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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요일은 처음부터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날들의 아름다움



<글 읽기를 향상해 주는 음악을 들으며>









요일의 한자는 이러하다. '빛날 요'에 '날 일' 

그랬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매일은 빛나고 있었다. 그것도 일주일에 7일씩이나. 


사람들은 손쉽게 주어진 것들은 귀하지 아니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얻는 과정이 쉽다고 그것이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쉽게 얻은 것들이 없어서는 안 될 경우가 많다. 그것은-공기, 시간등- 얻지 못하면 생존을 위협받기에 신이 준 무상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하루'도 그러하다. 오늘 산자의 삶이 어제 죽은 이에게는 가장 소중한 하루였듯 하루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말은 모두가 그 가치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치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말은 하루의 효용성이 사람마다 다름을 의미한다. 데드라인이 내일까지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오늘 24시간은 1분조차 허비할 수 없는 절박함의 극치다. 반면 연휴의 중간에 있는 하루는 느긋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우리는 하루를 전투적으로 뛰어다니며 절박하게 보내는 날도 있고, 정오까지 침대에 누운 채 하품을 하며 일어나 느긋하게 티비 리모컨으로 손이 가는 그런 날도 있을 것이다. 모두 괜찮다. 그 어떤 날도 괜찮다.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날들이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인생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 달리기 전의 준비기간일 수도 있고,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내고 난 뒤의 죽은듯한 겨울잠의 기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에게 필요한 기간이다. 그러므로 달리지 않는다고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처음 '요일'이라는 단어를 만든 이는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우리가 우주의 흐름에 따라 연월일시를 만들어 살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우주의 관점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인간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전부이다. 그리고 삶은 현재가 모여 이루어진다. 이 현재를 지은이는 '빛나는 날'이라고 이름을 짓고 싶었는지 모른다.


빛나는 날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빛날 '요'에는 빛나다, 비추다, 자랑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의 하루가 비록 상사에게 깨지고, 모든 일이 실패하고, 어려움이 목전에 닥치더라도 괜찮다. 힘들었지만 그 하루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은 빛난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일도 있어야 영화 같은 멋진 한 편의 삶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움츠려 들지 말자. 우리의 요일은 일주일에 그것도 7일씩이나 빛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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