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오래전부터 자율출근제를 도입했다.
*자율출근제 : 임직원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하는 제도.
회사가 공식적으로 이 제도를 사용하라고 임직원들에게 권장하자,
당시 나의 상사는 이 제도를 설령 내가 사용할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게 보였다.
그저 이 제도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만 봤을 뿐인데, 사용한적도 없는데 , 먼저 펄쩍 날뛰고 있다.
(우리 회사에 새로 생긴 자율출근제도가 어떤건지 그 의미에 대해 물어봤는데 상사는 말한다.)
“지금 부서장님부터 네 상사들이 다 앉아있는데, 제일 막내인 네가 이런걸 쓴다구?”
(다른 동료들이 쓰는걸 언급하자 그는 말한다.)
“쟤네들이 쓰는건 그만큼 짬이 되기 때문이지. 지금 네가 이런걸 쓴다는게...”
내 입에서 ‘자율출근제’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다는 것 자체가 참 어이없었나보다.
나처럼 어린 짬바에겐 감히 내뱉을 수 조차 없는 그 단어였을까.
그는 그러고도 분노의 파도가 꺼지지 않고 응어리가 남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가 회사를 학교처럼 생각하고 있다’며 고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닌다는 말이 들려온다.
그가 왜 그 말을 했는지 바로 연결고리가 머릿속에 번쩍인다.
시간이 지나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부서에 오게 되고, 10-15분씩 늦게 오며 자율출근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아니꼬왔던 그는 아침시간에 해야 할 업무를 겨우 생각해낸다.
1년에 5번 미만으로 걸려올법한 급하지도 않은 전화, 그 전화를 받아야한다며 9시 출근을 강요한다.
"내가 인사에 물어봤어. 9시에 해야 할 업무가 있는데 자율출근제 쓰는게 맞는거냐고.
인사에서도 그건 아니라고 하더라, 업무가 있으면 당연히 9시 출근 지켜야한다고."
어떤 답이 나올지 뻔히 알만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원하는 답변을 받아내는 꼰대.
그 아래서 도대체 몇년의 세월을 묵히고 썩히다가 나올 수 있었던가.
10년차가 다 되어서야 이 제도를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극심해졌던 탓도 있었고, 실무 업무를 후배들에게 넘기고 관리업무를 맡으면서부터 가능해진 덕도 있다.
그간 일요일마다 내겐 압박감이 있었다.
다음 날 회사에 가야하니 서둘러 자야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새벽까지 잠이 안오면 회사에서 너무 피곤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
심지어 어떤 해는 불면증 증세가 심했다.
나름의 걱정거리가 있었고, 일이 내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 잠드는게 두려웠고 한숨만 가득 내쉴 뿐이었다. 저녁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 무척 괴로운일이다.
뜬눈으로 새벽을 지새우다가 해가 뜰 때 쯤 비로소 잠에 빠져든다.
곧이어 아침 알람이 울리면 더 자고 싶은 강한 욕망과 함께 회사에 가야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에 천근만근한 몸을 일으켜 깨어난다.
하루 8시간 이상은 반드시 수면을 취하도록 설계되어 태어난 내가, 2-3시간만 자고 회사로 출근하면 모든 일상이 지옥이 되어버린다.
잠이 부족한 사람에겐 그 무엇도 즐거운게 없다. 모든 것이 무료하고 지치고 힘들 뿐이다.
알람에 맞춰 이른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눈을 떠야 한다는 것.
이것이 K-직장인의 삶이다. 이 삶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퇴사 외엔 방법이 없는게 현실이었다.
그러다보면 토요일 저녁부터 다음날이 일요일이라는 현실에 우울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마음 편한 날은 금요일 저녁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자율출근제 제도를 고이 모셔두고 오랜기간 회사생활을 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자율출근제를 요령껏 사용하고 있는데, 내겐 그림의 떡이었던 그 제도를.
지난 1년간 드디어 마음껏 써보았다.
앓던 걱정거리도 사라졌고, 자고 싶은만큼 푹 자고 회사로 출근하니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
중간 중간 재택근무도 병행해보니 알게 되었다.
왜 2-3년간 재택근무를 하던 사람들이 회사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지 말이다.
아침 눈을 뜨면 출근, 점심시간에 1시간동안 편히 자다가 일어나서 업무시간에 밥 먹으며 일해도 되고, 집에서 퇴근이 가능한 일상.
한국 직장인들이 처음으로 겪어본 일상이었고, 인간관계에 치이지도 않는 , 나만의 공간에서 일을 하는 편리함을 넘어 월급까지 나오는 신비한 하루하루.
2022년 , 뒤늦게 회고해보니 참 잘 쉬었다.
인생의 쉼이 길어진만큼 얻어가는건 사실 많지 않았다.
열정 가득하게 살고자 했던 내가, 건강의 문제로 , 마음의 문제로 , 많이 쉬었고 여전히 잘 쉬고 있다.
금요일 저녁이 더 이상 우울하지 않은 이유가 10년의 회사생활이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알람없이 일어나도 되는 압박감 없는 아침 덕분일까.
자율출근제 사용 이후 더 가볍고 맑은 정신으로 출근하다보니 삶의 질이 올라가는건 분명하다.
금요일 저녁과 일요일 저녁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요즘,
자율출근제는 노동자에 대한 엄청난 복지이고, 인류에 대한 복지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회사가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면, 직장인 우울증이 사라질거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