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는 동등하고 편안한 관계여야 한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소위 말하는 노는 무리가 새롭게 생겨났다.
깝치고, 성숙하고, 키 크고, 인기많은 등등 우연찮게도 내가 속한 4명의 그룹이 반에서 잘나가는 그룹이 되었다. 나머지 2명의 친구는 괜찮았으나 1명은 모든게 자기 맘대로였다.
성격상 불편함을 잘 말하지 못하고 들어 주고 오냐오냐 해주던 난,
그 친구를 1년동안 보좌(?)해주고 케어(?)해주다가 6학년이 되자마자 학을 떼고 달아났다.
잘 나가는 무리에 속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었다.
1년 내내 곪아 썪어버릴만큼 마음 고생이 엄청났기에 그깟 무리에 속하지 않아도 하나도 부러울게 없었다.
오히려 6학년 때 관심사가 비슷한 다른 친구를 만났더니, 매우 편안했고 안정적이었고 삶이 재미있었다.
난 이 중요한 진리를 초등학교 때 깨우쳤다.
2. 서울에 산다고 다 좋고 잘사는게 아니다.
유년시절 우리가족은 경상도의 아주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할머니 집이 서울이라 자주 놀러갔고 서울이 익숙하였으나,
15년 전만 하더라도 지방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을 동경했다.
서울 출신, 서울 말투를 부러워했으며, 서울에 다녀왔다고 하면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 3박자를 다 갖추고 있던 난, 언제나 친구들의 부러움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지방에 살고 있는 난 완벽한 서울사람은 아니라는 아쉬움이 있었고, 언젠가 다시 나의 고향 서울로 되돌아가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있었다.
주변 친구들이 서울을 동경할수록 나 또한 서울 사람들은 돈이 많고, 똑똑하고, 예쁘고, 탁월한 교육시스템을 갖춘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착각했다.
이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느낀건 , 시골 마을에서 자연과 함께 쌓은 다양한 경험들은 인생에서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자 추억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면 지방의 한적한 시골마을이 얼마나 좋은지 경험해보지 않은 서울 토박이들은 절대 모를것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아이들끼리 따지는 빈부격차, 공부 외엔 모르는 서울 환상은 그렇게 깨져버렸다.
3. 아웃백과 감자탕
지금으로부터 15년전만해도 서울은 아웃백 붐이었다. 호화스러운 단골 외식장소는 아웃백이었다.
"졸업식 날, 어디 가고 싶니?"라고 부모님이 물어보면 우리는 지체없이 "아웃백" 을 외쳤다.
아웃백은 우리에게 꿈의 장소였다. 중학생이었던 우리에게 가격대도 비쌌고,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서양식 메뉴가 많았다.
졸업식 날,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부모님이 큰 마음을 먹고 아웃백에 가자고 하셨다.
사람들로 가득차서 바글바글한 줄을 보고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졸업한 모든 졸업생 가족들이 아웃백에 모여있었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아웃백은 마감이라 손님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만큼 너무 속상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주변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무너져내리며, 아무리 유명한 감자탕 집이라도, 맛이 느껴질리가 없었다.
아웃백에서 배불리 먹고 나온 또래 친구들이 감자탕집을 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는데, 굴욕감과 창피함에 고개를 숙였다. 그 원망의 감정은 사춘기가 끝날시점까지 꽤 오래갔다.
이젠 아웃백보다 더 좋은 음식들도 원 없을만큼 잘 먹고 다니는 15년이 지난 지금, 그 때를 생각해본다.
아웃백과 감자탕.. 그건 전혀 중요한게 아니었다.
졸업식이라고, 가족들과 일부 친척들 그리고 할머니까지 대가족이 다같이 모여서 오순도순 모였던 그 자체가 그립다. 이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부터.. 우리 가족은 정말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다 함께 가족들이 모여있던 그 때 그 날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 때로 돌아간다면 얼굴을 펴고, 감자탕 집에서 당당하게! 한없이 힘껏 안아드리고싶다.
4. 중-고등학생 삶의 뚜렷한 목표가 없다.
학생으로서 공부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삶이 너무 답답했다.
학교 끝나면 학원만 왔다리 갔다리하는 내 삶에서 그 어떤 흥미거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다람쥐 쳇바퀴같은 삶이 너무 지루하고 지겨웠다. 매일같이 자퇴를 꿈꿨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는걸까'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해도 안되는 공부, 이미 기초를 놓쳐버려 따라잡을 수 없는 단계.. 그리고 매일 왜 이렇게 졸린지.. 따라주지 않는 체력이 야속했다. 24시간 중 수면시간을 제외한 모든것이 공부를 위한 삶인데, 나는 공부에 흥미가 전혀 없었기에 지옥같은 허송세월을 보낼 뿐이었다.
차라리 그 때 그 시절, 학원/과외비에 쏟을 돈으로 방학에 해외여행을 가서 추억을 쌓거나, 제2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요가 같은 운동을 배우는 등 다른 흥미거리에 조금의 시간이라도 쏟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공부, 취미 등 학생 때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다는건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