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은 품위유지가 아니다.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오래된 막걸릿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벽에 쓰인 글귀를 보았다. 거기에는 비뚤비뚤한 글씨로 굵게 이렇게 쓰여 있었다.
“폼 잡으면서 술 먹을라카믄 우리 집에 오지 마라.”
주인 할머니가 쓴 게 분명했다. 아마도 돈 자랑깨나 하고, 내가 왕년에 누구네 하면서 거들먹거리고,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과거 자랑깨나 하는 사람들 때문에 할머니가 부아가 나서 쓴 게 틀림없었다.
술 먹는데 고상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양푼이 그릇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휘휘 한번 젓고는 손가락 한번 쪽 빨고 목을 젖혀 마시면 되는데 무슨 폼이 필요하겠는가. 그건 룸살롱이나 다른 데 가서 하면 된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면 안전화를 신는다. 물론 양복바지에 안전화다. 누가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 모습으로 현장에 자주 나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직원들은 좋아한다. 격이 없다는 것이다. 공장장이 “나오시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지만, 큰 방에서 결재 서류나 만지면서 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랬다. 중견기업으로 옮기고 나서는 제일 먼저 출근하고, 빗자루로 회사 큰 마당을 경비원 아저씨들과 같이 쓸었다. 물뿌리개로 계단에 놓여있는 화분에 골고루 물을 주고, 떨어진 나무 잎사귀는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임원이지만 여전히 신입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