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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일만 명, 글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구독자가 일만 명이 되었다. 구독자에게 푸시가 가는 브런치의 시스템을 놓고 봤을 때 일만 명의 구독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과 비교해 볼 때 콘텐츠가 소비되는 플랫폼이라는 특징은 같지만 훨씬 진득하고 여운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점점 글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얼마 전 [동네를 담다] 전북 장수군 편에서도 나는 사진으로 담았던 쪽파 씨와 마늘을 구분하지 못해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사실 자세히 보면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며 가벼이 넘긴 결과이다. 그만큼 글은 느끼지 못한 사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쪽파씨를 보고 마늘이라고 이야기 했다. 왜 나는 그렇게 생각 했을까

많은 이들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많은 무게가 느껴진다. 예전 군대 초급장교 시절 내게 연대장님은 항상 이런 말을 남기곤 했다.


"장교란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장교는 무릇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와 같다. 아무도 지켜보는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그렇기에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이 흐르고 중위를 달았을 때 수많은 병사들과 부사관, 내 밑으로 들어온 초급장교와 윗사람까지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의 실수라도 보였을 때 그들은 언제든지 나를 마음 한 켠으로 지적질하고 비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건 사실 그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내가 차지하고 있었던 위치, 그리고 그 위치에서 감당해야만 하는 무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구독자가 일만 명이 된 지금의 시점. 나는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하루에도 수천수만 개의 글과 콘텐츠가 올라오는 온라인 세상, 오늘 올라온 글이 내일이 되면 바로 잊히는 그런 세상이지만 키보드를 함부로 두드리고 싶지는 않다. 


예부터 선비들은 방에 혼자 있을 때에도 여럿과 같이 있듯이 스스로를 다잡았다고 한다. 비록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온라인 세상이지만 컴퓨터 앞에서 글을 한편 써 내려가는 것은 수백만 명이 보고 있는 중앙에서 글을 쓰는 심정과 같다. 


글은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위로해 주기도 한다. 나를 보듬어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보듬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글을 가로지르는 한 가지 원칙은 진실성이다.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보는 만큼 내가 느끼는 만큼만 적는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이 화려하거나 맛깔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100명의 대중성을 얻기보다는 좋아하는 1명을 위해 글을 쓰려 노력한다. 그것이 가장 오래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길지 않은 삶을 통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 1만 명을 기준으로 다시 글을 준비해야 할듯하다. 더 나은, 더 도움이 되는 글. 과연 어떤 글일까.






대략 지금까지의 글을 분석해본 결과 <관전수필>,<여행에세이>,<사진강의>가 그래도 가장 괜찮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3가지를 중심으로 글을 이어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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