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808이 먹고 싶었던 영화, '우상'

영화 우상 리뷰

by 아네요






어제저녁에 본 영화인데 아침까지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어제 과음한 술 때문에 오늘까지 숙취로 고생하는 듯하였다. 우상은 40도 이상의 술 같은 영화였다. 많은 얼개와 스토리,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자극적인 소재로 술을 마신 듯 얼이 빠졌다. 제대로 안 들리고 마침표 없이 계속되는 이야기에, 보는 이에게 ‘기승전전전전전전전... 꼴까닥(?)’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술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보는 내내 잔뜩 움츠리며 보게 되어, 근육통이 생겼다는 것 정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한다. 반전을 좋아한다. 작년에 재밌게 보았던 영화 ‘서치’가 문득 생각났다(스릴러지만 이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치밀한 구성과 생소한 화면 구성, 탄탄한 전개로 재미가 쏠쏠한 영화였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것은 결말이었다. 결국 아버지가 딸을 구하는 속 시원한(스포일러 죄송) 결말이었지만, 히어로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갑갑함을 주었다. 그렇다고 딸이 시체로 발견되길 원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서치가 운동 후 먹은 상쾌한 맥주 같은 술이라면, 우상은 세상이 진저리 나게 싫은 어느 날, 위스키에 소주, 막걸리, 빼갈(고량주)을 섞어 만든(쉬이 먹을 수 없지만 그날은 먹고 싶은) 폭탄주 같았다. 그런 먹어 본 적 없는 폭탄주, '우상'에서, 서치에선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을 느끼고 말았다. 전혀 속 시원하지 않고 억울하고 짜증 나고 열불이 나지만, 해방감을 느끼는 기묘한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이 해방감은 어디서 느끼게 된 것일까. 세 주인공 구명회(한석규), 유준식(설경구), 최련화(천우희)에게서 느꼈던 것일까. 그들은 서치의 '존 조' 같은 히어로는 아니지만, 그렇다 하여 해방감을 줄 수 있는 인물들 또한 아니었다. 그들의 모습은 불쾌할 정도로 답답할 뿐이었다.

그런 답답함을 바라보며 숨어있던 내 우상을 보게 되어,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도 그런 시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부분에서 해방감을 느꼈던 것일까.

이 해방감은 영화를 보는 중엔 느끼지 못하였다. 영화는 상영 중엔 '이 영화말곤 어떤 것도 느낄 수 없게' 하였다. 많은 설정과 빠른 전개뿐 아니라 생각지 못한 잔인함과 날 것의 표현들로 인해, 심약한 나 따위가 숨을 쉬며 볼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가 과연 15세 관람가인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 영화는 참 난해한 영화였다. 보통 나에게 난해한 영화란, 영화를 보던 중 ‘오늘 집에 가서 뭐 먹지?’ 따위의 딴생각이 떠오르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난해하였지만, 딴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순간의 이야기들은 어렵지 않았고, 심지어 자극적이어서 ‘몰입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많이 쌓이게 되자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초반의 흥미롭던 사건 전체가 마치 ‘맥거핀’이 된 것처럼 중요치 않게 되었고, 무엇을 쫓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에 영화의 시선이 집중되게 되면서, 어떤 사건 해결로 주제를 보여줄 것 같았던 기존의 인과 방식이 점점 사라지게 되고, 상황에 대한 뉘앙스로 결말을 느끼라는 듯, 점점 충격적인 상황들만 보여주며 결론에 다다랐다. 이런 애매한 전개 방식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영화를 다 보곤, 내가 뭘 보았던 거지?라는 의문을 밀려오게 하는 영화였다. 엔딩 자막 ‘우상’ 밑에 'idol'이 뜨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사람 바보 만드는 난해함도, 같이 뜨는 영화였다.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쫓는 것들은 많다. ‘우상’이다. 우상이라 하여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 주위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구체적으로 나열하자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들뿐이다).

소유 성향이 짙어 보이는 돈과 권력은 대 놓고 쫒기엔 부끄러운 것들이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애착이나 명예에 대한 집착은 위에 것들만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고, ‘옳고 그름에 대한 의지’라며 돈, 권력과는 분위기를 달리한다. 그러나 이것들 또한 소유하고자 집착한다면(우상화한다면) 그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무서운 것들이다. 심지어 이들은 돈처럼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렇다고 믿을 뿐이다. 허상을 믿는 모습, 우상의 모습이다. 영화 속 대사가 떠올랐다.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을 믿게 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명예를 좇는 구명회(한석규)와 핏줄을 쫓는 유중식(설경구)의 모습은 그로데스크 하게 묘사되어, 설핏 보면 익숙지 않은 이야기 같지만,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내 맘속에 있는 우상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 끔찍한 영상과 음향, 공간, 설정이어서 달라 보일뿐, 주위를 낯설게 보면, 뉴스만 틀어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이야기 들이다.



이야기의 양쪽 중심을 잡고 있는 구명회와 유중식의 캐릭터가 맘에 들었다. 연기뿐 아니라 안타까움과 잔인함이 공존하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중 단연 눈길을 잡았던 캐릭터는 최련화였다. 이 캐릭터는 분명 사람인데, 동물처럼 느껴졌다. 만약 삶, 생명이란 것이 어떤 도덕적 카테고리 없이, 날것으로 사람의 형상을 하여 태어난다면, 아니 생물의 형태로 태어난다면, 그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범상치 않았다.


순간의 존재를 살지 못하고 우상만을 쫓는 구명회와 유중식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 그것들이 결국 빚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올 때, ‘삶’이란 생물이 그들에게 어떻게 달라붙게 되는지, 최련화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듯하였다. 이는 심난한 삶에서 느끼는 슬픔이나 모멸감보다 더 무서운 근본적인 감정, 공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영화에서 내가 어떤 재미를 느꼈고, 해방감을 느꼈다 하여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다. 난해함이 숙취같이 느껴졌을 정도니 나 또한 다른 이들이 느꼈던 것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내가 그동안 보아온 스릴러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은 말하고 싶다(참고로 많은 영화를 보지 않아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음은 밝힌다;;) 어떤 논리와 이성적 이해로 사건을 풀어가는 스릴러들과는 다른, 감정과 감정의 흐름으로 뉘앙스를 쫓게 되는 그런 스릴러였다. 어려웠지만 그냥 정신 놓고 보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 있는 영화? 감정이 미리 알아버리는 영화같았다.


많은 혹평의 리뷰들을 보았지만, 나에겐 재밌는 영화였다. ‘갑갑한 해방감’이라는 생각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고, ‘눈을 뗄 수 없는 난해함’이라는 색다른 경험도 겪게 해주어 고마웠다.

그래도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추천하긴 힘든 영화다. 위와 같이 긴 이야기 없이, 그냥 재밌다고 추천하였다간, 허세, 과시가 가득한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을 것 같다.







ps. 잘 안 들리고 못 알아듣는 것이 불편하긴 하였지만, 대충 뉘앙스는 느끼고 있었기에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문제없이 끝까지 보았다.

그런데 다른 이들 리뷰를 읽다가 최련화의 마지막 대사를 내가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고 난후, 내심 아쉬웠다. 물론 못 알아들었다고, 쭉 느껴오던 감정의 흐름이나 주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전의 짜릿함을 못 느꼈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었다(그 리뷰를 읽고 나니 기승전전전전이 아닌, 기승승승승승인 것 같았다). 누릴 수 있었던 ‘재미’를 빼앗긴 기분마저 들었다.

듣지 못한 그 대사 하나 때문에 '감독이 무엇을 우상화하는 것일까'하는 의심마저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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