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귀여운 나의 테라리움

나의 작은 씩씩하고 안쓰러운, 나 같은 테라리움

by ㅇㅈㄹ


작고 귀여운 씩씩한 나의 테라리움


내 방에는 손바닥만 한 테라리움이 있다. 이 아주 작은 귀여운 테라리움 안에는 흙도 있고, 이끼도 있고, 돌도 있고, 나무 가지도 있다. 가끔은 그것들끼리 나름대로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습기가 차기도 한다. 도대체 이 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식물이라고는 일절 관심이 없던 내가 테라리움을 산 계기는 플로리스트의 멋진 세일즈 피치 덕분이었다.


이 작은 유리병 안에 그것만의 아주 작은 세상이 있어요.

플로리스트의 설명에 따르면.. 이끼와 작은 돌과 흙과 작은 잡초로 만든 유리병 안의 Tiny universe에 자체적인 Eco system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많은 물을 주면 그 시스템이 무너지기 때문에 코르크를 꼭 닫아 외부 공기를 차단하고, 아주 가끔 흙이 조금 말랐을 때만 몇 방울 물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또 너무 많은 햇볕을 쐬면 건조해질 수 있으니 그늘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꽃도 나무도 심지어 그렇게 키우기 쉽다던 다육이도 다 저세상 보내버리는 식물 똥손을 타고난 나의 마음을 울리는, 타깃팅이 제대로 된 피치였다. 이 테라리움은 한순간에 내 마음을 훔쳐버렸고, 지금도 내 방에 가장 중요한 식물 식구가 되어있다. 무엇인가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들여다보고, 가꾸는 데에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지들만의 시스템을 만든다는 테라리움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후 약 8개월 동안 이 테라리움 속에는 나름대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단 한순간도 흙의 습기는 마르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알 수 없는 물방울이 맺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곰팡이가 피거나 무엇인가 썩고 있지도 않다. 다시 보니 맨 처음 샀을 때 보다 흙이 더 올라온 거 같다. 뿌리가 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돌봐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기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무엇인가 되게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그냥 손바닥만 한 테라리움이라 부르기는 미안해졌다. 대신 아주 씩씩하고 독립적인 테라리움이라 이름을 붙여보기로 한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씩씩해 보이는 이 녀석에게도 물 한 두 방울이 필요하긴 할 텐데.. 괜히 스스로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음.. 별일 없지? 역시 너는 알아서 잘하고 있지? 하면서


얼마 전 유난히 몸도 마음도 지친 하루에 물끄러미 테라리움을 보다가, 나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동정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지만, 괜히 나 자신에 동정심이 샘솟는 날이 있다. 그날이 문득 그랬다. 낯선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의 집처럼 돌풍을 타고 날아와 우리 집으로 떨어진 테라리움. 언뜻 보기에는 자기만의 에코 시스템을 만들어 스스로의 세계를 척척 만들어가고 있는 씩씩하고 기특한 테라리움. 그러나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자기만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을 테라리움. 너무나 작고 초라해서 뿌리가 조금 나거나, 물기가 조금 맺히더라도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는 테라리움. 작은 유리병에 보잘것없는 코르크로 대강 덮여 있어서 외부의 예기치 못한 자극에는 쉽게 흔들려 버릴 나의 작은 씩씩하고 안쓰러운 테라리움.


이 테라리움이 마치 나 같아서, 이 아이에게 나름 응원의 의미로 물 한 방울을 떨어트려주고 싶었는데, 그 연약한 코르크를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위로랍시고 건넨 나의 안일하고 거만한 작은 물방울이 네가 그토록 지켜온 너의 세계를 망가트릴까 봐. 이제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슬쩍 뚜껑을 열고 달콤한 물방울을 받아들였다가 결국에는 마음에 홍수가 나버린 나처럼 될 까봐.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작은 유리병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또다시 유리병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의 반복이다. 돌풍 같은 세상 속에 나만의 작은 테라리움은 그것이 사람일 수도 도시일 수도 일일수도 친구일 수도 나의 꿈일 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이 돌풍 속에 서있는 것 같은 이방인의 삶은 가끔은 그것이 아주 작더라도 나만의 테라리움 안에만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아주 작은 자극에도 가끔은 무력하다. 고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별거 아닌 것이, 여기서는 왜 이리 나를 뒤 흔드는지 모르겠다. 가끔 코르크를 열고 한 방울 한 방울 넣어 주었던, 엄마가 떨어트려주는 집밥 한 방울, 친구가 떨어트려주는 맥주 한 방울, 익숙한 길과 언어가 주는 편안함 한 방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평범한 물 한 방울에도 평범한 하루의 햇살에도 나라는 테라리움은 왜 이리 쉽게 영향을 받는지. 달콤한 한 방울에 홍수가 났다가, 아주 연한 햇볕에도 그냥 말라 버리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나라는 테라리움을 꼭 지킬 것이라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 도시의 너무 강한 햇빛과 건조한 바람이 나의 작은 세상을 다 말라 비틀어버릴 것 같을 때는 코르크를 열고 물방울을 떨어트려 주어야지. 코르크 사이로 떨어지는 낯설지만 달콤한 물방울도 즐겨보았다가, 그게 내 뿌리를 썩힐 것 같을 땐 다시 코르크를 꼭 닫아야지. 그리고 주말 오후 옥상에 올라와 책을 읽고, 와인을 마시고, 글을 쓰면서. 나만의 이 작은 세상을 꼭 지켜야지. 나의 작은 에코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오늘 처음으로 테라리움에 물 한방울 주었다. 우리 같이 잘 해보자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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