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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단어를 써도 다른 의미들이 난무하는 관계들

사진촬영 실무에서 겪는 의사소통의 문제



 얼마 전 태국 음식 전문점의 촬영 의뢰를 받았다. 이 날은 촬영이 2건이라 스케줄이 빡빡했다. 덕분에 중간에 카메라 가방을 놓고 오는 불상사를 겪었다. 다행히도 이동거리가 길지 않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사실 촬영은 2~3시간이면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촬영 전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보통 사진을 촬영장에 도착해서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은 촬영장에서는 준비된 대로 진행을 할 뿐이다. 그래서 사전에 의뢰인들과 많은 부분 맞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의뢰하는 분들이 애매하게 말한 부분들에 대한 해석은 모두 내 몫이다. 물론 해석 후 그 모습들을 다시 보여 드리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밝은 톤'이라는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이 밝음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항상 확인을 받아야 한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쓰는 단어만큼이나 불명확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인식하는 붉은색과 당신이 인식하는 붉은색의 기준은 도무지 맞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단어만큼이나 불명확한 것은 없다


 우리가 군대에서 흔히 말하는 '각'을 잡는 이유는 군기를 잡는다라는 취지에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목적은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물건을 놓이게 하는데에 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군대에서는 관물대(사물함)에는 모든 물건들의 제자리가 있다. 처음 이등병으로 입대하게 되면 관물대 정리법에 대해 배우게 되는데, 이는 물건을 단지 깨끗히 정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수통은 어디에 놓아야 하고, 속옷은 어디다 놓아야 하는지 같은 위치를 교육받는다. 이는 바로 전쟁이나 위급상황 시 자동적으로 군장을 결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군대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손의 촉감과 위치만으로도 충분히 군장(군용 배낭)을 꾸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군대 용어를 익히기 시작한다. 군대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에 대해서 교육받고 그 단어들을 활용해 생활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회에서 아무리 똑똑하던 친구들도 군대에 들어가면 어벙벙해진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 역시 전쟁 등의 위급상황 시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이다. 이렇게 군대 같은 특정 집단에서는 이러한 언어의 상징적 통일화가 매우 중요하다. 자칫 중간에서 잘못 알아듣게 되면 그야말로 패전이라는 낭패를 겪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가족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틀어진 헤드폰을 끼고, 상대방의 입모양만을 보고 단어를 맞추는 게임이 있었는데, 4~5명의 사람들을 거치고 나면 전혀 다른 단어가 되어 보는 이들의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사실 의뢰인과의 첫 소통은 거의 이런 게임과 비슷하다. 각자 가지고 있는 사전 정보들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는 같은 단어를 쓰고 같은 문장을 쓴다고 해서 같은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것은 '말' 언어를 '사진(이미지)'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당연한 오류이다. 


그렇게 몇 번의 의사소통이 오고 간 이후에야 단어들은 조금 쓸만해 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가장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각자의 단어가 가진 내제적 의미를 통일시킨다. 즉 레퍼런스를 공유하며 이미지를 맞추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몇 번의 의사소통이 오고 간 이후에야 단어들은 조금 쓸만해 진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의뢰인이 정확한 컨셉을 가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사람이 모든 분야를 다 컨트롤할 수는 없다. 명확한 컨셉을 기획해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상공인들의 경우에는 그럴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이쪽에서 컨셉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촬영한 태국 음식점의 사진들이다




 사실 촬영할 때 접시 위의 세팅은 건드리지 않았다. 비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푸드스타일링이 필요한 곳이었다. 모든 요리사가 스타일링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리와 스타일링은 분야가 다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음식은 맛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전체적인 분위기에 신경을 쓰고 접시 위의 스타일링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일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다. 이러한 모든 변수들을 다 대비하고 막기에는 아직 나로서도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의사소통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비단 일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관계에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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