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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금숙 작가 Jul 18. 2016

수란탕과 어머니

달콤하고 행복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대학시절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을 만나 4년간 연애를 하고 웨딩마치를 울리게 되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친정을 공식적으로 처음 방문하는 날이었다. 두 손에는 선물을 잔뜩 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친정집의 대문을 두드렸다. 한걸음에 달려 나와 누구보다 반갑게 맞아 준 이는 엄마였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단발머리를 한 모친을 만난 담임선생님은 엄마가 언니처럼 젊고 곱다고 하였다. 그 말에 8살 어린 나는 왠지 모르게 뿌듯하며 자랑스러워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도 초등학생이 된 내가 대견한지 연신 나의 손등을 토닥여 주었다. 지금도 친정 집 빛바랜 앨범 속에는 16~17킬로그램 정도밖에 나가지 않은 여린 소녀가 앙다문 입술을 한 체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찍은 흑백사진이 있다. 그리 곱든 엄마는 어느 사이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고 있었다. 


 가족의 환영을 받으며 남편과 함께 저녁 밥상을 받은 나는 깜짝 놀랐다. 큰상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진수성찬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맛있는 음식은 모두 차린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수란탕의 맛은 일품이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수란탕은 특별한 날에 준비하는 집안의 별식이다. 멸치국물에 국간장과 소금으로 국물 맛을 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란탕과는 다른 맛이다. 할머니에게서 전수받은 요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계란을 주재료로 하는 요리는 간단한 것이 특징이나 수란탕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집에서 먹는 특별한 수란탕은 먼저 땅콩이나 잣, 호두 같은 견과류를 곱게 갈아서 우유같이 뽀얀 국물을 만든다. 국물은 설탕과 식초, 소금으로 새콤달콤하게 맛을 낸다. 달걀을 톡 깨뜨려 뜨거운 물에서 반숙으로 익혀낸 것을 수란이라고 한다. 이때 반숙이므로 계란이 풀리지 않게 예쁜 모양으로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새콤달콤한 국물에 예쁘게 만들어진 수란을 담는다. 부추 같은 제철 초록 채소를 잘게 썰고 당근으로 예쁜 꽃 모양을 만들어 함께 국물에 동동 뜨게 조각배처럼 살짝 띄워준다. 수란탕은 땅콩 같은 견과류로 인해 고소한 맛이 나며 새콤달콤한 국물 맛과 함께 어우러져서 환상적인 맛이 난다. 국물 위에 예쁘게 떠 있는 수란과 부추, 아름다운 꽃으로 재탄생한 당근은 시각적으로도 정성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진다. 한 그릇 뚝딱하고 나면 속이 든든한 것이 아주 행복하다. 가끔씩 수란탕이 생각나서 찾아보았으나 엄마가 만들어 주는 수란탕을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었다.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어느 듯 나는 그 시절 젊은 엄마의 나이보다 더 많은 여성이 되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종종 떠올리면 수란탕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제는 친정어머니에게 “엄마 수란탕 해 줘”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만큼 철없지는 않다. 세월은 그 곱든 엄마의 얼굴을 중년의 여성으로, 이제는 할머니로 바꿔 놓았다. 원치 않는 일이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주책없이 수란탕이 먹고 싶은 생각은 잦아들고 친정에 가면 입을 달삭 거리다 참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였다. 어느 날 드디어 용기를 내어 "엄마가 해준 수란탕이 너무 먹고 싶어"라고 고백해버렸다. 어머니는 미리 말하지 그게 뭐가 힘들다고 참았냐고 하였지만 볼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체구는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그리도 원하던 엄마표 특별 수란탕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환상적인 비주얼에 기막힌 맛을 기대하며 한 숟가락 국물을 입에 넣는 순간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이럴 수가. 맛은 괜찮았지만 뭔가 국물 맛이 1% 아쉽다. 식탁에 마주 앉아 딸의 시식 장면을 지켜보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연기자가 되었다. 어머니의 흡족한 표정에 나도 덩달아 활짝 웃는다. 맛있어! 최고야! 를 연발한다. 나의 표정과 달리 마음은 우울함에 바닥으로 떨어진다. 세월은 엄마를 할머니로 만든 것도 부족해 미각까지 줄어들게 만들었다. 


 영문을 모르는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모님이 만든 수란탕이 당신이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그 맛이 맞느냐고 한다. 속상한 나는 죄 없는 남편에게 운전이나 잘하라고 화풀이를 한다. 친정 엄마는 여전히 건강이 견딜 만한 날이면 정성이 가득 담긴 수란탕을 만들어 준다. 나는 오늘도 엄마의 수란탕이 최고의 요리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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