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저녁시간
태어난 지 이제 막 80일을 넘기고 있는 아이. 시도 때도 없이 아이는 생존본능을 호소합니다. 배가 고프거나 졸릴 때면 온 힘을 다해 요구사항을 외칩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 미션수행에 소비합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100일이 가까워 오니 한 번에 자는 시간이 늘어나 우리 부부는 비로소 조촐한 저녁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지 1~2시간에 불과한 저녁시간이지만 황금 같은 저녁시간입니다.
와이프는 이 시간을 활용해 광목천에 그림을 그립니다. 하루 만에 채색까지는 못하지만 밑그림까지는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보태니컬 아트와 민화를 했던 실력을 십분 발휘하는 이 작업은, 장차 아이의 100일 상 때 뒷 배경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물론 100일 상은 집에서 치를 예정입니다. 그리고 사진은 제가 찍습니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데, 내 아이의 사진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와이프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두었습니다. 사진을 담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많은 선택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 있는 순간이라고. 비록 아이 때문에 우리의 시간이 줄었지만 그것이 결코 부정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개인작업이나 일할 시간은 줄었지만, 소중한 것이 하나 생겼으니 그만큼의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얻는 것들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삶이란 건 참 살아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