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감을 느끼는 3-4년차 직장인에게, 직장인 10년차가 들려주는 이야기
3년차가 지나자 업무력이 괘도에 올랐다.
내가 속한 사무직 업무는 그렇다.
연차가 쌓이고, 시간이 흐르며 빨라진 업무속도.
축적된 업무 히스토리, 뒷단의 시스템 구조까지 파악하고 나니 빠르고,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3박자 능력이 생겨버렸다.
크롬과 익스플로러가 뭔지도 몰랐고, 무선과 유선의 차이조차 모른채 입사했던 난, 어떤 정신으로 회사에 들어왔던가. 그래서 어린나이에 입사했던 신입 시절이 유난히 더 혹독했는지도 모른다.
3년정도가 되면 주변에서 ‘이제 일 좀 하겠네’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보통사람에겐 익숙해질때까지 반복하고, 이해하고, 깨닫는데까지 일정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거기에 다양한 이슈사항을 접하고, 뒷단의 시스템 굴러가는 상황을 알게 되고, 과거 업무 히스토리를 접하고, 때론 사고도 치면서 업무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어린나이의 입사가 장점이었을까, 생각보다 먼저 퇴사한 선배들의 도움이었을까.
난 20대 중반이 막 되었을 시기부터 실무장이 되어버렸다.
업무를 가장 많이 알았고,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평정심 있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면 사람은 당황하게 된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목소리는 양처럼 떨리며 말은 빨라지고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버린다.
딱 내가 그랬다.
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어떻게 진행될 예정인지 알려주며, 화가 난 그들을 진정시켜야 할 입장이었다.
놀라서 벌떡거리는 심장을 마음속으로 겨우 움켜잡으며 가까스로 말을 꺼낸다.
“어수선한 일로 당황스럽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본 상황은 이렇지만, 고객님이 받으실 서비스에는 전혀 영향이 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더 정확하게, 깔끔하게,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업무이기 때문에 디테일한 상황을 적을 수는 없음)
이 때 절대 내가 당황했다는 티를 내어서는 안된다. 안보이게 쉼호흡을 한 후, 얼굴은 미세한 떨림조차 허락하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목소리에는 조금의 떨림도 없이, 말은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세상 모든 평온함을 가진척 연기해야한다.
업무사고로 번진 상황, 이를 발빠르게 처리하고 문제없게 만들어버리는 내게, 거래처 직원은 이런말을 한다.
“당황스러울법도 할텐데 정말 침착하게 처리하시네요. 대단하세요”
이미 비슷한 상황에서 겪었던 경험치가 쌓인 상태이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더 큰 사고가 되지 않을지 알고 있으므로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업무경험, 수없이 쌓인 정보, 익숙해져 루틴이 되어버린 일들.
특히, 아무나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발빠르게 나서서 대처가 가능하다는건 업무적으로 큰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상사나 주변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필수 존재가 되고 있다는걸로 보아도 된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일이다.
3-4년차가 되어 업무에 능숙해질때까지 누군가의 밑에서 빛을 못보고 있다면,
업무적인 자신의 위치를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왕 일을 한다면 누군가가 알아주는 주목받는 일을 한 번쯤은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함께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 중 나보다 업무를 폭넓게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나간다는건 기회일 수 있다. 단지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수한 좋은 기회들이 우선순위로 그에게 가겠지만 그가 나가준다면 기회는 필연적으로 내게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이전 부서에서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내게 의도적으로 기회를 주지 않으려던 상사의 영향도 컸지만, 해당부서는 매출도 좋지 않았고 주목받을만큼 사업성도 좋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일만 많을 뿐이었다.
옮긴 지점의 부서에서 3-4년차가 되자 전사적으로 주목받는 프로젝트성 업무에 투입되게 되어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되었다.
운이 좋았고, 인정해주려는 주변 동료들 덕이 컸다.
무엇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처음으로 인정을 크게 받아보니 회사생활에서 뿌듯함과 성취감을 맘껏 누려봤던 기간이었다.
이는 이제껏 혹독했던 시간을 거쳐 업무적인 내공이 다져졌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다음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