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이 사라진 사랑, 폴란드로 간 아이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리뷰

by 아네요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이 하나가 자라려면 많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가끔 이 이야기를 다르게 비틀어 보곤 한다. 앞뒤를 바꿔보는 것이다. ‘마을 전체의 관심이 아이 하나에게 간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시골에 산다. 어느 날 놀러 온 3살 조카를 데리고 동네 길을 산책하였다. 그러자 말을 걸어 주시는 많은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다. 손짓에 사탕에, 깍듯한 인사까지 해주셔서 그 어른을 따라가는 3살 조카를 다시 데려 오기도 하였다. 그냥 지나칠 수 도 있는데,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그들은 기꺼이 본인들의 친절을 아이에게 베풀어주었다. 나 혼자 산책할 때는 어색하여 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 그들이, 3살 아이를 보니 이렇게 달리 행동하였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며 이런 본능적인 인류애(?)의 집약체를 본 것 같아, 숭고한 기분마저 들었다. 안타까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할아버지의 눈에서 먹먹한 슬픔이 느껴졌다. 어찌 보면, 폴란드나 북한이나 전시행정(?)의 하나로 보여준 꾸며진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화면에 나오는 폴란드 선생님들의 표정과 3살 조카에게 보여준 어르신들의 표정이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성에서 나온 사랑이었다.


전쟁은 일반 시민에겐 천재지변과 매한가지라 하였다. 일개 사람 하나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 처참한 상황을 어떤 방어막 없이 오롯이 느끼는 무리가 ‘전쟁고아’라고 생각한다. 그 참혹한 감정에 대해 가늠조차 못하겠다. 만약 3살 조카 우정이가 이런 상황에 처해진다고 상상하니, 아, 아니다. 상상조차 못 하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던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이 있을 수 있을까.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전쟁에 치여 사는 폴란드 또한 각박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였다. 그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북한 아이들에게 배운 ‘아이고’를 읊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웃음이 터졌다. 그것은 내 생각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자 글로 배운 어떤 단어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공적 사랑’이라고도 말했고, 누군가는 ‘가족 확장성’이라고도 불렀던 그것이 전쟁이라 하여도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영화에서 보았다. ‘응답하라 1988’의 엄마, 아빠들이 떠올랐고, 지하철 아이들에게 모두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해주는 우리 엄마도 떠올랐다. 지금은 많이 멸종되어버린 그 무엇을 이 영화에서 보게 되어 반가웠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조금 있었다. 그것은 ‘북한’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푸는 부분에서 느껴졌다. 요즘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며 북한에 대한 시각도 매우 다양해졌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어찌 풀어갈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폴란드의 아이들’과 북한의 ‘꽃제비’를 ‘북한’과 ‘전쟁고아’라는 교집합으로 논리를 풀어갔는데, 이 부분이 조금 충분하지 않게 느껴졌다. 폴란드의 아이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부분에 대해 매우 마음 아프게 다루어졌는데, 이 부분의 객관성은 조금 의심이 되었다. 단순히 노동력의 부재로 아이들을 북한에 다시 데리고 갔다는 부분은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게 보였고, 국가와 부모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꽃제비와 폴란드 아이들은 결이 조금 달라 보였다. 오히려 꽃제비는 사회와 가족의 사랑에서 벗어난 현재 우리의 아이들과도 어떤 부분은 겹친다고 생각하였다.


지극히 개인적 일 수 도 있는데, 북한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과 동정하는 시각에서 드러나는 ‘우위적 위치’가 나는 불편하다. 좋은 마음이라 하여도 이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정받고 싶지 않을 때 동정받는 것은 끔찍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연기를 하는 북한 소녀 ‘송이’에게 감독이 ‘연기자라면 자기감정을 객관화할 줄 알아야 한다’는 장면이 나온다(그러면서 점점 송이에게 이야기를 강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결국 그 방식에 말문을 닫아 버린 송이가 마음 아팠다). 난 이 부분에서 이 이야기를 송이에게 할 것이 아닌 우리에게 먼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우리의 얘기를 먼저 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이런저런 안타까운 점에 대해서 글로 적긴 하였지만, 이 영화는 이만큼 생각에 잠기게 해주는 좋은 영화임엔 틀림없다. 다큐멘터리 치고는 작위적인 느낌에 조금 오글거리긴 하였다. 그러나, ‘감정’을 다루는 이야기였기에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감정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연기자가 아닌 일반인이 등장하는 게 더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연기자여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조금 화면이 어색하였다)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북한 전쟁고아(남한 전쟁고아이면서) 이야기를 가져와, 현실을 낯설게 다시 보게 해주는 점에 대해선 분명 뜻깊은 시도였다. 그에 추상미라는 감독을 다시 보게 되었고, 이 감독에게 기대가 되었다. ‘사랑’과 ‘감정’을 캐치해 낼 수 있는 ‘여성 감독’으로만 그녀를 볼 것이 아닌 ‘추상미’라는 사람의 고유의 시선을 기대하며 다음 영화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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