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거대한 서브스턴스 세계관

영화 <서브스턴스> 후기

by ㅇㅈㄹ

최근 본 영화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를 고르라면 단연 <서브스턴스>다.

어찌 보면 영화의 주제는 꽤나 직관적이었다.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압박과 그로 인해 우리가 겪는 강박.


미국에 산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기는 외모 신경 안 쓰잖아.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잖아. LA는 자유롭잖아. 개성 넘치잖아. 내가 뭘 입든 뭘 하든 막 다닐 수 있어서 좋잖아.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해외 생활은 외모에 대해서 더 자유롭다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서브스턴스>의 배경은 LA 할리우드다. (정작 감독도 프랑스인, 촬영 장소도 프랑스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LA에 있는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 애들도 외모 엄청 신경 쓰는데?


당연히 일반화할 수 없다. 근데 짧은 나의 미국 생활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인들도 (LA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유행에 매우 민감하다. 어떤 미의 기준이 확실히 있다. 예뻐 보이는 것의 기준이 있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여기는 그 기준이 커뮤니티마다 매우 상이하고 그 여러 커뮤니티가 다양하게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서 예뻐 보이는 것이 있다. 그래서 다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그 기준이 하나인 느낌이다. 그래서 더 획일화된 아름다움, 혹은 쿨해 보이는, 힙해 보이는 것의 기준이 명확하게 있고 모두가 그것을 따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영화를 본 많은 여성들에게 PTSD를 가져다줬을 장면


영화 <서브스턴스>가 지적하는 외모의 압박은 그 유구한 전통을 유지하며 여성에게 더 많이 부과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영화를 봤을 많은 여성분들이 가장 많이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장면은 중학교 동창을 만나러 가기로 한 엘리자베스가 누워있는 수를 보며 자신의 화장을 계속 고치고 고치고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얼굴을 뜯어버릴 것처럼 화장을 지우는 모습일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다. 가끔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짙어진 눈 밑 다크서클을 보며 한숨짓는 나, 아이라인을 그리다가 삐쭉 삐져 나가 짜증 섞인 한숨을 쉬며 벅벅 지우는 나, 심한 곱슬에 산발인 해그리드 머리를 빗었다가 묶었다가 로우번을 했다가 똥머리를 했다가 구루푸를 했다가 드라이를 했다가 난리 치다가 결국 모자를 쓰고 나가는 나에게서 영화 속 엘리자베스가 보인다.


나를 컨펌할 수가 없는 나


세상에 그 누구도 나한테 다크서클이 짙다고, 아이라인이 잘못 그려졌다고, 머리가 해그리드 같다고 뭐라 하지 않는데 (사실 이 잔소리는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듣는다. 내 머리가 해그리드 같은 게 뭐가 어때서?)


나만 내가 너무 맘에 안 든다.


게다가 엘리자베스가 관심도 없던 중학교 동창에게 연락하는 모습은 어떤 공감성 수치가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아직 잘 먹힌다는 그런 인정 욕구.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도 유사한 불안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 나 이제 누가 봐도 30대처럼 보이는데, 더 이상 20대처럼 보이지 않는데, 예전처럼 길에서 막 번호따이고 그렇지 않은데, 나 좋다는 사람도 이제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나 그럼 이제 안 팔리는 건가?


영화 속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불안감의 시작이었다. 안 팔리기 시작하는 50대 여성. 최근 참여하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서브스턴스와 관련된 대화를 하다 ‘팔리는‘것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나의 이런 무의식적인 고민에 한 현명한 분이 말씀하셨다. 안 팔리면 어때요? 그리고, 팔려서 고작 그런 사람들을 만날 거라면 안 팔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렇지, 내가 왜 나를 팔아야 해? 누군가가 내가 예쁘다고 내가 매력적이라고 말해주어야만 나의 존재가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것이 아닌데.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꽤나 명확하다.


YOU ARE ONE.


늙은 나, 젊은 나, 못생긴 나, 예쁜 나, 살이 축 쳐진 나, 탱탱한 나, 모두가 나. 그 모두가 나.


근데, 감독님 누가 몰라 그거? 우리가 그거 몰라서 이렇게 괴로워?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영화는 한 번 더 뒤통수를 때린다.


근데, 너 네가 그런 너를 미워하잖아.


다크서클 해그리드인 너를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잖아.

다크서클 해그리드인 너를 없애버리고 싶어 하잖아.

다크서클 해그리드인 네가 밉잖아.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를 죽일 듯이 혐오하고 결국에는 서로를 죽이려 든다. YOU ARE ONE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쟤는 나의 진짜 인생을 망치는 죽어야만 하는 존재일 뿐이다. 수와 엘리자베스를 그렇게 만든 것은 서로일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들은 저 밖에 있는데 우리는 내 안의 나를 죽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듯,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나를,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죽이기 위해 나를 혐오한다. 내 탓을 한다. 그래서 수와 엘리자베스가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는 장면이 굉장히 잔인하지만 동시에 참 슬펐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마치 메두사 같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따로 찾아보진 않았기 때문에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메두사의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하는 신화처럼, 늙은 여자는, 아름답지 않은 여자는 쳐다보지 않게 되는, 어쩌면 거기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지만, 쳐다볼 수 없는, 쳐다보고 싶어지지 않아 지는, 존재를 인식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일까? 요즘 읽고 있는 책 <사람, 장소, 환대>에 나오는, 사람으로서 인정되지 않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고 싶어 하지 않는, 비인격 nonperson의 개념이 아름답지 않은 여성에게도 부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지금의 내가 영화 속 수와 엘리자베스 중 어느 쪽이냐 물으면 사실은 아직 수에 가까운 나이다. 아직 젊디 젊은 30대 초반이니까! 수가 엘리자베스의 수액(?)을 뽑아 쓰는 부분은, 젊음이 영원할 것이라는 젊은이들의 오만, 나의 오늘이 나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을 간과하는 젊은 나에 대한 경고처럼 다가왔다. 동시에, 나의 미래를 나는 어떻게 그리고 있나 생각하게 됐다. 20대 때는 30대가 빨리 되고 싶었다. 내가 20대 때 겪었던 그 모든 이불킥 할법한 그 어려움들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아등바등거렸던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 그냥 다 잘 훌훌 요리요리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30대의 나에 대해서는 좀 상상했던 것 같다.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상상했던 30대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 나는 곧 다가올 40대도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계획한다고 뭐가 되겠냐만은, 40대를 나를 미워하지는 말아야지.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그 모든 모습 전부 ‘나’라는 것

그 쉬운 이치가 요즘의 우리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커뮤니티에서 한 분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것 자체가 우리 모두 거대한 서브스턴스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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