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같은 11살, 펭귄 하이웨이

영화 펭귄 하이웨이 리뷰

by 아네요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스포일러 있습니다





재밌게 봤다. 근데 이 영화 이상했다. 분명 성장영화인 것은 알겠는데, 다양한 메타포들로 추리 영화급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난해했다. 풍부한 철학적 설정들 덕분에 처음엔 난감했고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고, ‘원래 의미가 뭔 상관이려나’ 싶은 마음이 들며 내 맘대로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소소하게 느껴졌던 이야기들이 새롭게 다가왔고, 점점 재밌어졌다. 그것은 마치 봉인된 맘속의 문을 여는 듯한 기분이었다. 왠지 슬프며 아릿하고 신나며 신비로웠다. 어느 하나 불쾌한 감정은 없었지만 결코 가벼운 감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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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 영화는 오래간만에 내 감성과 머리를 흔든 기분 좋은 영화였지만,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추천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조금 지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다반사 스토리를 좋아하는 덕에 초중반 소소하게 흘러가는 장면엔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클라이맥스를 향해 갈 쯤엔 이야기들이 많아져, 조금 지루했다. 내 뒤 어딘가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던 것을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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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할 말이 많았나 보다. 이것을 나쁘게 보진 않는다. 다만 매체가 조금 달랐으면 하길 바랐다. 이렇게 장편으로 상영하기보다, TV 시리즈물로 봤으면 더 재밌게 몰입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다른 리뷰에서도 이런 의견이 있었던걸 보면(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니), 그만큼 이 영화는 조금 지루했지만 재밌다.

그리고 전체관람가이지만 아이들이 재밌어할지는 조금 의문이다. 나름 이중적 구조인데 겉의 이야기만으로 몰입하기엔 조금 흥미가 떨어질 것 같다.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지 않으면 맹숭맹숭할 뿐 아니라 개연성조차도 없게 느껴질 것 같다. 요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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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1세 남자아이의 성장과 첫사랑, 그리고 세상을 보게 되는 철학에 대해 다양하게 이야기하는데, 그중 내 눈을 가장 끈 것은 ‘성(性)’이었다. 기존 성장영화에서 다루는 식상한 ‘성’과는 달리, 매우 신선했고 솔직하게 표현되어, 이 부분이 매우 좋았다.

이 영화에서 많이 거론된 ‘가슴’ 이야기에 질색하는 리뷰들을 꽤 읽었다. 그래서 소심한 나는 이 부분을 이야기함에 조금 용기가 필요했다.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돈을 벌기 위해 표현되는 ‘도구적 여성성’들을 접할 때마다, 나 또한 불쾌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가슴’은 ‘성’ 그대로로 보였지, 이 영화를 많이 팔기 위한 도구로 보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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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본주의가 문제지 ‘돈’ 자체가 문제는 아닌 것처럼, 상품화된 성이 문제지 ‘성’ 자체는 매우 특별(?) 한 것 아닌가. 주인공 아오야마가 좋아하는 누나의 ‘가슴’은 내가 어릴 적 좋아하던 세탁소집 오빠의 '등판'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여자임에도 아오야마에게 이입할 수 있었다. 성애적 사랑에는 반드시 성이 같이 따라오는 것인데, 어릴 때 우린, 그 부분에서 분명 억압적인 부분이 많았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아오야마가, 나는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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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영상은 매우 아름답다. 빛을 다루는 감각이(빛이라고 마냥 밝기만 한 그림들은 아니다. 어둠을 보여주는 빛 또한 매우 감각적으로 그려놓았다) 매우 탁월했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영상에 빠져 있다가 쉽지 않은 이야기에 뒤통수를 맞았다. 특히 ‘원형적 세계관에 대한 철학’을 이 만화에서 접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꽤 직접적으로 다루며 다양한 소재로 표현되었다.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주머니의 안과 밖, 친구가 발견한 끝이 없는 시냇물, 동생에게 죽음과 삶이 공존함을 이야기하는 아오야마. ‘삶의 순환’을 이런 만화에서 듣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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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논리적으로 ‘삶에 대해 연구’하면서 ‘가슴을 좋아하는 자신의 감정을 대해서도 연구’하는 아오야마가 웃기면서도 순수해 보였다. 어떤 편견도 없이, 세상과 자신을 탐구하는 아오야마가 좋았다.

‘성’에 대한 부분이 재밌게 여겨지자, 해석되지 않는 가장 큰 은유물(?) 세 가지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누나’, ‘바다’(여기서 바다는 실제 바다가 아닌 들판에 떠있는 동그랗고 거대한 원형물질이다), ‘펭귄’이었다. 순전 혼자만의 생각이니 우습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일단 누나는 첫사랑, ‘성애적 대상’,

그리고 ‘펭귄’은 ‘정자’와 ‘표현하는 사랑’,

마지막 ‘바다’는 ‘난자’와 ‘사랑 그 자체’.

여기서 펭귄과 바다가 정자와 난자 같다는 의미는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어른의 세상을 알게 됨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그리고 표현되는 모양도 마치 정자와 난자 같이 보여서 그리 유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자와 난자 같이 생각한 것은 초반이었고 중간부터는 ‘표현하는 사랑’과, ‘사랑 자체’로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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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점점 커지는 것은 아오야마의 사랑이 커지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사랑의 마음이 커지는 경험은 자신의 세계를 부시는 경험일 텐데, 영화에선 그 모습 그대로 ‘바다’가 현실 세계를 위협한다. 그것을 막는 것이 아오야마와 누나, 그리고 펭귄이었다. 이때 애니메이션이 매우 환상적이고 생동감 있고 아름다웠는데, 이는 사랑을 겪는 상황을 이처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과연 이루어진다는 것이 뭔진 모르겠지만), 아오야마는 드디어 ‘바다’의 위협을 막고, 첫사랑인 누나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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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여기저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나가 죽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임은 맞지만, 마냥 슬픈 부분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누나’가 사라진 것이 이 세계에서 사라진 것이 아닌, 아오야마가 사랑의 매듭을 짓는 순간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세탁소집 오빠에 대한 첫사랑을 끝난 순간이, 그 오빠가 사라지거나 죽었던 것이 아닌 것처럼(간혹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 감정을 다시 불러와주어서 난 그 감격에 눈물이 흘렀다. 슬픈 감정도 있었지만 잊었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켜주어서 기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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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주절거렸지만, 이처럼 자신 없는 ‘리뷰’는 처음이다. 이런 영화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첫사랑 같은 영화였기에, 내 생각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막상 영화를 보면 각자 달리 느껴질 수 도 있음을 말하고 싶다. ‘뭐 이런 개떡 같은 영화가 있어’라고 실망할 수 도 있으니 최대한 기대는 않고 이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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