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다른 사람과, 말이 통한 다는 것.

말이 통한 다는 건, 뭘까?

by ㅇㅈㄹ

나는 운이 좋다. 운이 좋게도,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한 번 만나면 술 없이도 수다를 왕창 떤다. 그전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애들이랑 이제는 떡볶이랑 소주 먹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떠든다. 진짜 웃긴 건 서로의 브로큰 잉글리시로 몇 시간을 떠든다. 근데 깔깔깔 웃기다. 우리만 이렇게 웃긴가? 되게 웃기다 아주아주. (외국애들도 양반은 못되다보다, 지금 고추장 사진을 보내면서 이게 쌈장이냐고 묻는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살면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소통이 잘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라는 이야기도.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있고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 일 거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난 말 안 통하는 해외에서 말 안 통하는 친구들이랑 진짜 소통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처음 미국에 들어올 때 나도 학교 때 못한 교환학생 같은 걸 해 보겠어.. 하는 마음에 UCI라는 학교에 평생교육원 같은 걸 등록했다. 이미 학부는 졸업한 지 백만 년이라 교환학생은 못했고, 대학원 갈 돈은 없고, 근데 뭔가 생산적인 수업을 듣고 싶어서 UCI의 평생교육원 개념인 DCE(Division of Continuing Education)에서 ACPs(Accelerated Certificate Programs)를 수강했다. 무슨 정규 학부 수업도 아닌데 등록금 크레이지였다.


엄마한테 등록금 내달라고 할 나이는 훨씬 지났고, 피땀눈물 갈아가며 모은 내 돈으로 낸 내돈내산 등록금을 아주 야무지게 써먹으려고 학교 수업을 참 열심히 들었다. 학생 때도 안 갔던 특강 같은 거 다 들었다. 게다가 오티도 갔었다. 본전 뽑아야지, 뽕뽑아야지 생각했다. 아주 직장인 마인드로 내돈내산 등록금 시간당 수업료 계산해서 완전 완전 열심히 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단언할 수 있다. 안 되는 영어로 참 열심히 했다. 그때 얼버무리더라도 뭔가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했던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좀… 갑자기 반성하게 된다.


백오십살 살아도 떨리는 오티..


여하튼 그때 오티 때 옆자리 앉았던 친구랑 짱친구가 됐다. (오티라는 건… 너무 긴장되는 행사 같다. 나이가 들어도 오티 가서 혼자 밥 먹을까 봐 걱정하는 건 똑같았다.) 곧 그 친구의 베이비 샤워에 갈 거다. 미국에서 이모가 된다.


개판인 영어 실력으로 선생님들한테 질문도 엄청 했다. 수업 내용이 이해 안돼서 쉬는 시간이 가서 물어봤다. 직무 수업이었기 때문에, 내가 실제 업무했을 때와 다른 점도 안 되는 영어로 막막 물어보고 메일도 보냈었다. 특강 오신 선생님들한테 질문도 막 했던 것 같다. 그때 뵌 선생님 중 한 분께 얼마 전에 링크드인 메시지를 보냈고, 흔쾌히 기억난다며 만나 주시고 또 새로운 네트워크를 추천해 주셨다.


이런 수업에서 꼭 하는 팀웍 어쩌구 활동

팀플 때 우연히 한 팀이 된 친구들과는 완전 절친이 됐다. 다른 주로 이주했지만 그 친구들 보러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걔네 집에서 자는 사이가 됐다. 깔깔 모임 친구들이다. (걔네는 내가 깔깔 모임이라 부르는 걸 모른다)


혹자는 누구나 학교 간다고 다 친구 생기냐? 할 수도 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학교라서 친구가 생긴 게 아니라,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가치관과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냥 랜덤 친구가 아니라.


위에 말했던 UCI의 DCE-ACP프로그램은 단순 어학당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각각의 코스가 실제 프로페셔널 실무와 연관된 주제를 가지고 비즈니스 관련된 내용을 배운다. (실무에 도움 되냐 묻는다면…크흠)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조금 경력이 있거나, 경력 전환을 생각하거나,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좀 더 있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여기도 엄마빠돈으로 온 파티걸, 파티보이들도 많다) 게다가 ACPs자체가 International Students 대상으로 한 수업이라, 수업 전체에 원어민 친구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 안에서 나와 가치관이나 목적이 비슷하거나 지금 서있는 인생의 스테이지가 비슷한 친구들이 꽤 있었다.


ESL은 안 들어도 되는 수준의 애매한 영어 실력 + 실무 수업에 관심 있을 정도의 나이대 + 수많은 나라 중 미국, 미국의 수많은 대학 중 UCI에서 비즈니스 수업을 듣게 된 삶의 과정과 배경 등 언어는 달라도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매우 비슷했다.


그래서 그랬나, 우리는 브로큰 잉글리시라도 할 말이 항상 넘쳤다. 소통은 언어로 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언어를 해도 나와 다른 가치관의 사람들보다, 브로큰 잉글리시로라도 비슷한 환경에 놓여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의 소통이 더 즐거웠다. 언어는 달라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어쩌면 언어가 아니라 정체성을 공유한 것 일지도 모른다.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것,

해외에서 살기 때문에 느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가끔 내 눈에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커뮤니티나 어떤 조직에 들어가서 내 눈에 멋져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 포함 많은 유학생들이, 외노자들이 현지인처럼 지내고 싶어서 현지인을 만나고 싶어 한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안다. 그곳에서 어색하고 쭈뼛쭈뼛하고 뭔가 부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지금 처한 지금의 정체성으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과소평가할지도 모른다. 그냥 외국인 유학생으로서의 나, 외노자로서의 나, 조팝인 나.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


단연 이게 해외 생활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에서의 생활도 돌이켜보면, 너무너무 사랑하는 친구들은 모두 다 그냥 나 그 자체 그냥 ㅇㅈㄹ 그 자체로의 정체성으로 만난 친구들이다. 멋진 직업을 가진 나, 똑똑한 내가 아닌, 그냥 야근에 찌든 나, 바보 같은 나, 이상한 소리 하는 나. 그래서 우리는 뭐 중요한 얘기는 잘 안 하는 거 같다. 그냥 깔깔 대는 거다. 인생에 하등 쓸모없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깔깔 대도 그냥 재밌는 친구들, 그게 진정한 소통이 아니면 뭐냔 말이야.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그랬던가 ‘나만이 나를 견딜 수 있다’고. 조팝인 나를 견디는 게 참으로 어려운 나는, 이렇게 가끔 조팝인 나 그대로의 정체성이라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깔깔대며 웃긴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이 외노자 생활에 한 두 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오늘따라 참 위안이 된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던 나에게 우물 밖에서도 나 같은 개구리들이 있다는 걸 알려준 소중한 친구들, 우리는 오늘도 브로큰 잉글리시로 쉴 새 없이 떠든다. 필릴리 개굴개굴 필릴릴리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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