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림트리 Nov 04. 2023

또 다시 시작된 직장내괴롭힘

대기업 10년차 휴직으로 가는 과정

오랜기간 직장내괴롭힘을 당하다 빠져나온지 4년차에 접어들 무렵,

내가 이런 일을 또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7개월, 내 인생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물리적으로 감당해낼 수 없는 업무량에 삶을 포기하면서 회사일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

주 퇴근시간은 저녁 9-11시를 맴돌았다.

자정 12시가 넘는날도 종종 있었고,

어떤날은 지하철과 버스까지 다 끊겨 택시를 타고 퇴근하기도 했다.

심지어 밤늦게 퇴근을 하고도 , 집에 도착해 새벽까지 일을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돈도 못받고 일할 수 밖에 없는 재택근무가 점점 늘어날 정도로, 나의 평일 저녁삶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다.


회사 상황을 보면 약 2년 전 외주업체가 계약을 맺고 들어왔고,

우연찮게도 내가 10명의 외주인력들과 업무를 이끄는 장(長)역할을 맡게 되었다.

 

새로운 외주인력들이 들어왔던 초반, 그들이 자리잡기까지 가르쳐주고 알려주느라 힘겨웠지만,

연말쯤되니 업체 직원들은 내가 알려준 매뉴얼대로 업무를 잘 수행해주었다.

회사는 이 과업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해주었고, 그 중심에 내 이름이 자주 언급되어 뿌듯했다.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써 관리 업무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나의 판단에 의해 모든 상황이 재정립되고 프로세스들이 수정되어 하나의 체계가 만들어지는게 흥미로웠다.

실타래처럼 꼬인 상황이 닥쳐와도, 오랜 기간 일해왔던 과거 업무경험들을 통해 능숙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회사 임원들은 상황이 안정화가 되며 잘 굴러가는 것을 보고,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갖가지 단발적 프로젝트성 업무를 만들어 끊임없이 내게 새로운 업무를 주었다.

외주업체에게는 계약서에 명시된 업무 외적으로 업무지시는 불가했기에, 내게 모든 업무가 몰리게 되었다.

실무를 하면서 관리업무를 병행해왔지만, 점점 업무가 많아지면서 퇴근시간이 한없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저녁 없는 삶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자 , 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실무업무가 너무 많은 상황입니다.

지금 저 혼자 이 정도의 실무를 하면서 프로젝트 업무까지 투입되기는 어려워요."

"관리역할을 부여해주신만큼 관리에 집중해볼테니, 실무업무를 할 수 있는 계약 인력 1명을 채용해주세요."


내 말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갖가지 핑계로 인력을 주기 어렵다는 말을 반복했다.

워라밸이 중요한 요즘사회에서, 작은기업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놀랍게도 대기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대답없는 메아리 속에서 나의 희생은 엄청났다.

퇴근후,주말,새벽 가리지 않고 집에서도 일을 해야했고, 새로 산 노트북은 개인적인 일이 아닌 회사일로만 몇달째 쓰여지고 있었다.


회의가 하루 5개까지 몰려들기도 했고,  다른 그룹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협조성 업무부터 프로젝트까지 투입되다보면, 내 본업은 저녁 5-6시 이후부터 부랴부랴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남들 퇴근시간이 나에겐 일의 시작시간이었다.

저녁 6시부터 텅텅 비어진 사무실 안에서 언제나 나는 홀로였다.

매일같이 이런 삶이 지속되니, 매우 절망적이었다.


업무 프로세스부터 불필요한 회의 미참가까지, 줄일 수 있는건 최대한 줄여보고자 했으나

그럼에도 일이 끝나지 않았다.

화장실도 뛰어다니며 그 안에서 업무 전화를 받기도 했고, 점심식사도 홀로 30분동안 빠르게 먹고와서 일을 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평일 지인들이나 친구들 약속잡기는 꿈꾸기도 어려웠고, 어렵게 잡은 가족들과의 저녁식사까지 파토내는 일이 잦아졌다.

주 퇴근시간이 밤 10시에 다다르는 날들이 잦아지자,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지금 업무는 무조건 인력이 필요해요. 물리적으로 한 명이 감당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하거든요.

인력채용을 빠르게 요청드립니다."

"제게 원하시는게 훌륭한 관리자의 역할이라고 하셨죠? 지금 상황으로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실무업무만 해도 모자란 상황이에요. 관리 역할이 전혀 안되는 수준이에요. 인력 채용이 정말 시급해요. 빠르게 부탁드려요."

 

꾸역꾸역 주말과 새벽까지 일을 하는 나는 일상과 인생을 포기하면서 일을 쳐낼 수 밖에 없었다.

희망도 보이지 않았고, 우울감이 심하게 느껴졌다.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가 된다는 말이 이런것일까'

나의 상사는 어느순간부터 이런 나의 야근 일상을 당연한것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잔실수가 나오면 큰 일이 벌어진마냥 길길이 날뛰었다.

나는 현실에서 점점 궁지로 몰리는걸 넘어 꿈에서도 궁지로 몰려 어찌할바를 모르는 악몽을 종종 꾸게 되었다.


초반에는 관리자로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굳게 믿었으나 이런 방식은 절대 아니었다.

나를 스스로 컨트롤 하기가 어려울정도로 몸과 정신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었다.

생명에 지장이 갈 수준의 업무쇼크를 견디며, 모든걸 포기했다.

아니 새로운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다른 지점으로 부서이동을 요청할겸 지금의 악화된 상황을 알리기 위해 회사의 인사팀으로 찾아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휴직을 향해 달려가는 직장인의 우울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