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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Aug 09. 2020

프라다 지갑을 하수구에 빠뜨린 날

명품이 거적때기로 전락하다

프라다 지갑을 하수구에 빠뜨린 날

내 나이 23살의 일이다.    


당시 스타벅스를 한 손에 들고 , 출근하는 직장인 여성들을 우러러보는 시대이자 그걸 허세녀라고 하며 손가락질하는 시선과 함께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시대였다.    


당시 나는 이른 나이에 대기업에 입사해서 돈도 벌고 있겠다, 주변 친구들은 돈없는 학생이니, 한 손에 명품을 들고 먼저 ‘자랑질‘을 해봐야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변 선배들은 샤넬, 구찌 등 명품지갑에 가방들을 이미 들고다니는 상황이었고, 나는 명품의 세계를 잘 모르던 시기였다. 

평균을 내보니 명품지갑은 40-60만원 선이었고, 가방은 약 200대 후반 - 500만원선이었다. 어떤게 괜찮은지 주변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해보고, 처음으로 백화점 명품샵도 들락날락 거려보고, 인터넷 면세점도 틈틈이 확인하던 중 내게 한 명품지갑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직장인이라고 한들 명품가방을 사기에는 약간의 부담이 있었는데, 지갑은 그 부담을 확실히 덜어주는 가격대라고 느껴졌다. 

명품세계의 입문용으로 지갑을 먼저 사기에 딱 괜찮다고 합리화를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약 한달만에 핫핑크 프**지갑을 내 손에 쥐게 되는 감격을 얻게 되었다.    


학교 아르바이트로 월 25만원 벌며 부모님께 손을 내밀며 다닐 수밖에 없었던 내가, 

안정적인 직장인의 신분으로 상승(?)되었으니 이제 이 정도는 들고 다녀줘야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사람들은 “어?! 지갑샀네~” 라는 평범한 반응이기에, 내 타깃은 학생 친구들이었다. 

내가 소유한 물건은 나의 이미지이자 브랜드가 되어준다는 그 말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결제를 할 때,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꺼내보이니 내 또래 학생 친구들은 모두 동경의 눈빛을 보내며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 우와~ 프*다 지갑이다. 어디서샀어? "

" 진짜 예쁘다. 얼마줬어? "    

내가 돈 벌어 산 것이기에 오히려 당당했다. 

친구들의 그 반응이 나를 만족시켜줬기 때문이었을까 항상 내가 밥을 샀던것같다.     


프**지갑과 함께라면 어딜가나 자신있었다. 계산하는 내 모습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조만간 가방도 사서 명품으로 휘감은 내 모습을 상상해 보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2주째 되는 날, 친구와 코엑스에서 밥을 먹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 지갑을 꺼내 카드를 찍고 서둘러 급하게 뛰어내려갔다. 겨우 지하철에 타고 ,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거짓말처럼 내 손에 들려있던 지갑이 한 번 ,두 번 땅에 튕기더니 지하철 선로사이로 그대로 골인했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순식간에 벌어진일이라 한동안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도 프라다라는 그 로고를 본건지는 모르겠지만 '헐~' 하는 반응으로 나의 얼굴을 은근히 쳐다보고 있는듯했다.    

나는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 즉시 삼성역으로 향했다.     

친구에게도 내 지갑이 선로에 떨어져있으니, 무작정 내려야한다고 말하며 다시 가서 난 반드시 건져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자존심 따윈 없었다. 이미 나는 약간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삼성역은 실내이지만, 그 전날까지 매우 많은 비가 내렸던 상황이었기에

쾌쾌한 냄새와 함께 빗물이 매우 많이 고여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간 비가 내린 상황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제발 그 빗물을 벗어나 있길 간절히 기도했다.    

승강장 안전문 때문에 지갑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이리저리 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여 역무실로 뛰어갔고 나의 프*다 지갑을 꺼내달라고 간곡히 애원했다.    

그러나 역무원은 얼마전 안전문을 고치던 청년이 세상을 떠난 사고도 있었고,

지하철 운행 중에 승강문 조작은 절대 안된다는 지침이 생겼다고 했다. 

지하철 운행종료 후, 꺼내놓을테니 다음날 새벽 5시에 역무실로 오면 빨리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이상한 절망감은 처음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면서 약간 처참했다. 그간 프*다가 나였고, 내가 프*다라는 말도 안되는 망상까지 했던 나였다.

구정물에 빠졌을 가능성이 너무도 높았기에 , 제발 내 지갑을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기도까지 했다.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내 온 신경은 하루빨리 다음날 삼성역에 가서 지갑의 안부를 확인하는것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역무실에 찾아간 나는 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50대 남자 역무원님이 말하길 

"정말 지갑이 있더라구요. 빗물에 빠져있어서 좀 더러워져있길래...!

내가 물에 비누묻혀 빡빡 씻어놓고, 아주 열심히 말리고 있는중이었어요. 허허

저 잘.했.죠.?" 라며 칭찬해달라는 말투와 함께, 온 힘을 다해 지갑을 쫙 벌려놓고 말리는 시늉을 하는게 아닌가...    


그 순간 느꼈다.

그 자랑스러웠던 로고가 허물없어 보이고, 그 자랑스러운 사피아노 가죽이 한 풀의 거적때기로 전락해버린 그 처참한 상황을 내 온 몸으로 느꼈다.

화려한 핑크빛이 구정물과 합쳐져 색깔도 구린핑크빛으로 변해버린 듯 했다.    

솔직히 더 이상 그 지갑을 만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다. 팔자니 이걸 2주만에 반값에 디스카운트 시켜 내놓는다는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2주 천하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 날 이후, 난 더 이상 명품에 전혀 관심이 없어진 평범한 한 사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에게 드는 원망보다 그냥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허탈함이 너무 컸다.   

‘명품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명품은 나에게 범접할 수 없는 선을 그어줬다.


직장인 8년차의 난 그 당시의 허탈감을 여전히 기억한다.

명품이 참 좋다는건 알지만, 여전히 사야 할 나만의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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