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투어-해물라면-더클리프
제주의 여행기들은 감성적이다. 일상을 탈출하고 제주에서 감성을 충전한다. 그래서 사려니숲이나 오름 같은 아련하고 아름다운 공간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는 관광스러운 관광을 기획했다. 네 살배기 아이가 있는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 걷는 동선을 줄이고 즐길 수 있는 곳들을 찾았다.
기록은 폰카로 했다.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의 가장 좋은 카메라는 폰카였다. 그리고 이 매거진의 제목이 <사려 깊은 폰카와 작은 메모장>이지 않는가. 찰나의 감정과 장면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절대 친절하지 않다.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있는 정보를 담아주지 않는다. 대신 오른손을 들어 누른 감성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럼 오늘도 '씬' 별로 제주를 담아보았다.
우리는 보통 제주에 와 뭍에서 바다를 보아 왔지만, 이번에는 바다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경험을 하기로 했다. 같은 장면이라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풍경은 달라진다. 결국 내가 서 있는 곳이 중심이다. 나의 위치, 생각, 관점에 따라 세상은 달라 보이기 마련이다. 이번 제주의 시작은 가장 푸르른 곳에서 시작했다.
배의 자태는 웅장했다. 많은 이들의 기억을 담고 또 새로운 이들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창공과 파도를 가르며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Blue로 가득 찬 세상은 굉장히 설레었다.
바다에서 바다를 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바다의 무중력으로 약간의 멀미와 메슥거림은 있었지만 바다는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맞아주었고, 선상의 음악소리만이 하늘로 울려 퍼졌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고요해졌다. 그렇게 6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요트를 타고나니 갑자기 해물라면이 먹고 싶었다. 제주에는 해녀 라면 등의 이름으로 해물라면을 판매한다. 30여분 달려간 곳은 숲섬이 보이는 곳이었다. 우리는 숲섬을 보며 라면을 먹었다.
사실 어디서나 해물라면을 먹을 수는 있지만 해녀들이 잡아주는 해산물로 만든 해녀 라면이라는 마케팅은 더욱 라면을 맛있게 만든다. 맛은 의도와 사전 생각, 오감에 영향을 받는다.
장소를 옮겼다. 바다를 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 차가운 바닷바람이 머리를 향해 치닫는다. 조금 선선한 가을바람이었으면 좋을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제주의 겨울은 살을 에는듯한 추위는 아니다. 순한 바람이 귓불을 스친다. 추운 날 차가운 맥주는 겨울의 냉면과 같다.
사진상으로 이곳은 매우 평화롭고 순해 보이지만, 실제의 이곳은 조금 더 힙하고 리드미컬하다. 이곳엔 전속 DJ 가 있다. 그들은 몽환적이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음악을 계속 틀어주는데,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음악은 공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곳을 다녀와 본 경험으로 이곳은 사진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현장은 사진이나 영상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가족과의 관광. 이 루트는 결코 조용히 생각할 시간은 없다. 가족들을 챙기고, 다음 코스에 대해 생각하기 바쁘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여서 의미 있는 여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잠깐의 시간을 내어 생각한다. 항상 찰나의 고요함이 필요한 시점이다. 달리는 것을 멈추고 생각도 멈추고, 모든 신경을 바다에 집중한다. 그렇게 내려앉은 마음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