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마디처럼
강의가 시작된 이후 학기 중에는 언제나 내 책상이나 테이블 위에는 책과 서류 그리고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 각종 회의 자료로 뒤범벅이다. 좀처럼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정리를 하지 못한 탓이다. 강의, 연구, 학생 면담, 과체 채점, 논문 작성, 회의 참석, 학생행사 참석 등 시간을 쪼개어 할애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림 복잡하기만 한 나의 책상위의 책과 서류들
방학을 하고도 정리는 요원하다. 성적을 입력하고 논문 정리하다 보면 방학이 거의 다 끝날 즈음에야 모든 일을 접어두고 한번 정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깨끗하여진 연구실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가만히 보면 내 몸뚱이도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특히나 연말연시에는 만나야 할 사람들이 참으로 많고 회식도 자주 하게 되어 온몸이 피곤에 찌들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 자신의 위를 생각하여 보았다. 보통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과식에, 그리고 과음에 지쳐 있는 나의 위와 장기의 모습을 연상해보면 참으로 측은하기까지 하다. 1년 내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해 왔는데 여기에 동창회에, 학회 모임까지 그것도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연속적으로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혹사당했겠는가?
이제 잠시 쉬는 시간을 할애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열심히 먹지만 오늘날에는 질병의 대부분은 일상적이 되어 버린 과식, 그리고 과음이 몸과 마음의 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주말이 되면 또다시 맛있는다는 음식점을 찾아 문을 두드린다. 평소 가족에 대한 소홀함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맛있다고 알려진 집을 찾아 나선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성인병의 원인은 지나치게 필요 이상의 영양분을 섭취함으로써 유발되는 것이지 부족함 때문이 결코 아니다.
이제 무절제하게 이루어지는 식생활 습관을 한 번쯤은 바꾸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지럽게 책과 서류로 쌓여 있는 책상을 일 년에 한두 번쯤 정리하는 것처럼 나 자신의 장기에게도 휴식을 안겨주고 정리하여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생각을 하여 본 것이 굶어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먹는 것만이 즐거움이라 생각을 한다.
물론 입과 혀의 즐거움보다 큰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거의 탐욕의 수준인 것이다. 그러나 매일매일 과식을 하여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먹어왔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굶어 보면 위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즐거움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다.
유학시절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았을 때 배가 아프다고 하면 아내는 내 배위에 수건을 하나 덮어 깔고는 다리미를 이용하여 배를 따듯하게 하여 주곤 했다. 우선 긴장된 위 부분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긴장이 어느 정도 풀어지면 배 아픈 것이 많이 가시곤 하였다. 이 방법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여도 배가 아플 때에는 아내는 나에게 ‘차라리 굶어 버리는 것이 낫겠어요!’라고 하여 한 끼 내지는 두 끼 정도 굶어 버리곤 하였다.
그림 배를 다리미로 따뜻하게 하여주는 모습
참으로 편안함을 느끼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위를 비롯한 장기들이 충분한 휴식을 갖는 것이라 믿는다. 단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을 청소하고 기능을 향상한다는 측면에서 가끔 굶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된다.
주말을 이용해서 주말에 한 끼는 굶고 나머지 식사는 채소나 과일 위주의 가벼운 식사로 위의 부담을 줄여준다면 우리 몸도 자정 능력을 통해 많이 회복되고 건강한 활동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다.
굶거나 부족하게 또는 가벼운 식사를 하여 주면 우선 우리 장내 세균들에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섭취량이 적어지니 영양이 부족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장내 세균수가 줄어들게 되어 해로운 균들의 수가 줄게 되니 나빠져 있던 장내 환경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보다 건강하게 된 것이다.
비피더스균과 같은 것은 어린아이 시절에는 많았다가 점차 나이가 들면서 균의 수가 점차 줄어들게 되어 젊음을 약속하는 균으로 불리고 있다. 그만큼 장내 비피더스균수가 많다면 그만큼 젊었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위적으로 유산균 드링크에 첨가하여 먹기도 한다. 어쨌든 장내 이로운 균에 속하는 비피두스균이나 유산균 등은 젖산을 생성하여 pH를 낮추어 주므로 부패 물질을 만들어 내는 웰시균과 같은 해로운 균의 성장을 억제시켜 준다. 또 과식을 하여 장내 음식물 찌꺼기가 들어차게 되면 부패가 일어날 확률이 높은데 비하여 굶거나 적은 양의 식사를 하면 웰시균과 같은 해로운 균의 활동이 위축되고 부패 반응도 미미하게 일어나게 된다. 장내 세균들의 분포도 균형을 이루어 건강하고 이로운 균이 압도하는 좋은 환경이 구축되는 셈이다.
소화기관의 경우도 굶거나 하게 되면 여러 가지의 소화액이나 림프액, 호르몬 등의 요구도가 떨어져 이런 것을 만들어 내던 기관들이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물론 한두 번 굶는 것이 이렇게 많은 효과를 단시간 내에 가져온다고 보기에는 무리일 것이나 꾸준히 반복되어지면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나무가 속이 비어도 높이 크는 이유는 매듭을 짓고 가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번쯤 뒤돌아보며 자신의 건강 매듭을 짓다 보면 굶어서 허기가 지고 텅 빈 대나무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우뚝 서서 곳곳 하게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겠는가?
그림 대나무 숲과 대나무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