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절의 김환기 포스터

1958 WHANKI Galerie De L’institutmoulot

by 소년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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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외할머니 품에서 자란 아이였습니다.


늦은 밤 배냇저고리 입고 할머니 무릎 위에 누워, 밤의 차가운 공기를 몰고 온 삼촌들이 돌아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때, 정갈하게 빗어 넘겨 쪽 진 할머니 머리 위로 벽에 걸린 소색 문단 반회장 숙고사 저고리를 , 젖도 안땐 애가 홀린 듯이 바라보더라고 할머니는 이야기해주셨죠.


기억이란 것은 기이합니다. 반복 입력되어, 마치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신 그 장면이 실제로 내가 기억하는 장면처럼 되어버리니까요. 단것과 예쁜 천으로 된 물건들을 좋아하셔서 여행 다녀올 때마다 하나씩 사다 드리면 언제나 좋아라 웃으셨습니다.


만년에 혼자 사시던 봄날, 소니 레코드에 임방울 국창의 판소리 사철가 틀어놓고 김환기 화첩을 돋보기 쓰시고 들여다보시길래, 할머니 김환기 좋아요 하고 묻자, 나도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다 하셨어요.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봄이 왔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판소리 들으며 어깨너머로 화첩을 같이 넘겨다 보면서, 그때 처음 아 좋구나 마티스만큼 브라크만큼 하고 생각했었어요.


성미도 인후롭던 할머니 갑자기 쓰러지셔서 돌아가신 이듬해, 바르셀로나 학회 갔다가 카탈루냐 미술관에서 13세기 중세 세밀화에 그려진 성녀 우르술라의 붉은 망토를 보는데, 새가 꽃에서 꿀을 따먹는 금박 무늬가 할머니 자개장 속 비로드 치마 양단 무늬와 너무 똑같아서, 할머니 생각이 간절히 났습니다.


무너진 것은 미술관 기념품 가게에서 입니다. , 우르술라의 치마와 똑같은 무늬의 동전 지갑을 팔고 있었어요. 사다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싶어서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할머니가 58년도 그려진 환기 선생님의 파리 시절 전시회 포스터를 보신다면,


은빛 달이 보얗게 빛나는 놋쇠 반병두리 같다 하셨을 것 같습니다. 활옷 입고 칠보 화관 쓰고 방석 괴고 앉아 시집간 그 시절, 꽃가마 타고 산을 넘고 또 넘어 달이 뜨고 퍼런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야 도착한 시월드에서 벌어진 첫날밤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려주실 때 그 과거 속의 먼 나라 같은 느낌.


바르셀로나에서 부엘링을 타고 파리로 돌아와 귀국하기 전, 문득 할머니가 좋아하던 화집 생각이 나서, 환기 선생님의 파리 시절 집이 있었던 다나스 Rue D’assas 90 번지에 가보았습니다. 할머니께 같이 가자 했다면 루브르보다 더 선 듯 따라 나셨으리라 상상도 해보았죠.


손쉽게 우버 UBER를 불러 다 싸스가 90번지에 내리는 것은 어쩐지 화가의 인생을 모독하는 것 같았으므로... 지하철 포르르 와야 역에서 내려 뤽상부르 공원을 돌아 걸어서 간 것은 좋았는데, 직감에 의존해서한 시간을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다 겨우 발견한 다싸스 90번지에는 무심한 모습의 평범한 건물이 서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맞은편 57번지 건물이 뭔가 환기 비망록에서 묘사된 내정 같은 안뜰도 있고, 환기 선생님이 서서 사진을 찍었던 남프랑스풍의 덧문을 단 창문의 흔적도 존재해서, 혹시 여기가 원래 아뜰리에가 있던 곳이지 않을까 추측하며 주위를 서성거렸습니다만.. 내가 메그레 경감도 아니고 그 이상은 무리였습니다. 아마 그 57번지 건물이 제일 50년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곳이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을 찾았으나 흔적도 없었던, Moulot에서 1958년 인쇄된 환기 전시 포스터가 마침내 제 손에 들어왔을 때 문득, 할머니 살아생전 같이 들었던 국창 임방울의 영혼에 스며드는 듯한 창이 떠올랐어요. 원 소유주였던 파리의 고서점 주인 말대로 신비한 달 빛 Mystérieux clair de lune을 머금은 반도적인 것. 이제 저는 겨우 그 심오함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1958 WHANKI Galerie De L’institutmoulot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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