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을 하지 않고 있어도 예쁘다고 해주고, 마음 아픈일이 있어도 묵묵히 옆에 있어준 그 친구.
친구를 만나기 전 다수의 소개팅을 했으나 몇 번의 만남만에 상대를 파악하는건 참 힘들었다.
또한 밀당에도 더 이상 감정소모하고 싶지 않을만큼 개인적인 일들로 마음이 너덜너덜 거리던 상태였다.
소개팅을 통해 이성에게 마음을 여는건 결코 쉽지 않았다. 또한 소개팅을 해봤자 결코 이루어질일이 없을거라 단언했으나 누구나 다 해봤다는 연애를 하려면 결국 소개팅 장소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계속 만나다보면 아주 어쩌다 작은 확률로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날수도 있겠지. 전혀 기대하지 말되 그냥 나가보자!’
그러던 어느 날 이직한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소개팅 한 번 받아볼래? 그 분도 나처럼 여기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안된분이긴한데.. 굉장히 좋은분이라고 들었어”
나는 답했다.
“그래. 그냥 한 번 부담없이 나가보지 뭐. (별 기대는 없지만)”
친구는 나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을 했다.
더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고, 내가 원하는 날짜에 무조건 시간을 다 맞추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만난지 3번만에 친구로부터 고백을 받았다.
계속 만나보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그에게 관심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소개팅에 대한 불신으로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던 터였다.
‘이러다가 곧 헤어질지 누가 알아. 상처받기 전에 그냥 거리를 두면서 만나야지.’ 솔직한 나의 마음이었다.
운명적인 만남같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설레이는 감정이 약간은 있었으나 내가 꿈꿔왔던 원하는 스타일의 이성은 아니었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의 감정과 함께 내가 이 친구를 정말 좋아하는게 맞는걸까 하는 의구심이 함께 생겨났다.
그럼에도 사귀자고 말하는 그에게 굳이 싫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기에 알겠다고 답했다.
그 시기 가족들은 유럽여행 중이었다. 다음주에 또 보자는 그에게 말했다. 흔치 않은 가족끼리의 유럽여행이므로 몇일 전 급하게 유럽행 비행기표를 끊은 상태라고.. 회사에도 급박하게 말해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놀라며 말한다.
“왜 갑자기 유럽여행이에요..? 언제 가는데요?”
나는 답했다.
"내일 모레요.."
친구 : "네..? 그럼 언제 오는데요"
나 : “10일 정도 후에 올거에요.”
친구 : “그럼 제가 가는날 배웅해드릴게요.”
나 : “아, 괜찮아요. 저 혼자 충분히 갈 수 있어요. 저희 친척분이 공항버스타는곳까지 차로 태워주시기로 했어요”
유럽여행을 하는 시기, 그는 끊임없이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해왔다.
잘 도착 했는지, 좋은 시간 보내고 있는지 .. 등등 그런데 그 연락이 조금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정말 좋아하는게 맞는걸까? 선뜻 사귀자고 하니, 급하게 알겠다고 답한건 아닐까’
혼란스럽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너무 앞섰기에 가급적 대답을 피했다.
웬만한 이성이라면 그쯤에서 체념하고 더 이상의 연락을 멈췄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돌아오는 날까지 (자존심도 없이) 계속해서 연락을 해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설레이는 감정이 별로 없었기에 여기서 끝내는게 맞을듯하다고 다짐하고 나갔다. 아예 연락을 끊기엔 그동안 얻어먹은게 꽤 있어 이번엔 내가 밥을 사주며 그만 만나자고 말할 생각이었다. 별 생각이 없는 내게 밥을 먹으며 그는 말한다.
“유럽여행 가서 왜 자주 연락 안했어요..? 저랑 헤어지려고 일부러 여행간 줄 알았어요. 오늘 나와줘서 너무 감사해요”
나 : “아...네..” (아...이를 어쩌나...)
그를 끊어내지 못했다. 내게 인륜적인 마음, 사람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은 마음, 여자로써의 모성애 감정이 더 앞섰을수도 있겠다. 그렇게 얼떨떨하게 , 얼떨결에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은 만나봐야 그 가치를 더 알 수 있다는 것.
나는 이 친구를 통해 그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고마워” 라고 말하면 늘 “내가 더 고마워”라고 답했고,
“오늘 재미있었어”라고 말하면 그는 “나도 재미있었어. 나 만나줘서 고마워”라고 답한다.
남자임에도 한결같이 마음의 표현을 잘 하고 말을 참 예쁘게 한다고 느껴 점점 마음이 열렸다.
무뚝뚝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솔직한 마음표현에 굉장히 어색함과 거부감을 느꼈던 난,
끊임없이 ‘사랑’과 ‘고마움’을 언급하는 그에게 점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한다는 것. 예쁜말을 쓰고 좋은말을 하면 내 자신이 더 행복해진다는것. 내가 그로부터 얻은 큰 자산이다.
친구에게서 들은 다양한 예쁜 말들을 (지금은 돌아가신) 살아생전 할머니께 많이 해드릴 수 있었다.
상황 1 : 거울을 보며 늙어버린 모습에 한탄하는 할머니를 보며..
나 : “할머니!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에 비해 주름살도 없는편이야. 우리 할머니 너무 사랑스러워”
할머니 : “뭐..?”
나 : “우리 할머니는 정말 예쁜 할머니야. 내 눈엔 우리 할머니가 제일 예뻐. 예쁜 우리 할머니!”
할머니 : *0*(황당한 표정과 헛웃음...)
상황 2 : 병원에 계신 할머니께
나 : “할머니. 나 매일 할머니 보고싶어. 오늘보면 내일도 보고싶고 내일보면 그 다음날도 보고싶고 매일매일 보고싶단 말이야”
할머니 : “뭐..? 아이구 행복해라”
그 외 상황 3 : 할머니를 볼 때 마다
나 : “할머니 너무너무너무 사랑해”
나 : “우리 할머니 최고야. 난 우리 할머니가 너무 좋아”
할머니는 내게 행복하다고 하셨다.
친구를 만나는 내내 받은 풍족하고 행복한 마음을 원없이 할머니께 전달하고 표현했다.
친구는 나를 구속하지 않고 늘 기다려주는 상황이었기에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께 후회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안다는 것. 이 또한 그로부터 얻은 또 다른 자산이다.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해줄 수 있는 여유. 돈 앞에서 머리굴리고 얍삽하게 굴고 계산적인 사람들과는 상극이었다. 그는 나와 식사를 할 때 음식값이 비싸면 항상 본인이 계산했다. 자신과의 식사에서 내가 비싼 돈을 내는걸 좋아하지 않았고, 어느정도 부담없이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일때만 내가 계산하게 두었다. 지인들과의 식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를 보며 때때로 바보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디가서 이용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는 정직했고, 성실했고, 바른 인성에 내게 늘 최선을 다해주었다. 늘 평온했고 감정기복 없이 안정적이었다.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가졌던 내게 밀당없이 적극적으로 다가와준 그는 매우 고마운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