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개띠를 맞아)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20

by 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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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집에는 개가 있었다. 기억에 개가 없었던 적이 별로 없다. 부모님이 꽃 농장을 해 오셨던에 농장을 지키는 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도 20년쯤 전부터 길냥이를 키워 오던 것이 지금까지 연이어 키우고 있다. 농장을 지키는 개, 쥐를 잡는 고양이가 그들의 본분(?)이지만 집에서 키우는 동물은 단순히 동물일 수만은 없다. 어느 날은 아이들의 등짝에 업혀도 있어야 했고, 어떤 날은 술이 취한 아버지 옆에서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이 죽으면 기다렸다가 배웅 나간다고도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감동이었다. 내가 요단강을 건너면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날 기다리려나 살짝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좀 전에 느낀 감정이 기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우리 집엔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다섯 마리가 살고 있다. 13살 개 영특이와 2살 개 영칠이. 13살 고양이 2마리 흰씨와 까미(형제다), 6살 고양이 촐랑이, 5살 고양이 초코, 4살 고양이 호섭이가 살고 있다.


영특이는 이름만큼이나 똑똑한 녀석으로 어릴 때부터 조금만 가르치면 바로 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똑똑한 만큼 예민한 녀석이어서 지금은 전에 가르친 다양한 기술을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그 녀석이 좋아하는 공던지기(사실 다양한 걸 던진다)만 자주 해준다. 가지고 오라고도 안 한다. 아빠가 정말 아끼는 녀석이다.


혼자 농장을 지키는 영특이가 버거워 보여, 동네에서 얻어온 녀석이 영칠이 인데, 나보다 영특이를 더 좋아한다. 영칠이는 털이 너무 부드럽고 몸이 토실하여 볼 때마다 안고 싶지만, 많이 안아줬더니 귀찮아한다. 그래서 안고 싶은 것을 참곤 하는데 가끔 욕망을 참지 못할 때는 쪼그려 앉아 살짝 껴앉아주곤 한다. 소똥을 좋아하여 가끔 식겁하게 만드는 녀석이다.


흰씨는 우리 집 동물 서열 1위로, 개들도 무서워하는 고양이다. 생긴 것도 과격하게 생겼다. 어느 날 영특이가 사고가 난 것처럼 울어대는 소리에 부리나케 달려가니 흰씨에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그 녀석에게 안 맞은 동물은 영칠이 밖에 없는 듯하다(영칠인 알아서 기었다). 그러나 사람에겐 완전 개냥이이다. 다만 예전 반항기 때(중성화 전), 사람에게도 싸나워서 내 오른쪽 팔뚝엔 이 녀석이 물은 큰 자국이 있다.


까미는 흰씨 형제인데 지랄 맞은 형제 덕분에 가장 고생한 녀석이다. 흰씨에게 쫓겨와 온실 꼭대기 끝에 간신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취화선' 포스터의 최민식이 떠올랐다(이때 새로 지은 600평 온실비닐을 뽕뽕 뚫어놔서 그때까지 미뤄오던 중성화를 다 같이 시켰다). 가만히 사람에게 안기는 얌전한 녀석이지만, 카사노바 고양이로 암고양이만 보면 하루 종일 쫓아다녔다.


촐랑이는 방에서 키우는 고양이이다. 멍멍이들도 어릴 땐 방에서 같이 지내고 흰씨와 까미도 5년 넘게 방에서 키웠지만 모두 밖을 좋아하여 마당과 농장 작업실에서 살고 있다. 이 녀석도 밖을 좋아해 하루에 한 번씩 내보내지만 언제나 다시 들어오는 녀석이다. 아침 5시만 되면 내 눈과 입술을 때리는 녀석이다.


마지막 초코와 호섭이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가족이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다. 흰씨와 까미가 입양한 고양이이다. 사람 손을 전혀 타지 않는데, 밥 줄 때만 조금 가까이 온다. 이것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호섭이는 초코의 새끼로 까미의 자식이 아닐까 싶다. 아직 거리가 있지만 서서히 친해짐을 느낀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은 기다림이 일상이다. 밥을 줄 때나 간식을 줄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기다려’이다. 먹을 때도 기다리고, 산책시간도 기다린다. 밖에 나간 주인도 매번 기다린다. 어디만 나갔다 들어오면 깽깽깽 냥냥냥 이제 들어오냐며 기다린다. 문만 열어도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와 내 앞에서 기다린다.

언제나, 사람을 기다린다.


그런데 죽고 나서도 주인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왠지 그들에게 민폐 같다. 우리 집 손님 오는 것 알려줘서 고맙고, 쥐 잡아 줘서 고맙고, 날 좋아해 줘서 고마운데,.. 죽어서도 기다리라니 미안하다.


이제는 조금 더 어른스럽게, 녀석들을 대하고 싶다. 이쁘고 귀여운 애완동물이 아닌 나랑 같이 시간을 살아가는 다른 형태의 친구로 대하고 싶다. 그들 특유의 행동들을 그대로 존중해 주고 싶고, 그들의 행동의 이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인간의 생각과 관점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영칠이가 왜 똥을 좋아하는지, 흰씨는 왜 그렇게 때리고 다니는지 그 녀석들 특유의 동물 특성으로 이해하고 싶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우리 집 멍멍이들, 야옹이들,.. 로스, 이쁜이(개), 물깽이, 옹심이, 까불이, 똥돌이, 재롱이, 똘똘이, 뽀삐, 삐뽀, 콧잔등이, 흰둥이, 꼬마(주영이), 이쁜이(고양이), 기특이, 점박이... 이승에서 충분히 기다렸으니 저승 가서는 우리 가족 잊고 맘껏 돌아다니길. 혹여나 이승에서 떠도는 이상한 얘기 듣고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맘껏, 뛰어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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