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으로 접한 에스프레소의 충격
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그럼에도 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에스프레소’
고품스러운 이름의 이 메뉴는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되어있다.
아주 작은 컵에 진하고 씁쓸하게 담긴 원액의 그 맛. 난 태어나 처음 접해본 그 맛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나 : “이거 잘 못 나온 거 아니에요? 저는 에스프레소 주문했거든요”
카페 주인 :“네..?"
나 : "원래 맛이 이런 건가요..? 엄청 떫고 씁쓸해요. 이런 걸 팔아도 되는 건가요?"
카페 주인 : "손님, 그게 바로 에스프레소에요^^”
그렇다. 난 그렇게 에스프레소로부터 가난을 배웠다.
한두 입 입술에 묻히다가 반복적으로 쓰디쓴 맛을 보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가난한 대학생은 카페에서 매번 에스프레소만을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시지도 못할 음료를 주문한 후 자리값을 지불했다.
누구나 가난의 시절을 한 번씩은 겪어왔다.
내겐 20대 초반 대학생의 시절에 유독 '가난'이란 용어가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물질적인 가난 - 시간은 있으나 돈이 없어요
나의 시급은 3,980원
10년 전 , 대한민국 최저시급이 4,300원이었던 시기, 나의 학교는 3,980원으로 인턴을 모집했다.
최저시급보다 낮게 책정된 이유는 딱히 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통장 잔고가 0에 수렴한 순간, 걱정을 넘어 생존의 위협이 강하게 느껴진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닥치는 대로 뭐라도 하자'
난 공부를 하며 자기 계발을 하는 삶을 조금이라도 누리기 위해, 최저시급보다 낮은 인턴직에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1천 원의 무궁무진한 가치
약 10년 전 버스비, 지하철비가 1000원 정도였을까.
버스 한 정거장, 지하철 한 정거장쯤은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삶이었다.
1천 원은 내게 무척 소중한 금액이었다.
어묵 2-3개를 사 먹을 수 있는, 붕어빵 3개를 사 먹을 수 있는, 내 반 끼를 대신해줄 수도 있을 그 돈.
굶주릴 때 내 배를 채워줄 수 있는 충분한 금액.
1천 원으로 할 수 있는 수십 개의 기회비용 가치는 매우 컸기에 결코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한푼두푼 티끌모아 태산, 어딜가나 돈 걱정
친구들과 만나기 전, 오늘은 대략 얼마정도를 쓸까. 많이 나오면 안될텐데.. 돈 걱정이 앞선다.
메뉴를 주문할 때마다 내가 내야할 돈을 계산하느라 머리가 바빠지기 시작한다. (2만원+1만원+5천원)/4...
가난한 학생이었던 우리들은 100원단위까지 쪼개서 정산한다. 통장 잔고는 언제나 바닥을 향해 나아간다.
집밖을 나가면 무조건 돈이다. 가급적 현금, 카드를 들고 나가지 않는게 나의 철칙이었다.
주먹밥만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학교 주변의 도시락집을 난 참 좋아했다.
다양한 메뉴 중 자주 주문하는 메뉴는 주먹밥, 그중 불고기 주먹밥, 참치 주먹밥이었다.
주먹밥은 저렴했으나 맛있었기에 가성비 대비 큰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메뉴였다.
당시 가격은 1500원~2300원으로 다양했으나, 난 한 푼이라도 아껴 써야 할 대학생이기에 가장 저렴한 주먹밥 메뉴를 골라 먹었다.
특히 그 도시락집의 소불고기 비빔밤(2,800원)이 정말 맛있는데, 이 메뉴를 먹는 날은 참 특별한 날이다.
용돈을 두둑이 받은 날, 교내에서 상을 받은 기쁜 날, 원하는 목표를 성취한 아주 기분 좋은 날.
그런 특별한 날은 일회용 고추양념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빈 소불고기 비빔밥을 사 먹었다.
내게 대접할 수 있는 특별한 한 끼 식사였다.
특별한 고급 브런치, 이삭토스트
밥이 당기지 않는 날, 이삭토스트는 내게 더할 나위 없이 큰 만족감을 주는 가성비 좋은 한 끼였다.
비용 대비 맛도 좋아 만족감이 크니, 고급 디저트가 부럽지 않았다.
돈이 정말 부족할 땐 1,300원짜리 계란 토스트(계란과 소스 양념만 들어감)를 사 먹었으나, 거의 햄야채 토스트(1,900원)를 제일 많이 사 먹었다. 이 메뉴는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메뉴였다.
다만, 그 이상의 메뉴는 돈이 아까워 쳐다도 보지 못했다.
내게 패션이란? 추위를 막기 위해 덮는 용도
일주일 내내 똑같은 옷을 입던 난 ‘패션’이란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옷이란 그냥 덮고, 입는 용도였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패션에 관심이 생길 때쯤, 매일같이 다양한 옷을 입고 다니는 대학 동기들을 보면 항상 신기했다. 과연 저 옷을 살 돈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 벌에 2만 원만 되어도 비싸서 벌벌 떨었는 나는, 늘 그들이 부럽고 신기했다.
회사에서 돈을 벌게 된지도 10년 차가 다 되어간다.
어느덧 내가 쓰는 돈 단위는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 되었다.
해외여행, 맛집 탐방, 취미생활 등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누려왔고, 원하는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지금.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분명 내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가난했던 대학생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돈’ 맛을 본 지금의 삶을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 , 대부분 직장인들이 싫어도 지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