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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진작가 혜류 신유안
Feb 11. 2022
SNS를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우리는 인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SNS의 폐해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꼭 나오는 내용 중 하나가 잘 나가는 타인에 의해 느끼는 상실감이라는 부분이다. 상사에게 깨지고 고객에게 시달리고 집안일에 녹초가 되었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밤 10시. 힘든 몸을 소파에 털썩 뉘이고 핸드폰으로 열어본 SNS에는 온통 즐거운 이야기뿐이다. 호캉스를 다녀온 행복한 연인들, 남편이 사준 명품백을 자랑하는 부인들, 아이와 함께 잘 놀아주는 가정적인 남편들이 넘쳐난다. 친구들의 피드에는 매번 놀러 가서 맛있는것을 먹고 웃고 있는 사진들이 즐비한다. 이걸 보고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남의 집 남편들은 저렇게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러지"
"저 집 와이프는 저렇게 남편을 사랑하는데, 왜 우리 집은 이렇게 맨날 민둥민둥할까."
등의 심적 허탈감을 느끼며 핸드폰을 꺼버린다. 하지만 핸드폰은 재미있는 게 너무 많다. 결국 다시 화면을 켜고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또 알림이 온다. 눌러보면 낭만적인 캠핑을 하고 있는 친구의 사진이 뜬다. 이럴 때 속이 터지면서 우리는 생각한다. 나만 빼고 모두 다 잘 살고 있구나.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SNS에 사진과 이야기를 올리는 사람들의 진심의 소리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우리가 SNS에 일상의 어떤 부분을 올려야 한다면 과연 어떤 부분을 올릴까? 평소 매일 먹는 8,000원짜리 점심을 찍어 올릴까, 아니면 기념일 날 함께 먹는 10만 원짜리 정식 코스를 찍어 올릴까. 때에 따라 너무 바빠 1년에 한 번 점심을 먹는 이들에게는 8,000원짜리 점심도 SNS에 올릴 수 있는 콘텐츠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만 원짜리 정식 코스를 올릴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일을 온라인상에 대단한 듯 올린다. 그들은 한 번씩 10만 원짜리 식사를 하고, 한 번씩 명품을 선물해주고, 한 번씩 아빠들은 아이와 놀아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자랑할 욕심으로 SNS 피드에 일상을 올린다. 만약 돈 많은 누군가가 매번 10만 원짜리 식사를 하고, 명품을 밥먹듯이 산다면 이러한 내용을 SNS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부자들은 본인이 부자임을 더 감추려 한다. 알려짐으로 인해 잠재적으로 손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매일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는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SNS에 올리지 않는다. 힘들지만 겨우 시간을 내어 힘들게 아이들과 놀아준 날, 그날이 바로 SNS에 우리 아이와 아빠가 같이 얼굴이 나오는 날인 것이다.
그래서 그 피드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관심좀 가져줘. 나 이렇게 플렉스(FLEX)한걸 하고 있어"
그것은 관심의 발로이다. 우리는 항상 삶에서 주목받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주목받지 못한 삶이란 연예인처럼 누군가의 인기로 살아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내 삶에서 나로써 인정 받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누군가는 분명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엑스트라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설사 주인공으로 살아간다고 확신하더라도 우리가 맺는 관계에 따라 우리는 항상 관계상 '을(乙)'의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렇게 자신의 삶에서조차 소외받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가 관심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가 인정받을 수 있는 SNS의 플렉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의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힘든 삶을 견디며 살아간다. 타인의 피드를 보며 그들에겐 그런 일들이 100일간 100번은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겨우 한번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나, 우리와 그들은 모두 가엾은 자들이다. 세상에 핍박받고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면서 어짜다 한 번씩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같은 그룹속에 있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그들을 더 안아주어야 할 때이다. 쑥쑥 발이 빠지는 진흙밭을 같이 걸어가고 있는 인생의 동기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웃음 지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SNS를 대하는 태도가 되면 좋을 것이다.
'태도'라는 것은 예의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이해에서 나온다. 내가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라면 예의가 좀 없더라도 좋은 태도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상대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예의를 차려도 차가운 기운을 어찌할 수 없다. 그래서 SNS 매체의 심리적 특성처럼 행동하는 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 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인간에 대한 연구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사람들은 연륜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업을 하던, 친목을 맺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이 연륜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연륜이라는 것이 나이가 먹는다고 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나온다.
우리가 살아가며 누군가(외부 상황)에 의해 문득 속상하고 질투 나고 북받치는 감정이 생겨날 땐 그것을 탐구해봐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모든 순간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