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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YOLO)와 카르페디엠

30대에 인생을 다시 쓰다



 얼마 전 <꽃보다 청춘>에서 류준열은 여행 중 홀로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미국 여대생을 만난다. 류준열은 그녀에게 멋지다고 감탄을 한다. 여대생은 류준열의 핸드폰에 메시지를 적어준다. ‘YOLO(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번뿐이다.      


‘YOLO(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번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욜로 라이프라는 말이 유행한다. 하지만 언어는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세상 속도가 너무 거세다 보니 일부 사람들은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또 어떤 이들은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를 소비하는 삶을 살자 라는 신조를 가지기도 한다. 이런 트렌드는 몇 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이는 서점가의 스테디셀러만 봐도 알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20대 000에 미쳐라’,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000’ 등의 공격적인 책 제목들이 인기를 끌었다면 이제는 ‘힘 빼기의 기술’, ‘미움받을 용기’,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 등의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유가 어찌 됐건 우리는 이제 현재의 삶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법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회사에서 기획 일을 했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운가에 대해 항상 자문했다. 스스로를 괴롭히던 이 질문들을 나는 몇 년 전에 끝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내 인생을 더 이상 헛되이 쓸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일을 그만두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구나 그러하듯 걱정이 밀려왔다. 과연 이런 일들로 내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굶어 죽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주변에서는 30대에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너무 위험이 크다고 이야기했다. 아니 30대 중반이 넘어서 무얼 바꿔. 그래도 아직 30대이지 않는가. 시간이 흐른 후 뒤돌아 봤을 때 느껴질 허무함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걱정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무작정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나를 표현하고, 누군가를 표현했다. 그러다 하나 둘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필요한 이들의 글을 써주었다. 일부 문예지에서는 등단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고 어느 플랫폼에서는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 내 삶은 꽤나 윤택해졌다. 물질적인 면을 떠나 정신이 충만한 상태로 돌아섰다.      


hands.2017


 삶은 명상적이 되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 관조할 수 있었다. 사회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삶은 고즈넉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당시 일을 그만둔 일은 백번 잘한 일이었다. 그 이후부터 줄곧 나는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 워커홀릭이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삶은 항상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작은 민간 갤러리를 열었다. 내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또 본인들의 생각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전시는 생각의 교감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ime shadow.2017


 인생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쓴다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소비한다는 의미다. 나는 인간에게는 꽤나 많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희소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많이 가지고 있지만 희소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시간밖에 없을 것이다.


 인생이 한번뿐이다(YOLO)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상에 매몰되어 우리는 삶의 전체를 바라보지 못한다. 내가 일을 그만둘 수 있었던 근본적 원인은 일과가 끝난 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댔던 점 때문이다. 과연 누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 것인가.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조금 있다. 기존에 들어오던 월급이라던지, 생활의 안정이라던지. 하지만 이 조그만 당근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타인을 위해 살아가게 하고 타인에 기대어 살아가게 만든다. 시간이라는 통장이 있다면 우리는 이 통장에서 끊임없이 시간을 빼내어 다른 누군가에게 ‘타의적’으로 헌납하고 있는 셈이다.      


catch.2017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재. 누군가는 행복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의 하루하루가 모여 현재를 만들고, 현재의 하루하루가 미래를 형성한다. 현재가 행복하지 않는데 과연 미래에 꽃길을 걸을 수 있을까. 중요한 점은 현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시시 때때 무한정으로 있지만 엄청난 희소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잘 쓰기 위해 현재를 잡아야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로빈 윌리암스 분)은 학생들에게 외친다. 라틴어로 카르페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우리는 모두 죽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키팅 선생의 말 한마디에 인생을 바라보는 척도가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키팅 선생은 존재한다. 바로 우리 자신.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카르페디엠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 우리의 현재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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