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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이미 작가이다. 단지 그 사실을 모를 뿐 


 브런치라는 매체를 접하면서 ‘작가’라는 말을 그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듣게 되는 요즘이다. 덕분에 온라인상에 이렇게 많은 양질의 글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평범한 단어지만 흔히 쓰지 않는 ‘작가’라는 말에는 어떠한 의미들이 담겨 있을까.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필자가 연재하고 있는 <DSLR 초보 강의 에세이>는 사진에 대한 강의가 아닌 카메라에 대한 강의이다.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인 카메라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나면 비로소 사진이란 것을 찍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개인 고유의 독특한 풍이나 사상을 담아내면 우리는 비로소 그를 작가라고 부르게 된다. 그런데 작가에는 이보다 더욱 중요하고 광범위한 개념이 담겨있다.     




 사진작가 이외에 으레 작가라고 하면 글을 쓰는 사람을 의미한다. 영어로도 작가는 writer라고 번역이 된다. 하지만 작가를 한자로 풀이하게 되면 작가라는 의미를 더욱 견고히 알 수 있다.     



 작가를 한자로 쓰면 <作家>이다.

 지을 작(作)에 집 가(家)를 사용한다. 

 얼핏 보면 집을 짓는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집 가(家)는 단순한 실물적 의미의 집보다 넓은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가문이나 가풍이 어떠하다 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가(家)’의 의미는 집안 혹은 내려오는 전통을 의미한다.      


 이 전통이 일(業)이 되었을 때 우리는 가업(家業)이라는 말을 쓴다. 가업(家業)은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전통적 업을 의미하는 동시에 일의 전문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에 사용되는 ‘가(家)의 의미는 이러한 전문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작가라는 의미가 약간은 명확해졌다. 

 ‘무언가를 짓는 전문가’

 그럼 무얼 짓는다는 말일까? 이 What이 매우 중요할 것 같지만 여기서의 what은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위의 한 줄에는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먼저 생각해보자. 짓다의 목적어가 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글을 짓다
 밥을 짓다
 농사를 짓다
 약을 짓다
 옷을 짓다 등등....     


 수많은 것들이 ‘짓다’의 목적어가 될 수 있다. 그럼 짓는 게 무엇이길래?

 ‘짓다’의 목적어들을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글을 지을 때 우리는 수많은 창작과 인고의 고통을 느낀다. 첫대목 하나부터 글 하나하나 단어 하나의 선택까지 우리는 수많은 고민과 번뇌의 과정을 거쳐 한편의 글이 완성된다. 밥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지을 때 얼마나 가족들을 생각하며 정성스레 밥을 지을까. 이렇게 짓다는 단어는 ‘만들다’를 넘어선 정성스러움을 내포한 행위를 의미하고, 그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럼 이제 작가의 의미가 매우 명확해졌다.

 무언가를 정성스럽게 만드는 전문가


 이 정성스러움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주관적 정성이든, 객관적 정성이든 정성이 의미하는 바는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된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이 갖추어지면 우리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언젠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필자가 이 말을 하자 모두들 의아해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인들처럼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눈빛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들 하나하나 모두는 작가가 될 소질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시대별로 작가라는 말이 너무 전문가라는 의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전문적 지식을 배양해야 작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본다면 작가의 범위는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정성스럽게 사는 이들은 모두 작가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삶을 정성스럽게 사는이들에게 필자는 모두 작가의 칭호를 붙여주고 싶다. 그들은 각자의 수단과 방법으로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그것이 꼭 규격화된 글, 사진, 미술 혹은 예술작품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매 순간 창조적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의 삶이 매일 같지 않은 것처럼 그들은 매일 안간힘을 써가며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삶을 재창조해내고 있다. 이렇게 재창조된 산물은 어찌 보면 신의 영역이자 인간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 원동력을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모르기 때문에 내 인생은 쓸모없다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이들에게 어느 유명한 사진작가가 죽기 전에 했던 말 한마디를 들려주고자 한다.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노력했는데,
삶은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이번화는  <DSLR 초보강의 에세이>의 쉬어가기 코너입니다.

화요일날 연재되는 DSLR 초보강의 에세이는 이상없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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