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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명이 살고 있는 동네

#동네를 담다(전북 장수군 산서면 신월마을)



동네를 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오랜 시간 머물지는 못하지만, 동네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 시선으로 동네를 재발견하는 일인지라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 줌도 업신 여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북 장수군 산서면에 있는 신월마을 역시도 그랬습니다. 64분 정도밖에 살지 않는 이 작은 동네는 너무나 한적한, 그래서 동네가 더 오롯이 잘 보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 한적한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오래된 집 한 채가 보입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흙벽은 세월의 주름이 가득하고, 돌담 사이에는 오래된 바람 소리가 세어 나옵니다. 창틀엔 언제인지 모를 12월의 달력이 붙어 있습니다. 세월이 정지되어버린 듯한 이 집이 그래도 을씨년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정을 붙이고 사는 사람의 온기 때문인지 집은 따스함을 품고 있습니다.




낮은 돌담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할머니 3분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내일 또 이야기할 거리가 남는 할머니들의 대화. 할머니들의 하루는 또 그렇게 흘러갑니다.




집집마다 가장 많은 것은 단연코 땔감입니다. 이제 여름의 끝자락이자 가을의 초입, 하지만 이 동네는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람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젊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지금부터 차근차근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합니다. 나무 잔가지부터 수수겨까지 창고가 가득합니다.




창고 사이에 쪽파씨를 말리고 있습니다. 볕을 받아서 바싹 잘 익었습니다. 아래에는 땅콩이 바구니에 담겨 있습니다. 아마 생땅콩인 듯합니다. 땅콩을 까는 소일거리를 하다가 시간이 다 되어 창고 한켠에 잠시 놓고 간 듯합니다. 모든 물건들 그냥 버려놓은 듯 하지만 작은 소품처럼 보입니다. 또 모아놓으니 예쁩니다.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습니다. 서울은 폭우가 쏟아진다고 했는데, 이곳은 날씨가 꾸릅꾸릅하긴 해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은 동네이지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이 조용한 마을의 풍경은 그래서 더 아름답습니다.




마을 저편에는 울금 밭이 있습니다. 춤을 추는듯한 모양새를 가진 울금들이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주로 벼를 생산하는 이곳이지만, 간단히 작물들도 이렇게 재배한다고 합니다. 울금 밭의 푸르름이 동네를 온통 뒤덮습니다. 자연의 물감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옆에는 옥수수 밭이 있습니다. 옥수수의 수술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옥수수 밭은 하늘과 함께 서 있음으로써 스스로를 낭만적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낭만을 말하지만 자연은 항상 낭만을 부여합니다. 단지 우리가 느끼고 싶을 때만 느끼기에 우리는 수많은 낭만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자연의 법칙은 거스를 수 없는 거겠지요. 거미 한 마리가 메뚜기를 실로 꽁꽁 묶고 있습니다. 잔인해 보이지만 이런 자연의 법칙이 없다면 이 동네는 물론이고 세상이 돌아갈 수가 없을 겁니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눈으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해하는 날이었습니다.




서서히 노을이 익어갑니다. 노릇노릇. 그것은 아련합니다. 이름 모를 동네에서 맞는 노을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까요. 하늘 위에서부터 벨벳처럼 살포시 내려오는 노을이 서서히 이 조그만 마을을 덮기 시작합니다. 곧 어둠이 들이닥칠 테지요.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이곳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ps. 안녕하세요. <동네를 담다> 프로젝트는 알려지지 않은 동네를 사진가의 새로운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을 통해 숨은 풍경들과 정서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이 추후 소중한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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