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 영화 리뷰
예전에 아버지가 조그만 개를 주워 오신 적이 있다. 엄마는 '무슨 병이 있을 줄 알고 유기견 센터도 아닌 길거리에서 개를 주어 오냐'며(집에 이미 개가 있었다) 반대하셨지만 개가 가여워 결국 키우셨다. 누군가 '버리고 간 개'였다. 몇 날 며칠을 한 자리에서 지나가는 차만 보면 짖어대며 주인을 찾는 꼴이 가여워 아빠가 결국 데려오셨다. 개 종류는 잘 몰라서 정확한 종자는 모르지만, 일반 바둑이는 아니었다. 엉겨있는 긴 털을 잘라주어 목욕을 시키니 겨우 얼굴이 확인 가능할 정도로 고생한 녀석이었다. 털이 얼마나 금세 자라던지, 쉬이 키울 수 없는 녀석이었다. 주인을 기다린 것이 애틋하여 ‘기특’이라 불렸고 우리 집에서 6년쯤 더 살다가 죽었다.
시골 동네에 버려진 유기견들은 실제 버려진 곳에서 내내 주인을 기다린다. 봄여름 가을 겨울 맨땅에서 뒹굴어도 털 관리가 용이한 토종개들과 달리 외래 유기견들은 엄청난 털 무더기(털이 부족하거나)와 눈곱 등으로 야생생활이 쉽지 않아 고생이 많다. 영화 속 애완 멍멍이들은 애견샵이라도 다니는지 말끔했다.
이 영화는 유기견에 관한 이야기이다. 할 얘기가 많은 소재다. 직면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동물 애호의 문제만이 아닌 끔찍한 인간사회의 문제까지도 건드리게 되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 뭉치가 버려지면서 시작한다. 주인은 사료 한 포대를 산속에 놓은 후 공을 산골짜기 멀리에 던진다. 공을 좋아하는 뭉치는 노는 줄 알고 신나게 달려가고 그사이 주인은 차를 타고 도망간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유기’의 순간이지만 마음은 매우 불편해진다.
뭉치는 그래도 운이 있었는지, 유기견 무리 ‘짱아 일행’과 만나게 된다. 시츠인지 페키니즈인지 정확힌 모르겠지만 애완견인 짱아는 몸집은 작아도 꿋꿋이 유기견 생활에 뿌리를 내린 씩씩한 개다. 이런 정신이 건강한 개들(?)과 유연히 소통할 수 있는 고마운 상황에 놓인 것만으로도, 벌써 판타지고 유토피아다.
뭉치 또한 상황을 인식하고 스스로 씩씩하게 주인을 잊는다(실제 개들이 이렇게 버려짐에 대해 잊을 수 있을까. 요 부분에서 개를 버린 사람들이 안도하지 않기를 바랐다). 뭉치는 짱아 일행과 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유기된 개가 아닌 들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들개(산개?)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면서 주인에게서만 벗어나는 것이 아닌 인간들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독립된 삶을 살기 위해 여행을 가게 된다. 이야기를 끌고 가며 직면하게 되는 끔찍한 현실들을 곳곳에 보여준다. 로드킬, 개 공장, 안락사, 개장수, 병들고 늙은 개의 유기 등등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황들을 보여준다.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이상적인 이야기이지만 끔찍한 현실들을 밟아가며 보는 영화이기에 마음 아플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는 이런 잔혹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꿋꿋이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있었다. 유머스러운 캐릭터들도 있었지만, 내게 더 와 닿았던 것은 배경 작화였다. 캐릭터 작화는 조금 맘에 들지 않았다(눈썹 있는 개의 모습이 왜 이리 어색하던지). 그러나 배경 작화는 근래 본 애니메이션 중에 압도적이었다. 정말 맘에 들었다. 개인 의견일 수도 있다.
기존 유명한 애니메이션들의 화려하고 세련되고 세밀한 배경 작화에 이 영화의 배경이 뭐 크게 대단하냐고 되물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배경 작화는 단순히 작화 능력이 뛰어나서 좋은 것뿐 아니라 실제 한국의 모습을 재밌게 잘 그렸고, 익히 보아오던 스타일이 아니어서 좋았다. 아름다운 배경이 아닌 지저분한 철거촌 조차도 분위기 있게 작화하여 눈을 놀라게 했다. 특히 DMZ에 가기 전 머문 작은 집은 매우 아름다웠다(멋졌던 배경이 있는 이미지를 이 글에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못 구했습니다 ㅜ.ㅜ).
나는 배우들의 더빙을 매우 싫어한다. 어렸을 적 ‘돌아온 영웅 홍길동’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는데,.. 어색하여서 식겁한 적이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유명한 전작 ‘마당을 나온 암탉’ 또한, 예고에서 나오는 배우 더빙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배우 더빙일 경우, 성격이 강한 캐릭터는 배우가 하더라도 어색하진 않았는데, 평범한 캐릭터, 즉 주인공 더빙에서는 문제를 느끼곤 하였다.
평범한 목소리는 조금만 어색하여도 손가락이 오글거려 듣기 힘들었다. 전문 성우일 경우엔 이 차이가 많지 않은 데, 배우일 경우엔 달랐다. 화면에서 직접 볼 땐 어색함이 없는 배우였는데, 목소리만 듣게 될 경우 어색한 배우들이 있었다. 이런 배우들이 연기를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목소리, 발성에서 부족한 연기를 표정이나 몸짓에서 메운 배우들이 아닌가 싶다. 발성에 약한 배우들이 더빙을 할 시에, 일반인이 더빙한 것 같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제법 괜찮았다. 먼저 목소리 작업을 한 후, 작화를 하여 어색함을 줄였다는 기사도 있었는데, 꼭 그것이 아니라도 배우들의 발성이 자연스럽고 좋았다. 별 기대 안 한 도경수의 더빙이 괜찮았다. 발성이 안정되어서 자연스레 뭉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독(Underdog)’은 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낮은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 말로 사회적 약자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에 덧붙여 ‘언더독 효과’는 사람들이 약자라고 믿는 주체를 응원하게 되는 현상, 또는 약자로 연출된 주체에게 부여하는 심리적 애착을 의미한다. 이것이 ‘측은지심’ 아닐까. 유기견이 많아지는 요즘, 우리에게 얼마나 측은지심이 사라졌는지, 얼마나 각박해졌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다. 그 문제를 이 영화가 ‘유기견’이라는 소재로 잘 보여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