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망했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어

일과 삶의 경계에서 달리는 중

by ㅇㅈㄹ
LA 시민이라면 헐리웃 사인 달리기는 해줘야지!


올해 여름, 특별한 이유 없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필라테스를 하며 유산소를 조금 해야겠다 싶어 런닝머신 위에서 걷기 시작했고, 걷다 보니 뛰게 되었고, 실내에서 뛰다 보니 어느새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8월과 9월, 두 달 동안 열 번을 뛰었을 뿐이지만, 10월에는 한 달간 스물네 번을 뛰었다. 거의 매일 뛰었다는 뜻이다. 11월에는 횟수는 줄었지만 한 번 뛸 때의 거리가 길어졌고, 처음으로 9킬로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뛰었다. 뛰다보니 주변에 같이 뛰는 친구들이 생겼고, 몇몇 로컬 런 클럽에도 나가게 됐다. 처음에는 달리기 그냥 뭐 혼자 뛰면되지 뭐하러 우루루 같이 뛰어? 했는데, 같이 뛰니 또 재밌다. 한국의 런클럽은 안나가봐서 모르겠지만, LA의 런클럽은 가입이나 신청 없이 그냥 시간 맞춰 나가면 된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몇시에 어디서 만나서 누구는 오고 누구는 안오고 그런 신경을 안써도 된다. 익명의 군중속에서 달리기라는 이유 하나로 느껴지는 약간의 소속감? 부담없고 매우 재밌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사람들은 왜 달리기를 좋아할까.

그리고 나는 무엇에 끌려 이 운동을 계속하고 있을까.


성인이 된 이후의 성장은 대개 ‘느낌’으로만 체감하는 것이었다. 예전보다 같은 상황을 덜 흔들리는 마음으로 넘긴다거나, 업무에서 어떤 판단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거나, 그런 식의 흐릿한 성장들. 그러나 달리기는 다르다. 숫자로 나의 변화를 드러낸다.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혹은 조금 더 빨리 뛴 기록이 남는다.


이 객관적인 성취의 증거를 꽤나 오랜만에 느껴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 성취 중독이라는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이 ‘측정 가능한 성장’은 꽤 치명적인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일을 시작한 지 이제 10년이 되어 간다. 한국에서 일했던 7년은 일이 곧 나라고 믿던 시기였다. 프로젝트가 흔들리면 나도 흔들렸고, 데드라인을 놓치면 내가 무너진 것처럼 느꼈다. 잠들기 직전까지 이어져오던 클라이언트와의 메일을 꿈에서도 이어서 쓰고 그대로 잠에서 깨서 내가 메일을 보냈다고 착각한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일에 매몰되어 살았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일과 삶이 조금 더 분리될까?하는 희미한 기대가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보다는 일과 삶의 경계가 조금 더 분리된 삶을 살아보니 역설적이게도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일은 여전히 나에게 중요하다.


일이 잘 풀리면 일상이 가벼워지고, 일이 답답하면 온종일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일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건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회사의 비전이나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운명은 언제나 내 통제 밖에 있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그것이 내 통제 안에 있다고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았었나보다.


다행스럽게도,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은 망할 수 있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나에게는 거의 10년 만에 찾아온 해방감 같은 것이었다.

9월의 나보다 10월의 나는 더 많이 더 빨리 뛰었고, 월요일의 나보다 수요일의 내가 2키로 미터 더 뛰었으니까.


여전히 일 밖에서 나를 지탱해줄 무언가를 조금씩 찾아보는 중이다. 그러다 다시 깨닫는다. 결국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생산하고 성장하고 성취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일이 꼭 회사일이어야할 필요는 없겠다만,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삶을 살아갈 지 모른다. 그게 뭐든 계속 무슨 ‘일’을 벌리면서,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 계속 찾고, 일의 의미를 되묻고, 그 경계 위에서 위태로운 달리기를 하면서, 나는 왜 나아지지 않아!를 외치면서, 아마 계속 달릴 것이다. 언젠간 이 경계위에서 그만 달려도 된다고 느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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