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블루가 아니라 그랑 베인. 큰 목욕이란 뜻이다. 수영장 이야기인데 웬 목욕... 제목부터 심상찮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왜 목욕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갔는지 어렴풋 느끼게 된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마치 묵은 때를 벗기는 듯한 영화였다.
사우나 같은 수영장, 실제 사우나 씬도 많이 나온다
영화에서 가장 놀라왔던 부분은 구조였다. 일반 스포츠 영화 구조와 똑같다. 1. 오합지졸이 모여 - 2. 고생을 하고 - 3. 고생 끝에 승리한다. 전혀 놀라울 것 없는, 이 뻔한 구조를 놀랍게 한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너무나 리얼하게 완성도 높은(?) 오합지졸들’이라는 것이다. 이번 생은 망한 실감 나는 루저들이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고선 절대 승리할 수 없는 인간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 식상한 일반 스포츠 영화 구조를 꿋꿋이 따른다. 그리곤 말도 안 되게, 이들에게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어준다. 캐릭터들은 실감 나게 리얼한데, 결말은 터무니가 없었다.
오합지졸이 끊임없는 연습으로 일취월장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의 경쟁자들이었던 선수권대회의 다른 나라 선수들과는 급이 달랐다. 상대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기술과 완벽한 몸매,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똥배가 나온 오합지졸들과 겉모습부터 달랐다.
어이없는 결말에서 오는 이 묘한 괴리감에 혼돈스럽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냥 동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웃겼다. 영화 내내 키득거리며 웃기도 했지만, 결말도 어이가 없어 웃겼다.
처음엔 어이없는 결말에 살짝 배신감도 들었다. 나 역시 이번 생은 망했다며 패배감을 감추며 사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금메달이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위로는커녕 나에게도 '삶의 금메달을 따기 위해 기를 쓰고 살라'고 강조하는 것인가 하고, 반항심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안 될 일이 아니었다. 당연 그럴 것이라 여기게 되는(뻔한 클리셰의 스포츠 영화 전개 같은) ‘어떤 인과’에 그들이 빠진 게 아닌, 내가 빠져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금메달을 못 따도 그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삶이 진정한 삶'이라며 이야기가 흘러갈 줄 알았던 내가, 틀에 박힌 ‘인과’에 빠져있었다. 나같은 사람들도 금메달을 따는 이야기를 당연히 쓸 수 있는 것인데, 너무나 뻔한 틀에 박혀 그런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영화는 처음에 사각 형안에 못 들어가는 원들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사각은 세상, 원은 사람, 더 구체적으로 사각은 세상에서 원하는 사람의 틀, 원은 그 틀에서 벗어난 루저를 상징하며 주인공들 중 한 명의 독백으로 영화를 시작하였다.
영화의 마지막 또한 그의 독백으로 끝나는데, 원이어도 사각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 반대로 사각도 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영화를 마쳤다. 마치 내가 생각하고 있던 네모난 인과의 틀이 동그란 인과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