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행 기차의 틸다 스위튼

Finn Juhl

by 소년의길





옛날이라면 옛날, 저가항공이라고는 라이언에어 밖에 없던 시절,

독일에서 덴마크로 가는 제일 저렴한 방법은, 함부르크에서 자정쯤에 출발해서
아침에 코펜하겐에 도착하는 야간열차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침대차도 아니고, 쿠솃도 아니고 그냥 일반 좌석이었기 때문에
티켓이 거의 빅맥세트 정도의 가격이었어요.

챔피언스리그였던지 분데스리가였던지 함부르크에 마침 축구경기가 열려서,
경기를 보러 가는, 친구의 차를 공짜로 얻어 타고 함부르크에 도착해서,
네다섯 시간 시내를 구경하다가, 코펜하겐행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는 유조선 같은 초대형 배 안으로 들어가서 발트해를 건넙니다.
잠시 기차에서 내려 배로 올라갈 수도 있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먹을 것을 사 가지고
이등석 객실로 내려왔는데, 삼십 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덴마크 여성분이 옆 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독일 마지막 역이었던 Kiel에서 탔던 것 같습니다.

살짝 틸다 스윈튼 닮으셨더라는..

축구 유니폼을 입고 술 취한 몇몇 훌리건틱한 아저씨들이 독일어로 화장실 앞에서 고성방가를 하자,

틸다 스윈튼이 굉장히 격앙되어 덴마크어로 욕을 퍼부으셔서

저는 배 불뚝 아저씨들이 이쪽으로 와서 시비가 붙을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사실 이럴 때 포지션이 애매하니까요.
막아줘야 하는지 모른 척해야 하는지 다른 좌석으로 도망가야 하는지..

하지만 덴마크 땅에 들어와서 그런지 몰라도,
거짓말같이 훌리건들 목소리는 수 그러 들었고,
객실 내에 팽팽하던 긴장감은 사라졌습니다.

독일하고 덴마크 하고도 민족감정이라는 게 있구나.. 그때 알았어요.

코펜하겐까지 다섯 시간 정도의 시간,
의자에서 잠도 오지 않고, 책을 읽다 말다 틸다 스위튼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제가 빈티지 가구 보러 코펜하겐 간다고 하니까 혹시 이 분이 핀 율을 아냐고 묻는 겁니다.

핀 율이 아버지 쪽 먼 친척이고, 핀 율이 어릴 때 자기 아버지와 같은 동네에 살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엄청 신기한 표정을 지으니까 한 십 년 전만 해도 벼룩시장에 핀 율 가구가 나와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엄청난 가격이 되었다고, 얼마 얼마 한다 하고

금액까지 말해줬는데, 사실 실감이 나지 않는 금액이었어요.

핀 율 의자 하나에 만 달러가 넘어가는 것도 있는 지금 세상에 들으면,
그때 들었던 그 금액이 오히려 더 실감 나지 않는 금액이지만,
그때는 와 엄청나군 하고 느꼈습니다.

아시아인은 실제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이나 봐요. 사실 그때는 어리기도 했죠.
코펜하겐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 걱정스럽고 안되어 보였는지, 덴마크에서 탈 수 있는 버스표와 과일과 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고 자기 집주소까지 적어주셨어요. 그리고 여기 가면 빈티지 가구를 볼 수 있을 거야 하고 ,
약도까지 그려줬습니다.

전 사실 이때부터 덴마크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작년 해운대에서 Lasvit 아시아 태평양 담당 국장님하고 차 마시는 자리에 제가 끼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덴마크 여성 국장님이 대화 도중에 뵈르게 모겐센이 가까운 친척이라고 말씀하셔서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인생에 누구나 한번 즈음은,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 같아요.
그 호텔 로비에서 저는 한참 동안이나 이십 년 전의 기억으로 타임슬립 해서 그날 밤 코펜하겐 가는 기차 안의 그 틸다 스위튼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애썼습니다.

핀 율은, 어릴 때부터 예술에 대한 본능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년 핀 율은 기회만 되면 코펜하겐에 있는 미술관들을 돌아다니며,
그림에 빠져 들었고 미술을 공부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핀 율은 아버지에게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미래의 꿈을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사업가였던 아버지에 의해 그의 미래 계획은 즉시 비토 되고 바뀌게 되죠.

그림은 절대 안 된다. 차라리 건축가가 돼라.
핀 율은 아버지의 명령에 순응합니다.

건축학교에 입학한 핀 율은 재학 중에 이미 두각을 나타내어 당대 최고 건축 가중의 한 사람이었던 빌헤름 라우리 첸의 사무소에 픽업됩니다. 이때 나이 스물두 살.

한창 건축설계에 바쁘면서도 틈틈이 독학으로 가구 디자인을 연구하기 시작한 핀 율은 비록 건축을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무를 극한까지 가져가는 유기적인 디자인의 가구 걸작들이 이때부터 탄생하기 시작해요..

우리가 보통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나 배우들을 실물로 보면 비현실적인 완벽함에
순간적으로 멍해지는데요, 핀 율 가구도 실제로 보면 그런 현현한 느낌을 받습니다.

약도를 들고 코펜하겐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독일과는 또 다른 추위에 손가락이 다 얼얼했지만, 아직은 감성이 살아 있었던 20대에, 실제로 본 핀 율 디자인의 소름 끼치는 비주얼이란, 추위와 배고픔도 다 잊힐 정도로 너무나도 강렬했어요.

사진의 아이는 1954년 디자인된 model 133 spade chair입니다.
아름다운 곡선의 암 부분을 유심히 보면, 곡선 한가운데에도 한번 더 살짝 곡선이 있어서 자연에서 발견되는 스파이럴 한 생물들의 곡선과 유사한 모양을 나타냅니다.

앉아보면 인체를 포용하고 지원하고 감싸 안아주는 엄마 품 같은 따뜻함이 있어요.
핀 율의 의자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인생의 사건들을 숙고하고 싶습니다.


Finn Juhl spade chair mode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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