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습니다#19
이럴 바엔 고기를 먹고 말지,.. 생무를 너무 많이 먹었다. 무가 목구멍까지 가득 찼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칼로리가 적다는 무로도 살이 찔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난 무 다이어트 중이다.
무식하게 이게 뭔 짓인가 싶다. 다이어트 중인데 더 많이 먹고 있다.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곰같이, 꾹 참고 힘들게 무만 먹으면 날씬해질 것 같다. 그런데 원래 내 주식이 무였던 것처럼 맛있게 넘어간다. 고생이 느껴지질 않는다. 내게 맛없는 게 있을까 싶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타인에게 ‘배려’하고, ‘친절’하며, ‘상냥’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마냥 상냥하게 살긴 어렵다. 화가 나는 날도 있고 짜증이 나는 날도 있다. 억지로 참으며 거짓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날도 있고, 굳은 얼굴로 상냥함이 사라진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감정을 추스른다.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다시 따듯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어쩔 땐 도를 닦는 기분도 든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런 다양한 노력에도 풀리지 않던 마음이, 순댓국집에서 스르르 풀릴 때가 있다. 직접 만든 부드러운 하얀 순대와 쫄깃하면서 고소한 오소리감투 그리고 감칠맛 나는 뽀얀 국물 한 숟갈에 새우젓 하나를 올려 먹으면 얼어있던 마음이 눈 녹 듯 사르르 녹는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자면, 그동안 머리를 쓰며 나 스스로 이해시켰던 위로의 방식에 의문이 든다. 맛있는 음식의 위로는 이해가 아닌 다른 것이다. 마치 몸 세포 하나하나가 선천적으로 위로받는 기분? 뭔가 대뇌까지 고민하지 않고 척수,연수에서 다 해결되는 느낌이다. 그동안 괜히 고민했네 하며 자기반성까지 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은 단순히 그 순간을 즐기는 희열에 그치지 않는다. 여타 위로 방식과는 다른, 비타민 같은 위로 방식이다. 뭔가 더 직접적이고 필수적이다. 반드시 생활에 필요한 위로다. 그런데 안타깝게 나는 지금 무만 먹고 있다. 조금 괴롭다. 무도 맛있지만 위로가 되진 않는다. 무료한 삶에 맛있는 음식 한 끼 못 먹는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마음이 슬퍼지니 맛있는 것이 더 먹고 싶어 진다. ‘꼭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 ‘하는 의문까지도 든다. 어차피 행복해지려고 빼는 살인데, 그 방식이 불행하고, 행복한 순간을 뺏는 것이라면 모순 아닌가. 어른이 되면 맛있는 것 맘대로 먹어야지 싶었는데,.. 어른어른하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끄적이다가 매콤한 낙지볶음 사진을 보고 말았다. 하아 괴롭다. 매번 다이어트할 때마다 '맛있는 음식의 고마움'과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가’를 분석하는 나. 습관일까 본능일까. 왠지 이번 다이어트도 실패할 것 같다.
지난번 '국화 다이어트'는 꽃이 지자마자 실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