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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되어버린 친구

덧없는 인간관계, 친구 라는 그 이름

by 드림트리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오랜 친구, 같은반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친구의 친구로 만나 많은 추억은 없지만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있다. 1년에 1-2번 만나는 그런 친구가 몇 년전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다 이상하고 못됐어. 특히 결혼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나. 여자들은 몸 다 상해가며 출산하지는거 보면 한쪽이 너무 피해자잖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해가 바뀔수록 말이 점점 과격해졌다.

“남자들은 다 여자를 이용만 하고, 자기 이득밖에 챙기지 않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정상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여자를 만날 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집념에만 사로잡혀있고..”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여자를 하대하고..”

점점 듣기가 거북해졌다. 듣다못해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럼 너희 친오빠랑 아버지는 뭐야. 뭐가 되는거야?”

친구 : “아무튼 다 똑같아”


어느 날, 친구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친구 :“나는 친구 A한테 10 정도를 해줬는데, 나한테 돌아오는건 별로 없는듯해.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아”

나 : “나도 과거에 너랑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 내가 이만큼을 해줬다고, 상대방에게서 비슷한걸 바라는건 무리인듯해. 즉, 그냥 기대를 하지 마. 그게 내 정신건강에 좋아. 만약 내가 친구에게 좋은 무언가를 해줬다면, 내가 기분이 좋고 정말 베풀고 싶어서 준거여야지. 무언가를 바라면서 해주는건 아닌것같더라. 안타깝지만 난 그렇게 깨달았어.”

친구 : “그래도 내가 10을 주면 10은 돌려받지 않더라도 비슷하게 돌려받는게 맞지 않을까.”

나 : “아예 받기만 하는 친구는 걸러내는게 낫겠지만, 비슷한것조차 나에게 해주길 기대하게 되면 내 경험상 결국 돌아오는건 실망뿐이더라.”

친구 : “난 친구라면, 남자친구와의 관계와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같아야한다고 생각해. 섹슈얼한 걸 제외하고 말이지. 진정한 친구라면 매일같이 연락하며 일상이나 모든걸 공유해야한다고 생각해.”

나 : “그렇게 생각하면 옆에 남아있는 친구가 한명도 없지 않을까. 사실 예전에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 그때 내 주변을 보니 진정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만 느껴지고,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몰려오더라. 다들 남자친구들 만난다고 나랑은 잘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실망감만 한없이 느껴지는 친구란 관계의 의미를 많이 생각했었어.”

친구 : “결혼하고 애 낳으면 연락도 안되고, 남남이 되어버리는걸 보면 참 허망해. 1년에 한두번 연락하는게 그게 무슨 친구야. 그래서 난 결혼에 반대해. 여자만 피해보는 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정말 반대해”

나 : “각자 가정에 충실해야지. 집중해야할 가정을 버려두고 친구에게 매일같이 연락을 바라는건 아닌것같아.”

친구 : “그래도 1년에 한 두 번 만나는게 무슨 친구야. 자주 연락하고 만나야 그게 친구지”

나 : “우리도 솔직히 자주 만나지 않잖아. 나이가 들수록 옛 친구들 만나는게 쉽지 않은듯해. 오랜기간 연락 없어도 ‘잘 살고 있겠거니’ 하는거지. 생각해보니 어쩌다가 서로 시간되는날 만나서 편하게 떠들다가 헤어지는 사이가 되어버렸더라. 가까운 동네 살면서도 참 안타까워. 그래도 긴장없이 만나서 마음 터놓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게 어디야”


20대 초반, ‘친구’라는 관계를 생각하다보면 회의감만 한없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었고, 연인이 있었고, 일이 있었다.

그 우선순위에 나를 놓아주길 바라다가는 실망감과 부질없음만 느끼게 된다.

유난히 친구 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격렬한 고민 끝에 내가 깨달은바는 이렇다.

‘나’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점이다.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내 자신이 행복해지고 건강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것

‘친구’ 관계에 얽매이다가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 관계들이 지속되다 보면, 결국 내 옆에 남아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이 진리를 깨달은 후, 나와 내 가족을 메인으로 두었고, 친구를 포함하여 주변인들을 서브로 두며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들을 챙겨주니 의외로 더 건강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친구 : “친구라면 비슷한 생각이랑 가치관을 공감하고 나누는게 친구지. 나도 페미니스트적인면이 있다는건 인정해. 남자들은 정말 못됐고...(반복)”

(친구는 늘 남자 욕에서 시작하여 남자 욕으로 끝난다. 차마 이 글에 친구의 발언을 더 이상 적지 못하는건 이 글을 읽으면서 불편감을 느낄 분들을 위한 것도 있지만, 나도 굳이 적고 싶지 않아서이다. )


친구는 내가 본인의 생각에 동의해주길 원하는듯했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눈치였다.

나 : “근데 생각해봐. 꼭 가치관이 같아야 친구가 될 수 있는건 아니잖아. 그렇게 한 명 두 명 쳐내다보면 정말 남는사람이 없을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모였을 때 정치같은 민감한 얘기를 꺼리는거겠지. 백이면 백 다 싸운다잖아”

친구 : “이런 생각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비슷해야 친구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거지. 그럼 할 얘기가 뭐가 있어. 이런 얘기밖에 할 게 없잖아.”

나 : “할 얘기가 없다니. 얼마나 많은데. 예를 들면 어제 등산을 갔는데 어떤 산이 좋았다더라, 전망도 좋고, 등산용품은 이런걸 사니 더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 같고.. 이러면서 다른 주제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얘기하면서 친해질 수도 있는거 아닐까”

친구 : “지난번 친구 A가 옷입은거 보고 솔직하게 말했어. 부해보이는 옷을 입으니 더 뚱뚱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나한테 엄청 화내더라고. 이해가 안가. 누가 이런얘기를 해주겠어. 단점이 부각되는 옷을 입은걸 보고 무작정 예쁘다고 말하는게 더 나쁜거라고 생각해. ”

나 : “똑같은 말이라도 ‘안 어울려. 못생겼어’ 라고 말하는것보다 ‘이렇게 입으면 훨씬 더 잘 어울릴텐데’라고 말했더라면 기분은 안상했을거야”

친구 : “친하고 오랜기간 봐 온 깊은 관계의 친구니까 이런 말도 할 수 있는거지. 내가 악의가 없다는건 A도 분명 알텐데.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난 솔직하게 말한것뿐이거든”


다시 대화는 페미니스트적인 친구의 발언으로 도돌이표처럼 돌아간다.

친구 : “결국 이 나라에서 살다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니까..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난 해외로 나가야하나봐.”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친구가 남자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가득한게 아닐까 싶었다.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것 때문일까. 오픈마인드로 다양한 무리들과 어울려보았으면 어땠을까.

객관적으로 친구의 외모는 동양보다는 서양에서 통할 외모이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큰 키까지.. 게다가 학벌도 좋고 강남 한복판 고급 아파트에 자가로 살고 있다. 바꾸어 생각해보니, 친구는 어떤 면들에서 다른이들보다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기도 했다.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속의 불편함이 유독 크게 느껴지고 에너지만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그저 친구의 생각을 바꿔줄 수 있는 멋지고 좋은 인연이 다가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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