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인계의 기본
라떼는 말이야.. 이제 10년차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다.
업무 매뉴얼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하던 그 시절, 나는 육성으로 업무를 인수인계 받았다.
머리가 터져버리기 직전까지 던져대던 업무들, 내 뇌는 더 이상 수용할 공간이 없는 상태였다.
어제 들었던 업무를 다음날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 선배들은 기가 차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화를 낸다. 당연했다. 그들은 알려줬는데, 난 그냥 눈만 뜨고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업무 화면을 캡쳐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적은 가이드를 내게 건네준 선배가 있었다.
그 때 매뉴얼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날이었다.
나 : “선배님! 지난번 만들어주셨던것처럼 다른 업무들도 만들어주시면 안되나요? 그럼 더 이상 묻지 않을게요.”
선배 : “응?.. 나도 그냥 다 받은건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에겐 하나씩 캡쳐하며 만드는게 귀찮은것이었고, 본인도 머리로 익힌걸 나는 왜 못익히는가가 의문이었던 것이었다.
업무습득력과 이해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걸 알 수 없었던 머리 좋은 선배는, 자신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다그치는, 큰 목소리로 쇼맨십을 펼치며 인수인계하는 다른 선배에게도 요청했다.
나 : “선배님! 차라리 매뉴얼 만들어주시면 안되나요? 제가 매번 똑같은거 물어보면 귀찮으시잖아요. 이런거 하나 만들어주면 다음부터 제가 또 안물어보니 서로 편할텐데요.”
선배2 : “매뉴얼? 그게 뭐야. 나는 그냥 (육성으로) 이렇게 알려주는게 더 좋아”
나 : ......
회사에서 업무량이 많거나 단독업무를 하는 인력들에게, 길이 남을 업무매뉴얼을 만들도록 요청하고 성과로 인정해줄 줄 아는게 상사의 역할이다.
당시 관리자들은 실무단에서 실수가 나면 , 책임을 오롯이 실무자들에게 미루는 원시적인 구조였다.
실무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업무 인계 받을 인력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관리자로서의 역할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당시 그들에게도 업무 매뉴얼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과거 계약 일주일을 앞두고 해고된 계약직 직원은, 인수인계를 거의 못하고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글로 남겨둔 허술한 매뉴얼은, 업무에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화면이 어디론가 연결되어 오류나고, 뒷단 시스템이 엉망으로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업무매뉴얼을 만드는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한 땀 한 땀 캡쳐를 뜨고, 어떤 버튼을 눌러야하는지, 이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시스템에 연결되는지 상세하게 적어야한다.
만드는 동안은 귀찮은 것 뿐 아니라 업무시간이 2-3배 소요된다.
그러나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누가 와서 이 업무를 하더라도 매뉴얼을 주고 작업하는 모습을 단 한 번만 보여주면 바로 인수인계가 끝이 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의 이야기다.
한 업무를 20년동안 해온 상사를 만났고, 그녀로부터 일부 인수인계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주지 않고, 타박만 하는 상황이라며 고민을 얘기한다.
상사 :“세무 업무 배웠다며 그것도 모르냐” , “파일 봐! **파일 (상당한 양의 파일 안에서 무엇을 봐야하는지 상세히 안 알려줌)”
버튼을 눌러야 완료가 되는데, 막상 완료버튼은 안알려주고 알아서 찾아보라는 둥 그것도 모르냐는둥, 누가 보면 본인이 정말 부족해서 못알아듣는것처럼 말을 해서 매일같이 자신을 의심하는 하루하루.
그렇게 울며불며 혼자서 업무를 익혔고, 1년이 흐른 후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게 그 자리를 지키고자했던 그녀의 생존법이라는걸.
해고가 비교적 쉬운 중소기업에서 후배에게 업무를 뺏기면 본인이 퇴사당하게 될까봐, 애매모호한 업무지시, 불명확한 업무인계,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으로 2년을 못버티고 나간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명 문제가 있음에도 회사는 당장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것처럼 보이니,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고 그렇게 20년차 단독업무를 하고 있는 그녀.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후배들이 업무에 누락을 발견하면, 아무도 모르게 득달같이 달려들며 다른쪽으로 괴롭히며 퇴사하게 만드는 그녀.
물이 깨져 새고 있는데, 크게 터질때까지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구조.
중소기업에는 이런 사례가 상당히 많다고 하다.
인력 순환은 중요하다.
한 업무를 10년동안 했다는건 전문성을 갖출수도 있겠지만 좁은 시야를 갖게 될 위험도 있다.
어떤 업무든 , 새로운 사람이 오면 이전 담당자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업무에 적용시키며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정식 프로세스를 갖춘 업무매뉴얼은 모든 회사들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