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을 찾아 떠나간 평창 이효석 문학관
“근데 메밀꽃은 꽃말이 뭘까요?”
“연인”
900년을 산 도깨비는 은탁에게 메밀꽃을 내민다. 그녀는 메밀꽃의 꽃말이 무어냐 물어본다. 도깨비는 무심히 대답한다. “연인”.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인연의 매개체로 메밀꽃이 등장한다. 900년을 기다려온 인연의 꽃. 메밀꽃이 만개한 밭은 마치 거대한 하얀 파도 같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더 예쁘다. 비록 풀꽃은 아니지만 나태주 시인의 구절이 어울리는 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 <나태주> -
메밀꽃 하면 떠오르는 소설도 있다. 바로 ‘메밀꽃 필 무렵’. 누구나 아는 이 국민 소설을 쓴 작가는 이효석이다. 단편소설이지만 너무나 서정적이고 시적인 소설이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겠지만 지금 그 어휘들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정말 숨이 막힐듯한 문체였다. 마음에 든다. 이 대작을 쓴 이효석 작가의 문학관과 문학의 숲이 있는 곳이 바로 평창이다. 동계올림픽이 개최될 곳이기도 한 그곳. 그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의 경계선을 넘었다. 역시 강원도는 강원도였다. 습하고 흐린 날씨였지만 서울 경기의 그것과는 달랐다. 태기산 정상 부근 쉼터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피부에 시원한 바람이 스며든다. 저 너머로 풍력 발전기가 먹구름을 떠 받치고 있었다.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잠시 머물면서 풍경에 몸과 마음을 담아본다.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귓전으로 빛바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은 여행의 묘미이다. 살고 있는 곳과 다른 향기의 향연. 다시 현실로 돌아와 눈을 지그시 뜬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해 보니 문학관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목적지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도착한 이효석 문학관은 푸르렀고, 시원했고, 고요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강원도의 웅장하고도 남성적인 숲은 도시의 웅성거림을 포옹하듯 막고 있었다.
입구는 책장을 연상케 했다. 이효석의 작품명들이 쓰여진 책 모형의 건물이 천정을 받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보던 만화처럼 책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뚜벅뚜벅 더위를 헤치고 문학의 숲을 따라 올라갔다. 아!... 감탄사를 지르기도 전에 오른쪽으로 탁 트인 전경이 펼쳐졌다.
‘아 멋지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잠시 말을 잊고 시선의 흐름을 따라갔다. 흐르는 땀이 식는다. 탁 트인 전경은 인간의 것과 인간의 것이 아닌 것들로 혼재되어 있었다. 그 섞임을 표현하기 위해 한글에 ‘아름답다’라는 말이 존재하는듯했다. 역시 이곳을 오길 잘했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 멋진 남성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하니까 말이다.
뒤를 돌아보니 아기자기한 카페와 기념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그의 화상이 있었다. 관광객들은 이 멋지고 감성적인 남자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그는 죽어서도 인기가 넘치는 매력 남이었다. 화상은 당시 이효석의 방을 재현해 놓았다. 뒤에는 턴테이블이 놓여져 있었고, 글을 쓰고 있는 옆에는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기념관을 돌고 안 사실이었지만 지금으로 치면 이효석은 매력 남이었다. 항상 스마트한 정장을 입고 다녔고, 커피를 좋아했으며, 음악 감상을 좋아했다. 그의 소설은 향토적이지만 그는 감성적으로는 현대적이고 시대를 앞서갔다. 그랬기에 그런 마술 같은 어휘들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기념관에 들어가니 그의 삶이 쏟아졌다. 메밀꽃 필 무렵을 바탕으로 기념관이 구성되었지만 다른 작품과 그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볼 수 있었다. 소설에 나오는 장소들은 모두 실제 평창의 어느 곳들이었다. 짧은 시간 우리는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었으나 성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 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 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게 되었네....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딛었다. 앞으로 꼬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채 풍덩 빠져버렸다. 허비적 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채 졸짝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햇갑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한참 소설 속을 헤매다 보니 시장기가 밀려왔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메밀로 만든 요리. 다행히도 문학관 주변에서 메밀 요릿집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메밀국수, 메밀묵사발, 메밀전병을 시켰다.
요리들 마다 메밀의 구수한 맛이 느껴졌다. 맛은 강원도처럼 소박하고 정직했다. 짜거나 맵지 않았고 자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순수한 맛이었다. 말투처럼, 우뚝 솟은 나무처럼, 땅처럼 그렇게 음식의 기류는 흐르고 있었다. <계속>
<문화예술과 함께 떠나는 여름 여행>
1. 수덕여관과 고암 이응노 생가터-01
2. 수덕여관과 고암 이응노 생가터-02
4. 메밀꽃 필 무렵을 찾아 떠나간 평창 이효석 문학관-02
5. 담양 죽녹원 대나무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6. 담양 메타쉐콰이어길에서 찾은 시원한 여름
7. 미정
8. 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