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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Mar 09. 2022

내가 사랑한 울진군 읍내리

2000년대 초반 그 추억을 되새겨보다(1)

1999년 한겨울 , 가족들은 차를 타고 산속을 굽이굽이 지나 산등성이를 따라 들어갔다. 깜깜한 밤, 난 차안에서 푹 자고 있다가도 잠깐씩 눈을 뜨면 온통 산만보이는 곳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사’를 간다는데 .. 난 그게 뭔지 모를 7살짜리 꼬마였다.

도착했다며 부모님은 나를 깨웠다. 6층 아파트에 우리집은 6층,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옛날에 지어졌기에 계단의 높낮이는 삐뚤빼뚤 아무렇게나 막 올려쌓은듯한 느낌.

그 곳은 울진군 읍내리의 한 마을이었다.

네이버에서 퍼온 현재 사진

1999년 겨울 아침, 하늘이 매우 청량하고 깨끗했던 그날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앞 집 동갑친구를 소개받고 처음으로 얘기를 나누며 어색함을 풀어가는 그 날, 작고 어린 새가 아파트에 부딪혀 동사한 채 죽어있는 장면을 본 그 곳. 이후 똑같은 장소에서 죽은 박쥐의 눈,코,입을 보며 ‘마치 사람 같다’고 느꼈던 그 곳은 분명 이제껏 살아왔던 도시와는 무언가 크게 다른 곳이었다.     

베란다 밖으로 저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산등성이, 매일같이 해가 지고 뜨는 모습이 장관이었던 그 곳. 새들은 V자 , W자 정렬로 날아다니던 여유로운 동네.


위성사진에서 퍼온 '옥숙교' 현재사진.
갈색 울타리와 얕은 담벼락이 생긴것을 제외하고는 당시와 크게 바뀐게 없다.

앞에는 옥숙교, 그리고 그 밑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곳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봄에는 개구리알이 숨겨져있고, 물고기부터 온갖 생명들의 휴식처같은 공간이다.  

때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면 엄청난 유속으로 흙탕물이 휩쓸려가는 무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찾은 현재 사진 : 왼편에는 체육관이 생겼나보다. 학교는 노랑색으로 페인트칠이 깔끔하게 되어있고, 빨간 아스팔트 길에 화단도 놓여있다. 그 때는 모두 운동장이었다.

울진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학교의 교가를 외워야한다고 했다.

“금수강산 삼천리 동해물가에 대대로 살아나온 울진이라네~”

놀러온 친척들은 학교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와! 무슨 운동장이 이렇게 넓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운동장 같아”

“여기 초등학교만 매일 오가도 진짜 건강해지겠다”

매주 월요일 아침,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집합한다.

지루한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상장을 수여받는 아이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마지막으로 새천년 건강체조 후 다시 교실로 들어가는 일. 솔직히 매번 귀찮음을 느꼈다.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에는 '히말라야시다'라는 학교 교목이자 마스코트를 담당하는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모든이들의 집합장소이자 해가 내리쬐고 비가오고 눈이 올 때 잠시동안 쉬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학교 옆쪽에는 아주 작은 산이 있다. 육상부였던 난 아침 1시간 일찍 도착하여 육상복으로 갈아입고 그 산을 올랐다.

“뒷사람한테 따라잡히면 맞는다. 따라잡히지 않도록 빨리 뛰어라”

난 몇 번 맞았던 것 같다.

1학년 1반 앞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놀이터 앞에는 지어진지 30년은 족히 넘었을듯한 낡은 2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자주 귀신이 출몰한다고 한다. 들어갈때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던 그 낡은건물 2층에서 난 발레를 배웠고, 풍물부였던 언니는 1층에서 풍물악기를 배웠다. (지금은 없어지고 , 체육관이 생겼나보다.)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 : 외관은 당시와 바뀐게 거의 없다.

덕구온천

우리가족이 울진생활에서 가장 뽕을 뽑았다고 말할 수 있는건 덕구온천 덕분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차를 탄 채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 산속에서 내려오는 맑은물로 목욕을 하러 떠났다. 산자락 물로 목욕을 하고 나온 후 느낀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여전히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는건 깊은 산속 물은 역시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덕구온천으로 가는 길, 주황색 감으로 온통 뒤덮인 마을을 못지나치고 들르게 되었다. 그야말로 모르는 마을에 무작정 차를 세우고 감나무가 주렁주렁 열린 아무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깜짝 놀라 누구시냐고 묻는다.지나가다가 들르게 된 사연을 얘기하자 할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어차피 우리들꺼는 다 땄으니 마음대로 따가세요. 지금 안 따면 까치들이 다 먹을테니..”

우리는 한바가지 가득 따서 차에 싣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모르는 우리에게 한가득 선물을 주신 넉넉함과 여유로움, 그 때를 기억한다.


내가 본 별 가득한 밤하늘은 그 어떤 사진을 봐도 찾아낼 수가 없다

온천 목욕을 마친 후 집에 가는 길,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져내린다. 유난히 별이 매우 많은 날이다. 하늘이 뻥 뚫린 것 같다. 여기는 우주일까.

가로등도 차도 거의 없는 길 한가운데에서 잠시 시동을 끄고 내리자고 하는 아버지.

“와....” 모두가 말없이 그저 밤하늘을 바라본다. 이건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명장면이다.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불영계곡

중국에 장가계가 있다면 한국에는 불영계곡이 있다고 감히 말해보고 싶다.(^^)

불영계곡은 사계절을 다 보아야 가봤다고 말할 수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각각의 특색이 엄청나다.

봄 : 노란색인 듯 연두색의 새순이 돋아나는 봄, 모든 자연이 기지개를 펴며 만개하는 듯한 봄. 모든 산들이 차디찬 겨울을 이겨내고 새순을 돋아내고 있다. 자동차 안에서 창문을 열어 산뜻한 봄바람이 불어올때면 느낀다.

“아! 봄이구나”

여름 : 연두색 산들이 끝나가고 초록색에서 완벽한 진초록이 되는 무렵. 날씨는 매우 더워서 차안에서 반드시 에어컨을 켠 후 밖을 바라봐야한다. 굽이굽이 산길 낭떠러지 아래엔 계곡이 있고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따가운 햇볕을 뒤로하고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 소리가 들려오는듯한 여름의 모습이다.

가을 : 산에 불이났나보다. 온통 완벽한 빨강빛으로 뒤덮힌 산들을 보다보면 불이난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어쩌면 저렇게 빨간빛을 낼 수 있을까. 눈으로 볼수록 더욱 신기한 자연이다.

겨울 : 온 세상이 하얗다. 앙상한 가지 위에 흰 눈이 가득 쌓여있다. 티끌없이 깔끔하고 영롱한 느낌이다. 달리는 차안에서 문을 살짝 열다가도 너무 추워 바로 닫게되는 추운 날씨, 하얀눈이 뒤덮인 산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한다. 겨울왕국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 이미 난 겨울왕국이 어떤 모습인지 경험해본게 아닐까.     


내게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해준 울진.

한가득 안겨준 자연의 소중함과 사랑을 마음 한켠에 품고 도시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10년 전 방문한 이후, 보물상자처럼 아껴두고 있었는데 지금은 갈 수가 없다.

산불소식을 보고 듣는 내내 내 마음이 너무도 아프다. 하루빨리 진화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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