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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끈기 없는 자들을 위해

끈기없음을 노력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 종종 유튜브를 틀어 놓곤 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요약본들을 주로 보는 편인데 생각대로 집중은 제대로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하는 시간에 아무것도 틀어놓지 않으면 지루하다. 이 지루함을 견뎌내기 위해 나는 일을 하며 종종 볼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물론 이건 멀티태스킹이 아니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드라마의 내용을 제대로 못 보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은 어느 것 하나에 오래도록 집중하지 못하는 나의 개인적인 성향에 기인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책을 읽을 때에도 여러 권의 책을 번갈아가며 본다. 살면서 책 한 권을 목차부터 끝까지 읽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한 챕터를 읽고 나면 흥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정말 재미있는 책은 쉬지 않고 며칠만에 모두 읽어버리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요령이 생겨 책의 목차를 먼저 보고 소제목이 흥미로운 부분만 골라서 읽곤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과정의 즐거움을 그다지 만끽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집중한다.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참을성이 없어 오랜 과정이 필요한 일들을 잘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순간 집중력이 필요한 일들 위주로 내 삶을 구성해왔다.     



끈기 없음. 이 말은 내 삶을 계속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는 넌 왜 맨날 하나를 끈기 없이 못하냐는 말을 종종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스스로 끈기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나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아 나는 끈기 없는 아이구나. 한 우물만 파고, 끈기 있게 하나에 매달리는 아이들이 성공한다던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며 거대한 바위처럼 나를 내리눌렀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20대가 된 나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작심삼일’이었다. 계획을 세워 끝까지 실천한 경우가 몇 안되었다. 하지만 작심삼일만 하던 그는 40대가 되어  지금은 따뜻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가족을 돌보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취미를 직업으로 삼아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가지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렇게 되기까지 끈기 없는 아이에게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했다.      


첫째 계획 따위 세우지 마라.


끈기 없는 인간에게 계획이란 스스로를 부정적 감정으로 옭아매는 가시넝쿨과 같다. 어차피 지켜질 확률은 10%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장기적인 계획이나 프로젝트는 세우지도 입밖에 내지도 않았다. 지금도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계획이라곤 일주일 단위나 한 달 단위 계획밖에 없다. 매달 책 한 권 읽기, 아침운동 매일 하기 등등의 계획은 30대 이후 세워본 적도 지켜본 적도 없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획의 심리에는 하기 싫지만 나의 발전을 위해 억지로 해야만 해라는 감정이 담겨있다. 결국 계획이라는 건 하기 싫은 일에 강제성을 스스로 부여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계획을 끈기 있는 자들은 지키고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처럼 끈기 없는 자들에겐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단지 몇 가지 선택은 있다. 스스로를 납득시켜 재미있게 만들어 그것을 행하던지, 아니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줄여서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내가 꼭 해야만 하는 목표가 있다면 이걸 수천 개로 쪼개서 계획한다. 이렇게 작게 쪼갠 계획은 장기 프로젝트라 할 수 없다. 그냥 초단기 프로젝트들을 계속해나간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잡아 실행한다. 작은 목표를 지속적으로 완료하다 보면 내게 ‘프로젝트 완수’라는 만족감이 생긴다. 이러한 만족감을 통해 목표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목표치까지 달려가야 한다. 이 방법에 대해선 내용이 많아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둘째 사안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꿔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말은 ‘한 우물만 파라’였다. 한 우물을 파면 우물이 깊어지고, 그 분야에 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 어른들의 말씀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방법이 전혀 맞지 않았다. 맞지 않는 방법으로 세상을 살 수 없었다. 글의 초입에도 말했지만 책도 여러 권을 돌려가며 읽고,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성격인데 어떻게 한 우물을 깊게 팔 수 있겠는가. 우물을 파다 보면 옆에 있는 논도 기웃거리게 되고, 옆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는 무리도 관심이 가고 그런 성격인데...      

그럴 땐 넓게 오래 파고 들어간다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땅을 깊게 파기 위해선 넓게 파야한다. 좁은 공간을 깊게 파려면 물리적으로 많은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넓게 주변부터 파기 시작하면 어느새 우물은 깊어진다. 내가 사안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러했다.      

먼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모든 일들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한다. 관심 있어 보이는 공부든 연구도 무턱대고 한다. 남들이 보면 이일 저일 하는 것 같고 맥락도 없는 것 같아 보일 수 있다. 다정한 참견러들은 그러다 나이만 먹는다. 얼른 자리 잡아야지 등등의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도 된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살다 보면 각자의 인생에서 누구나 경험의 점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점을 이어주면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이 완성된다. 이러한 결과 도출방식은 시간이 좀 걸리고 돌아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겹지 않고 결과가 완성되었을 때 그 깊이와 임기응변 속도가 남다르다.     

나 역시 지금의 콘텐츠 및 광고 사진업을 하기 전에는 인연 닿는 대로 온갖 일을 했다. 직업군인, 촬영 알바, 카페 서빙, 과일장사, 마케팅 기획자 등등. 그 모든 일들이 지금은 하나의 줄기를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암흑이지만 멀리서 봤을 때 나는 내 인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셋째 끈기 없는 사람이 잘하는 일을 해라     


그래서 결국 끈기 없는 인간들이 잘할만한 일을 해야 한다. 끈기라는 것은 좋든 싫든 무언가를 집중하게 해주는 파워를 말하는데, 나처럼 끈기 없는 인간은 그런 파워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순간 집중력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보았다.     

 몇 가지 조건이 나왔다.      


1 결과가 바로바로 나올 것


2 프로젝트가 단기적일 것


3 일의 효율이 좋을 것          


 이 조건에 맞는 일 중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보았다. 그러다가 나는 ‘상업사진’이라는 아이템을 찾아냈다. 사진은 취미로도 꽤나 오래 했었고 직업으로 삼더라도 오래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상업사진은 저 3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했다.

 디지털카메라이기에 결과가 바로바로 나왔고, 대부분의 사진 촬영은 1~2주 사이에 기획부터 촬영까지 끝이 난다. 그리고 다른 일보다 효율이 좋은 편이다. 그렇게 나는 내게 최적의 일을 찾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살고 있다.          




끈기 없음을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성향이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타고난 재능이다. 그것은 피아노에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끈기 없음은 비난받을 부족함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나이가 들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자존감이 조금 더 보존되었을 텐데. 지금도 수없이 끈기 없음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들에게, 본인의 성향에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서 살면 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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