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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금숙 작가 Apr 11. 2016

사무실 커피는 누가 타야 하나.

총무과에 근무하였던 김현정 대리는 기획실로 발령 나면서 난감해졌다. 기획실 직원 10명 중에서 여직원은 김현정 씨 혼자뿐이었다. 김현정 씨의 고민은 ‘커피는 누가 타야 하는가’? 다. 김현정 씨 보다 직급이 낮은 남자 직원들이 있었지만 여성이 혼자인 관계로 염려가 되었다. 일과 중 틈틈이 커피를 마시는 직원들은 1인당 컵을 하루에 2~3개씩 사용하는데 부서의 특성상 방문객이 많아 업무 외에 커피를 타고 컵을 씻는 일이 부담이 될 것이고 여성으로서 그냥 앉아 있기도 눈치가 보일 것 같았다. 김현정 씨는 남성들은 하지 않아도 될 걱정까지 해야 되는 현실이 속상하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드디어 결심을 하고 부서 직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하였다. “앞으로 커피는 각자가 타 마시고 자신이 마신 컵은 본인이 씻기로 해요. 다들 자신의 업무에 바쁘니 누군가 맡아서 하는 것은 부담이 됩니다.”  최대한 협조를 구하는 식으로 부드럽게 요청하였으나 남자 직원들의 분위기는 썰렁하였다. 그들은 여직원이 왔으니 뭔가 다른 걸 기대한 모양이었다. 마음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김 대리가 ‘커피는 셀프’로를 선언(?) 한 후 차츰 커피는 스스로 타 마시는 분위기가 되었다. 처음 시작은 껄끄러웠지만 기획실의 커피는 셀프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문제는 이주경 주임이 타 부서에서 기획실로 발령 나면서 벌어졌다. 김 대리는 이주경 주임에게 넌지시 기획실은 ‘커피는 셀프’ 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각자가 알아서 할 것이니 커피 타는 문제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신경 쓰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이주경 씨는 도리어 김 대리의 말에 당혹스러워했다. 어떻게 여직원이 그냥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김 대리는 한두 잔씩 커피를 타주다 보면 업무 외에 부가적인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그냥 두라고 재차 다짐하였다. 김 대리는 그동안 마음의 불편함을 참으며 자신이 애써 만든 ‘커피는 셀프’ 문화가 바뀔까 염려되었다.    


이주경 주임은 커피는 여성이 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녀가 기획실로 온 후 직원들의 커피를 타 주기 시작하였다. 남자 직원들은 이주임이 친절하다고 좋아하였으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이주경 주임도 그런 직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일을 하려고 하면 수시로 ‘커피 한잔 부탁해요’란 말을 들어야 했고 이주임이 컵을 씻지 않으면 싱크대에 컵들이 가득 쌓여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자신이 회사에 일을 하러 온 건지 커피를 타러 온 것인지 헷갈리며 커피 타는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김 대리에게 도와 달라고 슬쩍 얘기해 보았으나 그녀는 별 반응이 없었다. 김 대리와 이주임은 같은 여성으로서 서로 애매한 관계가 된 것이다.    


과거에는 여직원의 일이 보조하는 성격의 단순 업무를 많이 하였지만 현재는 여직원도 자신의 고유한 업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커피 심부름은 없어지는 추세이다. 커피 심부름하는 것을 좋아하는 직원이 어디 있겠는가. 일하는데도 효율성이 떨어지고 자존심 상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커피는 당연히 여성이 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직원의 생각도 옳지 않다.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면? 커피를 타지 않겠다는 입장에서는 커피 타는 것은 업무가 아니다. 자존심이 상한다. 회사에 커피 타 주러 오는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커피를 타 준다는 경우에는 커피 심부름도 업무 중 하나이니 한다는 의견이다. 심지어 1994년 1월 16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커피 심부름을 거절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된 여직원 사건을 징계권 남용으로 보며 서울지법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2015년에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새로 부임한 부장 교사가 비정규직 파견 여성에게 수시로 커피 심부름을 시키며 폭언을 하여 이를 거부하자 오히려 해고당하였다. 해당 중학교의 교사들이 이를 부당하다며 진정서를 낸 사례가 있다.   

  

직장생활에서 성차별을 줄이기 위하여 개선되어야 할 내용으로 여성 직원에게 커피 타기 같은 잔심부름을 시키는 직장문화는 자주 논의되고 있다. 그만큼 커피 타기 심부름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커피 심부름은 부서장이 스스로 알아서 커피를 타 마시면 자연스럽게 셀프로 타 마시는 분위기가 된다. 신입 여사원의 경우 ’ 내가 커피 심부름이나 하려고 어렵게 공부해서 취업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한 일로 상사는 나의 태도를 평가한다.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리기 보다는 해야 한다면 좋은 얼굴로 하자. 잔심부름을 거부하다 상사에게 잘못 보여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좌천된 경우도 있다. 커피 심부름을 자주 시키는 남자 상사에게 '커피는 직접 타서 드세요'라는 말 대신에 슬그머니 일회용 종이컵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는 여직원의 사례도 있다.


상사가 시킨다고 무조건 하라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심부름은 거절해야 하지만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정중하게 지금은 이러한 이유로 어렵다고 하면 된다. 효율적으로 거절하는 법이 필요하다. 커피 심부름하면서 잡무라고 푸념만 하기보다는 틈틈이 일을 배울 기회로 삼자. 커피 심부름 같은 잔 업무에 유연성으로 대처하자. 내가 좀 더 권한이 있는 자리에 오르면 조직의 문화를 개선시킬 수 있다. 내 뜻을 펼치기도 전에 사소한(?) 부당함 때문에 자리를 박차고 나올 필요는 없다. 주로 여직원에게 주어지는 커피 심부름이 성차별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하려면 남자 직원도 그 일을 자연스럽게 함께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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