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끝났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소극단의 연극배우가 아닌 일반인 조금숙으로 다시 변신한다. 20대 시절 연극을 좋아해서 공연을 보려고 대학로를 자주 다녔다. 지금 사는 도시로 이사 오면서 내게 연극은 추억 속의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강의를 잘하고 싶은 욕심에 연극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순수 연극인이 아닌 교육생과 소통 잘하는 강사가 되고 싶어 연극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방에서 극단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오직 연극만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수단으로 배우가 되겠다는 연기 지망생을 환영할 극단은 많지 않았다. 먼저 온라인으로 검색해보니 관련 카페나 사이트에서는 20대 청춘을 주로 모집하고 있었다. 젠장, 젊은이가 아니면 카페 가입도 어렵군.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정보를 알아보다가 연극학원을 찾아갔다.
여기서도 대입 지망생을 위한 연기지도 학원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어렵게 극단을 찾아갔다. 극단 대표는 큰 키에 짙은 눈썹과 콧수염, 턱수염이 잘 어울리는 연극인 다운 모습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빛났지만 날카로웠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연극배우로 입문하게 되었다.
연극이란 것이 강의와는 전혀 달랐다. 교육은 나의 개성을 살려서 하면 되었다. 공연은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역할에 몰입해야 한다. 몇 년 동안 전문분야에서 인정받으며 꾸준한 성취감을 맛보고 살았다. 연극은 자긍심을 가지고 살던 나를 무참히 깨뜨려 버렸다. 잘난 나에서 초라한 내가 되었다. 전문 강사의 많은 경험이 연극에 도움이 될 줄 알았던 점들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하였다. 오랫동안 습관이 된 밝은 표정과 당당한 자세, 자신감 있는 말투 등이 초보연기자에게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어려움이었다. 내가 맡은 배역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여인인데 앉아있는 자세조차 그렇지 못하였다. “좌절하는 여인의 모습이 그렇게 단정하면 어떻게 합니까.”라는 핀잔을 받기 일쑤였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상과 배역은 너무나 달랐다.
이제까지의 나를 버리고 배역속의 그녀가 되는 과정이 힘들었다. 내가 맡은 여주인공이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습하였다. 쉽게 그녀가 되지 못하는 자신을 느끼며 고통스러웠다. 평소에는 글 한줄 , 드라마 대사 한마디에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일쑤이든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안약도 넣어보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회상하며 눈물을 지어 짤 때는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연극 연습을 하려고 극단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야 하는데 너무나 답답하여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 적도 여러 번이다. 하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연극인데 아이러니하다.
20년 경력의 대선배에게 연기 피드백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20살에 대학에서 처음 연극을 시작하였다. 선배는 첫 공연을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크게 창피를 당한 경험이 있다. 너무 긴장하여 대사를 까먹었기 때문이다. 이를 후배에게 들려 줄 정도로 소탈하고 연극에 관한 열정은 최고인 사람이다. 늘 사람 좋아 보이던 선배는 뜻밖에도 연기에 성의가 없어 보인다는 냉정한 평가를 하였다. 나는 충격을 받아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속상한 마음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화를 내며 눈물을 펑펑 쏟아 그를 당황하게 하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성의 없는 사람이다. 나는 혼신의 노력을 했는데 타인의 눈에 그렇게 비춰 졌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연출가의 계속되는 “다시 해 보세요”에 “다시”가 환청으로 귓가에서 맴돌 때도 있었다. 나는 점점 작고 초라해졌다. 연속되는“다시”의 외침에 답답함과 스트레스로 극단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스물 스물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누른다. 창피함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연기하기를 반복하였다.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쥐어짠다. 배우로서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관객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틈만 나면 리허설을 하였다. 다행히 내게 포기란 없다. 속도가 느릴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길을 꾸준히 갈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노력한 덕분에 나는 연극배우가 되었다. 게시판과 길거리의 공연 포스트에 붙은 내 사진이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출연배우로 소개된 나를 보는 순간 낯설면서 생경한 느낌이다. 몇 년 동안 꿈꾸어 왔던 소망 하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가슴이 뛴다거나 설렘 같은 감정은 생각보다 강도가 약하다. 차라리 공연 포스트의 배우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이 배우 내 친구다.”라고 호들갑을 떨며 기뻐했을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가 오르기 전 공연장에 설치된 공간에서 마지막 연습을 해 본다. 아무리 해도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이다. 첫 번째 공연이다. 무대 뒤에서 공연장을 엿보니 작은 소극장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어떡하지. 무대 앞까지 사람이 앉아있네. 내 표정, 내 숨소리까지 다 들리겠는 걸‘ 불안한 마음에 긴장감은 고조된다. 드디어 내 차례다. 조명이 환하게 커지며 사람들의 시선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배역 속의 선희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연습한 덕분인지 아쉽지만 큰 실수 없이 무난히 마쳤다.
두 번째 공연이다. 작은 소극장은 숨죽은 듯 고요하다. 20대 여성관객의 기침 소리에 관객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돌아볼 정도로 조용하다. 나는 관객들의 표정과 반응을 느끼며 배역에 몰입하여 상대배우와 함께 연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제일 앞좌석에 앉은 어르신이 소품인 물병을 들고 꿀꺽 꿀꺽 마시는 것이 아닌가. ‘큰일이네, 소품을 가져가 버리면 어떡하지.’ 물이 줄어들수록 내 가슴은 타들어 갔다. 대사를 주고받으며 공연을 하고 있지만 가슴이 조마조마 한다. 물병은 공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소품이므로 즉흥적인 연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상대배우는 심한 통증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야 하는 장면이었다. 남자 주인공인 영석 역할을 맡은 배우의 얼굴에 살짝 당혹스러움이 보였지만 베테랑 배우답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천만다행으로 관객이 소품을 다시 제자리에 놓아 공연은 무리 없이 진행 되었다. 그는 적은 양의 물로 혼신의 연기를 하며 투혼을 발휘하였다.
세 번째 공연이 끝난 후 흐느껴 우는 관객들을 보며 나는 스스로도 잘 해 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네 번째 공연에서는 연기력은 괜찮았으나 감정 절제가 부족 하였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나온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부끄러울 때도 뿌듯할 때도 아쉬움이 느껴 질 때도 있다. 관객의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입 꼬리가 활짝 올라가며 행복하였다. 연장공연, 지방초청공연까지 무사히 마쳤다.
“너무 멀리 왔다. 결국 이렇게 끝날 소풍인데.” 상대배우인 영석의 대사 내용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간간이 상대배우인 영석의 대사, 내 배역이었던 선희의 대사와 공연 장면들이 떠오른다. 오늘 초저녁에는 매혹적인 광경을 보았다. 서쪽 하늘에 초승달과 가까이 있는 금성이었다. 유난히 반짝거리며 빛을 내는 금성을 보며 지난 연극의 추억들로 생각이 깊어진다. 금성은 지구에서 볼 때 태양, 달, 다음으로 밝은 천체라고 한다. 오늘 풍경은 금성의 다른 이름인 샛별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초승달과 다정한 오누이처럼 아름다웠다. 새해 첫 선물이다. 어찌나 빛나고 예쁘던지 한 눈에 반하였다. 마음속에 그 아름다운 풍경을 스크랩 해놓았다. 반짝이는 샛별을 보며 연극배우의 삶은 추억으로 남겼으나 나는 인생의 더욱 빛나는 주인공으로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