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년 차, 당시 내 상태는 심각했다.
크롬, 익스플로러가 뭔지도 몰랐고, 공인인증서, 와이파이, 랜선이란 단어의 개념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주변사람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몰라 힘들어했던 그 시절.
당연히 알아야 할 것도 모르는 난 이제 겨우 사회에 진입한 부족한 초년생이었다.
배워야 할 건 산더미에 당장 해야 할 일들은 몇 배로 많아지는데, 뇌의 용량은 한계에 차오른다.
나이 어린 신입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잡무를 도맡아 하다 보니, 번아웃을 넘어 일하다 죽을 수 있겠다는 느낌까지 든다. 내 뇌는 과포화 상태로 모든 걸 거부하고 튕겨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천근만근한 몸을 이끌고 향하는 출근길은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도 돈을 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던 야근쟁이 시절이었다.
2년 동안 일상생활 없이 회사에 모든 걸 바쳤다.
그리고 내게 남은 건 허무함과 고갈된 체력뿐이었다.
빠르게 업무를 익히고 배워서 옆자리 다른 상사들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업무는 적당히, 칼퇴 후 취미생활 즐기기, 해외로 휴가 다녀오기.
견디고 버텨냈다. 아주 독하게.
'너무 힘들다... 힘들어...'
압도적인 업무량에 금방 소진되는 체력, 아주 어려웠던 선배/동기/동료들과의 인간관계.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머리를 후려치는듯한 강한 현타
모든 걸 던져버리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잘 생각해 보면 갈 곳도 없었고, 패배하는 느낌이라 좀 더 버티기로 했다.
젊음의 어딘가 숨겨진 약간의 힘으로 힘든 시기를 겨우 버텨냈다.
숙명이라 생각하고 버텨내다 보면 몸과 정신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익숙함을 느낀다.
그리고 3년 이후부터 회사 내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다니고, 퇴근 후에는 취미를 찾아 헤매고, 휴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출퇴근의 리듬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 루틴은 이제 곧 '나'이다.
내 몸과 정신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회사로 출근하는 생활이 당연하도록 시스템화되어있다.
일찌감치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뛰어든 동기는 말한다.
"10년 동안 다닌 너는 대단한거야. 그건 능력이거든. 나한테는 회사를 그렇게 오랜 기간 다닐 능력이 전혀 없어."
가끔 생각한다. 내일 당장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아버지는 늘 말하셨다.
"10년 차가 되면 , 그 누구도 널 건드리지 못할 거야"
그 말은 정말 옳았다.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직급 높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
상사에게 쓴소리를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능력, 회사 안의 일을 다 잊어버리고 퇴근하는 것에도 특화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초년생 때는 상사의 쓴소리 한마디를 마음에 담아두고, 더 잘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이젠 내려놓은 부분도 많다.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죄송합니다~"
이런 날 보면 가끔 웃기기도 하다.
능청스럽게 넘기고,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탓하기보단 유머로 넘기는 능력도 생겼다.
그럼에도 직장에서는 딴짓 않고 최선을 다해 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부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 출근 6시 퇴근, 익숙해지고 당연해진 삶.
완벽한 사회인이 되었고, 많이 성장했고, 성숙해졌다.
그렇게 난 10년 차 직장인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