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태생부터 꼼꼼함이 없고, 끈기력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학창시절 공부를 할 때면 40분을 집중해서 제대로 넘겼던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
유난히 약한 체력 때문인지 조금만 공부해도 지치고 힘들었다.
“밥 먹고 공부만 하는 게 그렇게 힘드니. 돈을 벌어오라는것도 아니고.. ”
부모님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힘든건 인생의 전부가 공부로만 가득 찼다는게 힘든 것이었다.
마음 편하게 노는건 어렵더라도, 공부 외의 삶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게 힘들고 답답했던 것이다.
그렇게 원하는 대학에 발끝도 다가설 수 없는 현실 앞에, 난 부모님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내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
20살, 가족도 친척도 더 이상 공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아무런 기대가 없는듯하다. 이제 0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러던 내가 대기업에 덜컥 합격하게 되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내가, 특별한 능력도 없던 내가,
미래를 생각해보았을 때 회사다니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어쩌면 직장생활의 꼭대기일 수도 있을 이 곳,
중소기업이라면 힘들 때 퇴사라도 마음껏 할 수 있겠지만 이 곳은 내게 막다른 골목이었다.
입사축하를 건네는 가족들과 지인들, 성공했다는 칭찬,
그리고 성인이 되었으니 내 몸뚱아리는 내가 지키는게 당연하다는 일념하에 돈을 버는건 당연했다.
그렇게 나는 생존을 위해, 급격히 높아진 주변의 기대치에 부흥하기 위해 직장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꼼꼼하지 못하다, 자잘한 실수가 많다, 성실히 열심히 하는데 무언가 아쉽다’
초반에 내가 듣던 평이었다. 사무직 업무, 솔직히 어렵지는 않았지만 챙겨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즉, 대단히 꼼꼼해야 했다. 챙길게 산더미처럼 많으니 매일 같은 야근이 반복된다.
야근을 줄여보고자 화장실도 못갈만큼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끈기력은 저절로 따라왔다.
실수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내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이렇게 작은것조차 못하는데, 퇴사하거나 세상밖에 나가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마치 학창시절 시험기간 때 , 알던 내용을 실수해서 틀렸을때와 비슷한 감정이다.
점점 내 자신이 초라해진다.
작은 것 하나라도 누락되면 실수가 아닌 사고가 되었다.
사고는 모두가 다 알아버리는 일이 되고, 여기저기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이 발생한다.
굳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꼼꼼하게 잘 처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솔직히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업무이다. 하늘로 뻗어나가는게 창의성이라면, 내가 하는 사무직 업무는 땅을 파고드는 일이다.
S전자 3년차 사무직 일을 하는 친구는 말한다.
“솔직히 내 업무 중학교 3학년도 할 수 있어. 가끔 내가 대학교를 왜 나왔나 싶어”
업무가 손에 익으면 반복이다.
한 달 등 특정 주기 안에서 루틴한 업무가 되고,
일을 하다보면 발생하는 각종 시스템 오류들을 찾아 수정요청을 하기도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스킬이 생긴다.
과거 내가 했던 실수들이 참 한심해진다.
‘그 때 이런 방법을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그렇게 야근은 안했을텐데..’ 참 아쉽다.
때론 일을 빨리하면서도 편리하고, 정확한, 새로운 프로세스를 정립하기도 한다.
난 이 때 유일하게 일을 하는 재미가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괘도에 오르면 내가 점점 실무의 핵심이 되고,
주변의 새로운 사람들에게 업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된다.
일이 많으니 엉덩이가 무거워야하고, 여기저기 업무 회의와 외근이 잦기에 엉덩이가 가볍기도 해야한다.
학생때처럼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승리한다 라는 개념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야말로 이건 공부가 아닌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기도 하다.)
85% 시간을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는 업무에 쏟는다면, 15% 시간은 그야말로 사회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갖춰야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쉽게 협업할 수 있는 말주변, 업무를 쉽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법, 특정 상황을 연관자들에게 쉽게 알려줄 수 있도록 정리하는 법,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는 법, 동료들과의 무난한 관계 등 다양하면서도 사회생활 하기에 기본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능력, 어찌보면 단순한 듯 하면서 책상 앞 공부해서 갖출 수 있는 능력은 아니기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건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더 심도있게 배울 수 있는 부분이다.
조직생활은 글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부딪히며 경험해보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