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패션을 점검해보는 시기
회사 입사를 일주일 앞두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무얼 입고 회사에 가야하나’ 가장 큰 문제는 옷이었다.
20대 초반, 입사를 앞둔 나는 패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평소처럼 청바지에 티쪼가리를 입고 회사에 갈 수는 없었다.
부모님을 데리고 무작정 백화점에 갔다. 부모님 또한 패션을 몰랐으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회사 다니는 사람은 옷을 깔끔하고 고급지게 입고 다녀야해”
정가로 구입은 어려웠기에 마침 2-30% 세일을 하는 브랜드 매장 여러곳을 방문했다.
세일가로 한 벌에 10-30만원을 웃도는 블라우스, 치마, 원피스, 가디건, 외투 등등 가리지 않고 골랐다.
입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바로 계산대로 직행했다.
이렇게 입사를 일주일 앞두고 1천만원에 다다르는 돈이 하루아침에 결제되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입사를 이틀 앞두고 또 백화점으로 향했다.
“오늘이 마지막 세일이라고 하니 얼른 사두자”
또 다시 1천만원에 이르는 돈이 결제된다.
텅텅 비어있던 옷장에 몇 년동안 입어도 해지지 않을 고급스런 옷들이 옷장을 가득 채워진다.
백화점 옷들이 이렇게 비싼줄은 알고 있었으나, 나는 회사 입사라는 중요한 임무를 앞두고 있었기에 벌어서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패션이라는 무섭고 두려운 미지의 세계 앞에 돈은 안중에도 없었다.
몇 달동안 나를 지켜보던 동료들은 말한다.
A직원 : “너 부자야? 할리우드스타야? 아니 무슨 옷이 맨날 이렇게 바뀌어?”
B직원 : “맞아.. 옷이 고급져보인다. 부모님이 사주신거에요?”
C동기 : “근데 솔직히 말해도 돼? 괜찮은 옷들도 몇 개 있는데 대부분 너랑 나이대에 안맞는 것 같아. 20대 초반의 어린애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들이 입을 옷들을 걸치고 오는 느낌이야”
약 10년전을 돌이켜보면 20대 초반이 백화점에서 살만한 옷 브랜드는 거의 없었다.
온앤*, 올리브데올리* 정도의 옷이 그나마 20대가 소화하기 괜찮은 수준이었는데, 그마저도 20대 중후반부터 입기에 적당한 수준이었다. 추천받은 브랜드 옷들 대부분이 그랬다. 20대 초반을 겨냥한 옷들은 당시 백화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쉽게 백화점 옷을 살만한 소비여력을 가진 20대 초반이 얼마나 있을까.
20대 초반, 난 패션에 무지했다. 10대에는 패션이란 단어가 왜 존재하는지 몰랐다.
옷이란? 그저 몸을 가려주고 추위를 막아주는 도구였다. 대학생때는 옷을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었다. 3만원 가격표에도 벌벌 떨었던 난 같은옷을 일주일씩 입고 다니기도 했고, 입을 옷이 없어 매일 스트레스를 가득 받기 일쑤였다.
어린 나이의 회사 입사직후 크게 달라진점이 있다면 ‘패션’이었다.
고급스러운 옷을 한가득 입어볼 수 있었던 기회를 가졌으나 비싼 옷을 입고도 다소 나이에 맞지 않다는 평은 그만 듣고 싶었다.
20대 중반,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나이에 맞는 패션, 내게 변화를 주고자 마음먹으며 SPA, 보세 옷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나이였다. 보세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종류의 옷이 가득했다. ‘3만원짜리 원피스가 있다니...!’ 예전에는 못봤던 것일까 새롭게 생겨난 것일까.
나만의 새로운 신조가 생겼다.
‘고급스러운 백화점 옷을 한 벌 입느니 저렴하더라도 다양한 보세 옷을 마음껏 입어봐야겠다.’
백화점 옷과 보세 옷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백화점 옷은 세탁해도 여전히 톡톡한 재질에 외관상 확실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5년 이상이 지났으나 여전히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는 옷들이 있다. 보세 옷은 한 번의 세탁으로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저렴할수록 재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즉, 한두 철 입고 버리면 다행인 옷들이 꽤 많다.
누군가는 말한다.
“7일 중 5일을 회사에 나와야하는데 매일 백화점 옷을 입기에는 부담스럽지. 보세랑 백화점 옷을 잘 혼합해서 입어봐.”
몇 번의 시행착오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이건 주관적인 의견이기에 재정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패션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세워보는걸 각자에게 추천해본다.)
* 보세, SPA 저렴한 옷을 사는 기준
1) 옷 색깔이 노랑, 핑크처럼 (자주 입지 못할) 튀고 화려한 옷
2) 여름에 한 두철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원피스
3) 여행지, 휴양지에서 편하게 입고 버려도 되는 옷
4) 도전해보고 싶은 과감한 옷 스타일
단,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옷 재질이 좋지 않거나 마감처리 등 여러면에서 엉성한 옷들은 가급적 피한다. 저렴하더라도 자주 입을 옷이라면 가격대비 퀄리티가 괜찮은 옷들을 고르면 된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는 기준
1) 평소에 자주 입을 베이직한 검정색, 흰색 등의 옷
2) 코트, 패딩 등 외투는 시즌이 끝날 때 혹은 역시즌에 구입
3) 결혼식 등 중요한 날에 입을 고급스러운 원피스
4) 그 외 좋은 퀄리티로 꼭 사고 싶었던 옷들
백화점 브랜드 옷들은 마감도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티가 난다.
단, 가격대를 고려하여 세일 기간에 잘 고르는것도 능력이다.
백화점 안에 SPA (에잇세컨즈 등) 브랜드이 꽤 많이 입점되어있다.
이 옷들 중 지하상가나 인터넷에 택만 바뀐 옷들을 꽤 발견하고 놀랐던 적이 몇 번 있다.
심지어 더 낮은 가격에 재질까지 똑같다. 이후 SPA 옷들은 구입 전 지하상가나 인터넷에 옷 스타일들을 확인해 본 후 구입하는 경향이 생겼다.
직장인들의 월급은 한정되어있다. 패션에 과감하게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나 상황상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명품을 입어도 명품같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며, 명품을 입지 않아도 명품 못지않은 패션 센스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보세 옷들도 실밥정리, 다림질만 잘 해도 단정해보이는 효과가 크다.
저렴한 옷도 고급스럽게 입는 센스를 가진 사람들이 참 부럽다.
사람들의 옷 구매 스타일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는 가격대가 비싸더라도 단정하고 심플한 옷 몇 개를 일주일 주기로 돌려입는다.
나는 ‘다양하고 예쁜 옷들을 최대한 어릴 때 많이 입어보자’ 로 살아왔다.
옷은 정말 중요하다. 오늘 입은 옷에 따라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입고 있는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위축되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은건 사실이다.
다만, 나이 앞자리수가 2에서 3으로 바뀌는 이 시기에 패션 기준을 다시 정립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나만의 추구하는 스타일, 현재 수준에 맞는 가격대의 옷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기회를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