뉴를 세트로 주문했다. 카드로 계산을 하니 조그만 알림 막대를 준다. 여기에 불이 들어오면 오세요.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하면 마음이 급하다

 참 이상하다. 한정식 집을 가게 되면 음식이 나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게 된다. 물리적인 시간은 패스트푸드점보다 훨씬 늦게 나옴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정식 집에서 우리는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하면 마음이 급하다. 급한 일도 없는데도 언제 나오나 조리실을 기웃기웃 알림 막대를 만지작만지작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기대감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예상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정식 집에서는 식사가 의례 천천히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피타이저로 죽이 나온다. 죽을 먹고 나면 빈속을 채울만한 전채 요리가 나온다. 전채요리를 먹으며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때쯤이면 비로소 메인 요리가 나온다. 메인 요리를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디저트와 차가 기다리고 있다. 디저트가 나오고 나서도 우리는 천천히 앞사람과 담소를 나누며 식사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기대하는 것은 속도! 번개 같은 점원의 손놀림에 3분 만에 완성되는 햄버거 세트. 그래서 우리는 결제를 하는 순간 빠름을 기대한다. 참 사람 마음이란 것이 이렇게 간사하다. 기대에 따라 상대적인 시간들. 그래서 과거 모 햄버거사가 햄버거 속에 들어가는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프리미엄 햄버거를 만들었지만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패스트푸드점에게 잠재적으로 요구하는 건 속도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벨이 울린다. 재생지 같은 작은 봉투에 세트가 담겨 나온다. 세트를 들고 총총 집으로 향한다. 저녁을 해결하기 애매한 오늘 같은 날은 햄버거 세트를 애용하곤 한다. 




패스트푸드라고 꼭 패스트 하게 먹어야 하나?

 집으로 가지고 온 햄버거 세트를 조용히 노트북 앞에 펼쳐 놓는다. 그러다 문득 패스트푸드라고 꼭 패스트(fast) 하게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패스트푸드일수록 우리는 천천히 식사를 음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노트북은 잠시 미뤄놓고 놓여진 햄버거 세트를 먹어본다.

 먼저 콜라에 빨대를 꽂고 한 모금 마셔야 한다. 모든 음식을 먹기 전에 목을 채우는 것은 음식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음식이 조금 더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몸에 신호를 줘야 한다. 그리곤 종이봉투에서 감자튀김과 종이에 포장된 햄버거를 꺼낸다. 여기서 종이봉투를 그냥 버리면 안 된다. 종이봉투를 반에 반으로 접어 일회용 케첩을 진득하게 뿌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종이봉투는 그 역할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메인 요리를 먹을 차례이다. 여기서 감자튀김과 햄버거 중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예전 한 콩트 프로그램에서는 남자는 햄버거를 먼저, 여자는 감자튀김을 먼저 먹는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것은 남녀의 차이라기보다는 완전한 개인의 취향이다. 이것은 흡사 붕어빵을 먹을 때 머리부터 먹는지 몸통부터 먹는지 꼬리부터 먹는지에 대한 심리테스트와 같다. 각각의 선택에 따라 누군가 낙천적인 타입, 센스 있는 타입, 적극적인 타입 따위의 우스갯소리를 만들어 놓았지만 사실 가장 타당한 이유는 그냥 개인의 취향이다. 붕어빵은 어디부터 먹어도 맛있으니까. 그래서 햄버거 세트를 먹을 때는 순전히 개인적 취향에 따라 순서를 정한다.


 첫째 감자튀김을 하나 집어 먹어본다. 고소한 기름 냄새로 포장된 감자튀김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감자튀김은 맨 처음 집은 튀김이 가장 맛있다. 콜라로 입가심을 끝낸 입안에 가득히 풍겨오는 그 감칠맛. 그것은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 전채요리의 일종이다. 그렇게 감자튀김의 1/3을 즐긴다. 그리고는 햄버거를 집어 든다. 햄버거는 오늘 식사의 메인 메뉴이다. 메인 메뉴를 한 입 가득 베어 물어본다. 부드러운 빵 사이로 맛이 강한 소스, 소스가 스며든 고기 패티와 마요네즈가 입안 가득 볼륨감 있는 맛을 선사한다. 패스트푸드의 강렬한 맛이 뇌까지 바로 전달된다. 지금은 이 햄버거의 직설적 맛을 제대로 즐길 시간이다. 그러므로 햄버거를 먹는 동안에는 감자튀김을 먹으면 안 된다. 감자튀김과 햄버거는 각자의 색과 향이 강해, 합쳐지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햄버거의 맛이 익숙해져 갈 때쯤 햄버거는 모두 뱃속으로 소진되고 만다. 이때쯤 되면 배가 반쯤 혹은 2/3쯤 찰 것이다. 만약 이렇게 먹었을 때 배가 차지 않는다면 햄버거를 너무 빠르게 먹은 것이다. 음식을 빨리 먹게 되면 음식물이 위장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뇌에 포만감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햄버거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차지 않는다면 대략 햄버거 세트를 먹는 과정의 반은 실패를 한 것이다. 아마 햄버거를 하나 더 먹어야 배가 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햄버거를 먹는 시간은 천천히 음미한며 먹어야 한다. 이렇게 먹고 나면 2/3 정도 남은 감자튀김이 기다리고 있다. 남은 감자튀김은 디저트로 한 끼 식사로서의 포만감을 주고 햄버거의 느끼하다면 느끼한 맛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위해서는 콜라도 1/3 정도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콜라가 남아 있지 않다면 아메리카노나 인스턴트 블랙커피와 함께 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대략 20~30여분 정도의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보통 패스트푸드라고 하면 빠르게 먹어 버리기 십상이지만 이렇게 여유 있게 식사를 하게 되면 패스트푸드를 먹더라도 평온하고 부유한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가 있게 된다.





슬로우 라이프는 버리는 시간이 아니다

 물론 식재료나 조리방법이 중요하기는 하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지금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무엇을 먹든 어떻게 먹느냐는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원효가 해골물을 그리 달게 마셨듯, 우리는 패스트푸드도 즐겁고 편안하게 먹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천천히 느리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왜 모든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만 해야 하는가. 느리고 여유 있으면서도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닐까. 우리는 모든 면에서 슬로우라이프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슬로우 라이프는 버리는 시간이 아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더 풍성해질 수 있으니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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